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값 급등이 가른 두 풍경 … 돌반지 구매 줄고 골드바는 불티
선물용 금 구매수요 위축에
돌반지·기업 근속포상 줄고
재테크 골드바 구매는 늘어
투자 과열에 소비자 피해 우려
일부은행 골드신탁 과장 광고
텅스텐 혼합 가짜 금 유입까지

"며칠 전에는 할머니가 쓰던 금비녀를 팔겠다며 오는 손님도 있었어요. 아무리 금값이 올라도 보통 오래된 반지나 목걸이를 가져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25일 서울 종로구 귀금속 상가에서 만난 윤주영 씨(51)는 금은방을 운영하며 보기 힘들었던 손님들을 마주하는 요즘 분위기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수십 년 전에 구매한 에어컨이나 휴대전화에 붙은 순금을 감정하는 영상이 화제가 되며 미처 모르고 지냈던 집 안의 금붙이를 팔아 보겠다고 가게를 찾아오는 손님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윤씨는 "비싼 가격 탓에 장신구 목적의 금을 사는 사람은 많이 줄었다"며 "달라진 분위기에 적응이 잘 안 된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금값이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금거래소에 따르면 순금 한 돈(3.75g)당 가격은 지난 10월 처음으로 90만원을 돌파했고, 이달 23일에 93만6000원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런 분위기 속 종로 귀금속 상가에는 장신구를 사러 온 손님보다 집에 있던 금을 팔거나 골드바 등을 구매하려는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 금은방 상인들은 "장신구용 금 제품을 찾는 사람들은 확연히 줄었다"며 "그 대신 보유하고 있던 금을 처분하거나 골드바 등 '금테크' 목적으로 금을 사려는 손님이 크게 늘었다"고 입을 모았다.
종각에서 귀금속 매장을 운영하는 박혜선 씨(50)는 "순금 돌반지 또는 예전에 쓰던 금을 가져와 골드바로 바꾸거나 세팅만 달리해 다시 쓰려는 손님이 많다"며 "금값이 오르면서 골드바 형태로 금을 보유하려는 사람이 많고 가격이 조정될 것 같으면 구매를 미루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금값 상승은 선물 문화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과거에는 돌잔치 등 각종 행사 때 지인에게 금으로 만든 장신구를 건네는 일이 흔했지만, 최근에는 가까운 가족이나 절친한 사이가 아닌 이상 금을 주는 경우가 크게 줄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아이들 금목걸이를 만들어주는 것이 고민된다"는 글이 게시될 정도다. 한 학부모는 "아이가 금목걸이를 해달라고 조르는데 요새 금값이 올라 잃어버리는 것도 걱정되지만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신경 쓰인다"고 우려했다.
기업 장기 근속 등 포상을 위한 금 수요도 눈에 띄게 줄었다. 금값 상승으로 작년 10돈 금괴와 올해 5돈 금괴 금액이 같아지면서 기업들은 중량을 줄이거나 다른 선물로 대체하고 있다. 윤씨는 "기업 포상용 금 주문은 체감상 80~90%가 줄었다"며 "실제로 올해 기준 10돈 중량의 금을 제작하려면 약 1000만원이 필요한데 이는 작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뛴 가격"이라고 설명했다.
금니 매입 문의도 증가세다. 온라인에서 금니 매입을 전문으로 하는 한 업체 관계자는 "금값이 큰 폭으로 오르는 시기에는 문의가 평소보다 30~40% 더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변화의 배경으로 금에 대한 인식 변화와 장기 가격 상승 경험을 꼽는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금을 돌반지나 결혼반지처럼 기념물, 장신구로 인식했지만 금값 상승을 경험하면서 금을 투자자산으로 인식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며 "앞으로도 금이 가지는 희소성과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에 따라 수요는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금 투자 수요가 늘면서 소비자 피해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실제로 최근 한 시중은행의 골드신탁 상품을 둘러싸고 광고 내용과 실제 상품 구조가 다르다는 소비자 불만이 제기됐다.
A은행의 '골드신탁(운용)' 상품에 가입하려던 이 모씨(64)는 "갖고 있던 금을 맡기면 만기 시 한국금거래소 제작 주물 골드바와 이자를 준다"는 광고를 보고 은행을 찾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금을 위탁하면 바 형태를 제외한 모든 금은 0.5%만큼 차감되고, 만기 시 금 환급은 해당 은행 압인을 찍은 금으로 돌려준다는 설명을 들었다. 이씨는 "해당 내용 근거 약관을 보내달라고 하니 휴대전화로만 보여주는 등 4대 시중은행 중 한 곳이라고는 믿기 힘든 행태에 분노가 치밀었다"고 토로했다.
종로 귀금속 상가에서는 텅스텐을 혼합한 가짜 금이 유입되고 있다며 매입 과정에서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종로3가에서 귀금속 매장을 운영하는 김태훈 씨(26)는 "최근 중국산 제품을 중심으로 텅스텐이 섞인 가짜 금이 들어오고 있어 조심하라는 공지가 내려왔다"며 "기계 검사로도 구분이 어려운 것이 있어 중국에서 들어온 제품은 아예 취급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수민 기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이재명 아니라 국민의힘이 곤경”…홍준표 “통일교·신천지 특검은 자승자박” - 매일경제
- “신라면 먹는 카리나 난리났다”…‘조회수 1억’ 돌파한 농심, 무슨 일 - 매일경제
- 세계 최악의 먹거리에 한국음식 ‘4개’...홍어는 이해하는데 나머지는 왜? - 매일경제
- 쿠팡 “정보 유출자 하천에 버린 노트북 회수…외부 유출 없었다” - 매일경제
- 대홍수로 ‘640명 사망’ 재산 피해액만 6조원 육박…어디길래 - 매일경제
- 성탄 전날 ‘비상사태’ 선포한 미국 로스앤젤레스, 무슨일이 - 매일경제
- "정보유출 3천명뿐" 쿠팡의 기습 발표…정부 "일방 내용, 강력항의" - 매일경제
- 이 대통령, 옛 지역구 교회서 성탄예배…“고통받는 이들 함께한 예수의 삶 기억해야” - 매일경
- “오빠, 나는 연인 사이에”…도지사 직인 찍힌 공문에 왜 이런 글? - 매일경제
- 크리스마스 선물될까…K리그 감독 선임 공식발표만 6팀, 수원 이정효·전북 정정용·울산 김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