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만난 생태계…“잠자리도 사람도 모두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반기웅 기자 2025. 12. 25.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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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학숲도서관 생태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한 초등학생이 ‘곤충 눈’ 렌즈 체험을 하고 있다. 반기웅 기자

“잠자리는 훨훨 날아야 하잖아요. 그러려면 푸른 하늘이 있어야 해요.”

잠자리 목걸이에 ‘하늘색’을 칠하던 배지효양(대구 성동초 2)이 잠시 손을 멈추고 입을 열었다. 배양이 만든 작은 목걸이 속 잠자리는 풀과 나무 사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날고 있었다. 배양은 “잠자리가 환경오염으로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았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다”며 웃었다.

지난 18일 대구 수성구 무학숲도서관 문화강좌실. 책상 위에 6명의 아이들이 저마다 색을 입혀 만든 곤충 목걸이가 놓여 있다. 곤충 종류는 달랐지만, 꽃, 나무, 풀, 하늘 등 곤충이 살기 좋은 세상을 그린 풍경은 닮아 있었다. 아이들은 부지런히 손을 놀리며 “곤충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 “곤충과 함께 사는 사람들도 건강하면 좋겠다”고 했다.

무학숲도서관 생태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한 초등학생들이 생태 도감 만들기를 하고 있다. 반기웅 기자

이날 무학숲도서관에 모인 초등학생 6명은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생태 교육 프로그램 ‘숲속 곤충 탐험대’ 대원들이다. 아이들은 지난 9월부터 매주 목요일에 모여 인근 무학숲에서 곤충을 관찰하고, 곤충의 몸과 생김새를 배웠다. 곤충 체험을 통해 생태 감수성을 높이고,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운다는 취지에서 마련된 프로그램이다. 이날 수업은 마지막으로 그동안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곤충을 그리고, 목걸이를 만들며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수업을 거듭하면서 아이들은 곤충과 조금씩 가까워졌다. 처음에는 “징그럽다” “무섭다”며 곤충을 꺼리던 아이들 사이에서도 저마다 ‘최애’ 곤충이 생겼다. 사슴벌레와 잠자리, 나비까지 관심의 대상은 달랐지만, 아이들은 작은 벌레 한 마리도 생태계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곤충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함부로 잡지 않게 됐고, 어디에서 살고 무엇을 먹는지 먼저 묻기도 했다. 최애 곤충으로 벌을 꼽은 정민준군(대구 지산초 1)은 “원래 좋아하는 곤충이 없고 다 싫었는데, 이렇게 그림도 그리고 가까이서 자주 보다보니 벌을 좀 좋아하게 된 거 같다”고 말했다.

무학숲도서관 생태 교육 프로그램에서 초등학생들이 만든 곤충 나무 목걸이. 반기웅 기자

무학숲도서관에서는 고학년을 위한 ‘곤충박사 연구소’도 운영하고 있다. 초등학교 4~6학년을 대상으로 한 이 수업에서는 곤충의 생태를 보다 깊이 있게 다룬다. 아이들은 도서관 주변 숲에서 곤충과 식물을 조사하고 생태 지도를 만들며 생태계의 현실을 생각한다.

차지훈군(대구 성동초 4)은 “곤충이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려면 쓰레기를 덜 버려야 한다”며 “곤충을 만나면서 자연을 파괴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도심 속 숲에 자리 잡은 무학숲도서관은 생태·환경 교육에 특히 적합한 공간이다. 도서관 문을 나서면 바로 숲으로 이어지는 구조 덕분에 아이들은 책에서 배운 내용을 곧바로 자연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실내와 야외를 오가는 수업 방식은 생태를 지식이 아닌 경험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도서관에서는 곤충 강좌뿐 아니라 가족 텃밭 체험, 생태 인문학 수업, 숲속 보물찾기처럼 자연을 가꾸고 사유하며 즐기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무학숲도서관 열람실에 생태·환경을 주제로 한 책이 진열돼 있다. 반기웅 기자

무학숲도서관 사서 김진엽씨는 “이론 위주의 수업보다는 숲을 걷고, 직접 체험하며 자연을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다”며 “숲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자연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그동안의 생태·환경 교육의 성과를 인정받아 대구 수성구립용학도서관은 올해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선정한 첫 ‘기후환경교육 우수도서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용학도서관 분관인 무학숲도서관에서 진행한 현장 중심 프로그램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날 숲속 곤충 탐험대 마지막 수업에서 ‘어린이 곤충 박사상’을 받은 김우준군(대구 성동초 2학년)은 “친구들과 같이 도서관에서 곤충을 배우고 만들었던 시간들이 너무나 좋았다”며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반기웅 기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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