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구글 TPU 개발 주역 사버렸다···핵심 인재 빼오는 데 29조 베팅

실리콘밸리=김창영 특파원 2025. 12. 25. 18:4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엔비디아, AI 가속기 설계사 그록과 라이선스 계약
TPU 개발 참여한 구글 출신 CEO 엔비디아 합류
추론 능력, 속도 높여 구글 추격 따돌리는 효과
메타·MS·구글도 인수 대신 라이선스·CEO 영입
핵심 자산 효과적 흡수하면서 당국 감시 피해
엔비디아 로고. 로이터연합뉴스
[서울경제]

구글의 거센 추격으로 인공지능(AI) 반도체 선두 자리를 위협받는 엔비디아가 유망 스타트업의 핵심 기술과 인재만 콕 집어 손에 넣는 ‘전략적 투자’에 나섰다. 최적의 기술을 확보하겠다는 차원이지만 엔비디아의 최대 경쟁자로 떠오른 구글 AI 칩을 개발한 주역까지 영입하며 공격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빅테크(거대 기술기업) 사이에서 반독점 규제를 피하면서 사실상 인수 효과를 거두는 스타트업 선점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AI 가속기 칩 설계 전문 스타트업인 그록(Groq)은 24일(현지 시간) 자사 블로그를 통해 엔비디아와 기술 사용(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이 회사는 “그록의 추론 기술에 대해 엔비디아와 비독점적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며 “이 계약은 고성능·저비용 추론 기술에 대한 접근성 확대라는 공동의 목표를 반영한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계약의 일부로 그록 창업자인 조너선 로스와 팀원들이 엔비디아에 합류해 기술 확장을 지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CNBC는 엔비디아가 그록의 자산을 엔비디아 역대 최대 규모인 현금 200억 달러(약 29조 원)에 인수한다고 보도했지만 구체적인 투자액은 공개되지 않았다. 그록은 “(회사가) 독립 기업으로 계속 운영되며 사이먼 에드워즈가 최고경영자(CEO) 역할을 맡게 된다”며 “클라우드 사업은 차질 없이 계속 운영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2016년 설립된 그록은 대규모언어모델(LLM)의 추론 관련 작업 속도를 높이는 데 사용되는 AI 가속기 칩을 주로 설계한다. 올 9월 투자금 7억 5000만 달러를 유치하며 몸값을 69억 달러로 끌어올렸다. 그록의 주요 투자사에는 삼성전자도 포함돼 있다.

이번 계약에서 눈에 띄는 점은 영입된 로스 CEO가 구글 텐서처리장치(TPU) 개발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TPU 장단점을 꿰고 있는 구글 출신이 젠슨 황 엔비디아 CEO 밑에서 일하게 된 것이다. ‘그래픽처리장치(GPU)’의 아성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엔비디아는 단점을 극복하면서 구글의 추격을 견제할 수 있게 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협력은 구글 TPU를 비롯해 엔비디아 최대 고객들이 GPU를 대체할 자체 AI 칩을 개발하는 상황에서 등장했다”고 설명했다.

엔비디아 AI 칩인 GPU가 범용성에 초점을 맞췄다면 TPU는 맞춤형 주문형반도체(ASIC)의 일종으로 추론에 최적화됐다. 그만큼 속도가 빠르고 비용 대비 효율성도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달 구글이 내부용으로 쓰던 TPU를 외부에 판매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시장 90% 이상을 장악한 엔비디아의 독주에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CNBC가 입수한 내부 e메일에 따르면 황 CEO는 이번 계약을 통해 엔비디아의 역량이 확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연을 최소화하는 그록의 프로세서를 엔비디아 AI 팩토리 아키텍처(설계)에 통합해 플랫폼을 확장하고 더욱 광범위한 AI 추론을 지원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이번 인수가 엔비디아의 AI 반도체 독점력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AI 경쟁이 분초를 다투는 속도전 양상으로 전개되면서 빅테크가 스타트업을 전부 인수하는 대신 핵심 기술과 인재만 골라 영입하는 투자가 늘고 있다는 평가다. 페이스북 모회사인 메타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챗GPT 등장 이후 AI 경쟁에서 뒤처졌던 메타는 올 6월 인간을 뛰어넘는 초지능 연구를 선언하며 AI 스타트업 스케일AI에 143억 달러를 투자했다. 그러면서 20대 후반의 나이에 데이터 라벨링 시장을 개척한 알렉산더 왕 CEO를 최고AI책임자(CAIO)에 앉혔다.

마이크로소프트(MS) 역시 지난해 3월 인플렉션AI와 기술 사용 계약을 체결하면서 무스타파 술레이만 CEO까지 영입했다. 구글 딥마인드의 공동 창업자인 그는 샘 올트먼 오픈AI CEO의 라이벌로 불릴 만큼 실력자로 꼽힌다. MS는 그에게 자사 AI 모델인 ‘코파일럿’ 개발 책임을 맡겼다.

구글도 마찬가지다. 구글은 캐릭터.AI를 세운 노엄 샤지어와 다니엘 데 프레이타스를 영입했다. 두 사람은 구글에서 챗봇을 개발하다가 회사와 갈등을 겪으며 퇴사했지만 친정의 러브콜을 받고 구글의 AI 조직인 딥마인드로 복귀했다.

이 같은 빅테크 움직임에는 반독점 인수합병 비판을 피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엔비디아·아마존·애플·구글·메타·MS는 수년간 규제 당국의 조사를 받아왔다. 뉴욕타임스(NYT)는 “기술 라이선스 취득과 인재 영입은 기업을 소유하지 않고도 스타트업과 자산을 효과적으로 흡수하는 것을 의미한다”며 “대형 기술기업들이 규제 당국의 감시를 피하려는 욕구에서 비롯된다”고 평가했다.

실리콘밸리=김창영 특파원 kcy@sedaily.com

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