[작가칼럼] 곁에 남은 것들- 이나영(시인)

knnews 2025. 12. 25.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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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되면 자연스럽게 한 해를 되돌아본다.

새해가 시작될 때 다짐했던 것들을 하나씩 살펴보면, 이루지 못한 것들이 계속 아른거린다.

한 해를 보낸 나에게 관대해질지 엄격해질지는 아쉬운 것들에 달려있다.

한 해를 잘 살았다는 말이 모든 계획을 이뤘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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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 되면 자연스럽게 한 해를 되돌아본다. 새해가 시작될 때 다짐했던 것들을 하나씩 살펴보면, 이루지 못한 것들이 계속 아른거린다. 아쉬운 것은 계속 남고, 이룬 것들은 금세 희미해진다. 한 해를 보낸 나에게 관대해질지 엄격해질지는 아쉬운 것들에 달려있다. 그렇게 아쉬움이 쌓이다 보면 괜히 마음이 조급해진다. 한 해를 잘 살았는지에 대한 기준이 여전히 ‘성과’에 머물러 있으므로.

그런데 요즘은 자주 멈춰 생각한다. 정말 중요한 건 그 성과가 아닐 수도 있겠다고. 대신 무엇을 더 해냈는지보다 무엇을 지켜냈는지를 떠올린다. 비록 거창한 것을 이루지 못했더라도 무너지지 않고 지나온 하루하루가 있었고, 여전히 곁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그러면 이루지 못한 것이 아니라 남은 것들을 더 끌어안은 것이 될 테다.

올해는 유독 건강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예고 없이 찾아온 사고, 너무 늦게 알게 된 병, 갑작스러운 이별들. 그 앞에서 느낀 건 무력감이었다. 건강이 무너진 순간, 그와 그 주변의 것들까지 모두 뒤흔들린다. 내가 무얼 이룰 수도 없고, 그저 하루를 충실히 보내며 하루치 더 나아지고 있다는 희망을 바라볼 뿐이다. 그 희망은 자주 사라지지만, 그 가운데 우리가 다시 희망을 꺼낼 수 있는 이유는 우리에게 여전히 남아 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건강을 잃고 난 삶은 놀라울 만큼 단순해진다.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더 나아가야 한다는 욕심도 무의미해진다. 그저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내는 일, 곁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한 번 더 보는 일이 전부가 된다. 무엇이 중요한지는 오히려 선명해진다.

끝내 남는 건 성과가 아니라 관계이고, 지금 여기 함께 있는 우리라는 사실을 체감하게 된다.

그렇기에 곁에 남은 것들은 우리를 살게 한다. 그들을 잃지 않고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궁극적인 삶의 목적이 아닐까. 그저 평범한 하루들일지라도, 그것이 모이면 나의 행복이 된다. 그러니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잘하는 것은 나중으로 미뤄서는 안 될 일이다.

그건 대단한 노력이 필요한 게 아니다. 안부를 묻는 일,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일, 불필요하게 날 선 말을 삼키는 일. 그런 사소한 태도들이 관계를 오래 버티게 한다. 그러면 또 내가 살아난다. 그러니 큰일을 해내진 못했더라도, 누군가의 곁을 지켜냈다면 그 한 해는 충분히 의미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루지 못한 것들에 오래 머무르기보다 그래도 지켜낸 것들을 돌아보면 좋겠다. 무탈하게 지나온 시간, 안부를 물을 수 있는 사람들, 그리고 내일을 기약할 수 있는 나의 몸. 그렇게 지켜낸 것들과 지킬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다시 내년을 살아갈 힘을 얻는다. 지금 매일매일에 충실하다 보면, 멀리 보았을 때 결국 사랑하는 것들과 사랑하는 사람들 곁에 서 있을 것이다. 확신할 수 없더라도, 그 방향으로 한 발짝씩 걷는 일. 어쩌면 삶은 우리에게 대단한 목표보다 오늘을 성실히 건너는 태도를 요구하는지도 모르겠다.

한 해를 잘 살았다는 말이 모든 계획을 이뤘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큰 탈 없이 서로의 곁을 지켜냈다는 것, 아프지 않아 웃을 수 있었고, 해야 할 말을 서로에게 할 수 있었다는 것. 그런 한 해라면, 올해도 잘 살아냈다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이나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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