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쇠락의 기억 위에 켜진 '오렌지 빛'…한화가 살린 필리조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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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현지시간) 찾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네이비야드.
필리조선소에 우뚝 선 다시 한화의 '오렌지색 빛'은 미국 산업 전략의 방향을 비추는 신호등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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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췄던 독에 다시 울려 퍼지는 금속음
한화 인수 1년 만에 생산·수주 급반전
상선 넘어 군함·핵잠까지…'듀얼 유즈'
[필라델피아=이데일리 김상윤 특파원] 지난 22일(현지시간) 찾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네이비야드. 거대한 독(건조시설) 안에는 철판을 두드리는 소리와 용접 불꽃이 쉼 없이 튀었다. 4번 독에서는 국가안보다목적선박(NSMV)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컨테이너선 건조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조종우 한화필리조선소장은 “현재 두 개 독에서 네 척을 동시에 작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동안 멈춰 있던 미국 조선업이 다시 숨을 쉬는 듯한 장면이었다.

사실 필리조선소가 자리한 네이비야드는 200년 가까이 미 해군의 심장부였다. 항공모함과 구축함이 이곳에서 태어났고,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4만명이 넘는 노동자가 몰렸다. 그러나 냉전 종식 이후 조선 기능은 급격히 축소됐다. 연간 상선 한 척. 그것이 미국 조선업이 이곳에 남긴 마지막 흔적이었다. 값비싼 노동과 느린 생산, 민간 발주 부재가 겹치며 미국은 배를 만드는 나라가 되기를 포기했다.
한화(000880)가 1년 전 이 조선소를 인수했을 때 시장의 시선은 냉담했다. 당시 필리조선소는 노후 설비와 인력 부족으로 사실상 ‘유지’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변화는 수치로 드러난다. 수주 잔량은 1척에서 13척으로 늘었고, 직접 고용 인원은 30% 증가했다. 비생산 구역은 대형 블록 제작장으로 바뀌었고, 유휴 부지는 자재 적치 공간으로 재편됐다. 공정별 생산 효율은 2~3배씩 뛰었다. 한화는 여기에 더해 50억달러(약 7조2475억원) 추가 투자까지 예고했다.
변화의 핵심은 ‘기술’과 ‘사람’이었다. 한화는 노후 설비를 교체하고, 조선소의 공간과 동선을 다시 짰다. 동시에 가장 취약한 고리였던 인력 양성에 집중했다. 조선업이 사라진 미국에서 숙련공을 구하는 대신, 직접 길러내는 방식을 택했다. 견습 프로그램과 트레이닝 아카데미를 통해 용접과 절단 기술을 다시 가르쳤다. 현장에서는 “배를 만드는 기술을 다시 미국에 심는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오갔다.
한화가 그리는 그림은 더 크다. 한미 조선·방산 협력 프로젝트인 ‘마스가’(MASGA)에 따라 상선을 넘어 군함, 나아가 핵추진 잠수함까지 아우르는 ‘듀얼 유즈’(Dual-Use) 조선소를 꿈꾸고 있다. 필리조선소는 버지니아급 잠수함을 만드는 동부 조선소들 사이에 위치해 있고, 해군 원자로국과도 가깝다. 미 해군이 안고 있는 잠수함 생산 병목 문제를 풀 수 있는 후보지로 거론되는 이유다.
다만 한화는 핵추진 잠수함을 만든 경험이 부족하다는 한계를 안고 있다. 톰 앤더슨 한화디펜스USA 조선사업부문 사장은 “버지니아급 잠수함의 경우 설계부터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검증된 설계를 기반으로 시간과 노력을 훨씬 앞당길 수 있다”며 “버지니아급 잠수함 설계, 건조, 운용 경험, 특히 잠수함 프로그램의 모듈 또는 구성 블록 제작 관련 전문가를 영입하여 미국 팀을 확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필리조선소의 변화는 단순한 공장 회생이 아니다. 미국이 한때 포기했던 산업을 다시 전략 자산으로 끌어올리려는 정책 전환의 신호다. 배를 다시 만든다는 것은 철강이나 용접의 문제가 아니라 한미 동맹과 안보, 산업을 다시 묶는 선택의 문제다. 필리조선소에 우뚝 선 다시 한화의 ‘오렌지색 빛’은 미국 산업 전략의 방향을 비추는 신호등에 가까웠다.
김상윤 (yoon@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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