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수호’ 배계주 초대 울릉군수 위상 재조명·국토수호정신 기린다
생가터 정비 마치고 탈바꿈

대한제국 울릉도 초대 군수이자 독도 수호에 앞장선 배계주(1851~1918) 군수의 생가터가 그동안 방치된 상태에서 정비를 마치고 탈바꿈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생가터는 인천시 옹진군 덕적면 소야리 136번지로, 옹진군은 지난 22일 2000만원을 들여 주변 환경을 정비하고 안내 표지판 설치를 완료했다.
이번 표지판 설치는 울릉도와 독도 영토 수호에 결정적 역할을 했음에도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던 배계주 군수의 역사적 위상을 재조명하고, 국토수호 정신을 기리기 위한 취지로 이어진다.
특히 동해 끝 울릉도에서 국권 수호의 최전선에 섰던 인물이 서해 끝 인천 옹진군 출신이라는 점에서 지역사적 의미도 크다는 판단이 반영됐다.
배계주 군수는 1900년 10월 25일 고종 황제가 반포한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에 따라 울릉도가 울도군으로 승격되면서 초대 군수로 임명했다.
이 칙령은 울릉도와 함께 독도를 '석도'로 명시해 울도군 관할로 규정한 문서로, 독도를 대한제국의 행정 구역으로 분명히 한 국가적 선언이었다. 칙령 반포일이 오늘날 '독도의 날'로 기념되는 이유다.
배 군수는 임명 이전부터 울릉도감(1895) 감무로 재임하며 일본인의 울릉도 불법 입국과 원시림 벌채에 강력히 대응했다. 느티나무 불법 벌채와 반출 사건과 관련해 수차례 일본으로 건너가 소송을 제기했고, 일본 법정에서 승소하며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조선의 주권을 지켜냈다.
이후 그는 울릉도를 '대한의 요충지'로 규정하며 관제 개편과 군 설치를 지속적으로 건의했다.
초대 군수로서 배계주는 호구 조사와 토지 조사, 학교 설립, 관공서 설치 등으로 울릉도에 근대 행정 체계를 구축한 인물이다.
주민 집단 이주로 인구를 늘리고 농업과 어업 기반을 마련해 울릉도의 자립적 토대를 다졌으며, 이는 울릉도를 실질적인 조선 영토로 자리매김하게 한 역사적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표지판이 설치된 생가터는 토지대장상 배계주 군수의 장남 배준식 명의의 미등기 토지로, 과거 마을 공회당과 노인정으로 사용된 곳으로 알려진다.
옹진군은 이번 정비로 배계주 군수의 애국·애민 정신을 알리고, 지역 주민과 방문객이 국토수호의 역사를 되새기는 공간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이에대해 울릉군 푸른울릉독도 가꾸기회원과 일부 비역민들은 울릉도와 독도 영토 수호에 결정적 역할을 했음에도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던 배계주 군수의 역사적 위상을 재조명하고, 앞으로 지역 출신 인물의 국토수호 정신을 기리기 위한 사업에 함께 동참한다는 뜻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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