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성 심의 없이 공정하게 [세상 읽기]


홍원식 | 동덕여대 ARETE 교양대학 교수
혼란과 진통 끝에 지난 24일 허위조작정보에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부과하는 정보통신망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였다. 애초에 제시되었던 법안 내용에 대한 언론계와 시민사회 단체들의 우려점들이 부분적으로 반영되어 여러차례 수정되었지만, 기본적으로 허위조작정보를 정의하는 것이 칼로 무 자르듯이 간단 명쾌할 수는 없기 때문에 향후에도 여러 법률적 혼란과 논쟁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미 국회를 통과한 만큼, 이제는 법률 시행의 과정에서 최대한 합리적 판단과 좋은 판례들이 쌓이며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책임의 적절한 균형점이 만들어지길 기대할 따름이다.
정보통신망법 개정에 이어서 보도 및 논평의 공정성 심의 폐지를 담고 있는 방송법 개정안도 국회 본회의 심사를 앞두고 있다. 해당 개정안에서는 방송법 32조와 33조에서 “방송의 공정성 및 공공성 심의”라는 문구를 “방송의 공공성 및 공적 책임”으로 개정하고, 33조에서 명시하고 있는 방송심의규정 사항 중에 보도 및 논평의 ‘공정성’ 부분을 삭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렇게 방송법에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통해 보도 내용의 공정성을 판정하고 이를 제재하도록 규정하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는 새삼 새로운 것은 아니다. 준국가행정기구 성격을 가진 방심위가 공정성을 평가함으로써, 정권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서 방송을 길들이는 도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이 류희림 전 방심위원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방심위원장 재임 기간 ‘바이든·날리면’ 보도를 포함하여 특정 언론사에 대해서 수많은 공정성에 대한 심의 제재가 남발됐지만, 최근 해당 제재들이 법원에서 잇따라 효력정지 되거나 취소 판결을 받으면서 공정성 심의의 제도적 문제점이 더욱 크게 부각된 바 있다.
언론계와 언론학자들의 우려가 있었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과 달리, 이번 공정성 심의 폐지를 담고 있는 방송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일단 긍정적 평가가 더 우세한 듯하다. 그동안 공정성 심의가 실질적인 보도와 논평의 공정성을 평가하기보다는 여야의 출연 패널 숫자를 따지거나 방송 분량의 시간을 초 단위로 계량 평가하는 등 기계적 균형을 강제하는 성격을 지녔고, 이는 오히려 객관적 사실 전달을 가로막는 논점 흐리기와 주요 의제 회피하기 등의 모습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미 미국의 연방통신위원회(FCC)가 1987년 공정성 원칙(Fairness Doctrine)에 따른 심의를 폐기하고 대부분 유럽 국가에서도 직접적이고 경직된 공정성 심의를 하지 않는 것도, 국가행정기구에 의한 공정성 심의가 시민들에게 사실 전달의 측면에서 긍정적 효과보다는 언론의 독립성 훼손과 비생산적 논쟁 유도 등의 부정적 영향이 더 크게 작용한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공정성 심의 폐지가 자칫 언론의 공정성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주장으로 오해되는 것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현재 방송법 개정안은 어디까지나 국가행정기구에 의한 공정성 심의와 제재가 발생시키는 문제점에 대한 현실적 대안을 찾아가는 것이지, 언론이 지향할 가치와 공적 책임으로서 공정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방송법 개정안의 취지에서도 밝히고 있는 것은 공정성이 갖는 추상적 성격을 감안하여 이를 방송의 재승인 재허가 평가 항목으로 활용하는 등의 직접적인 심의 제재 항목으로 적용하지 않겠다는 것이 핵심이지, 방송의 공적 책임으로서 공정성 추구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즉, 공정성 심의의 폐지가 방송이 무엇이든 자의적으로 보도하고 편파적으로 논평해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영국에서는 ‘적정한 불편부당성’(Due Impartiality) 개념을 통해서 덜 경직된 형태로 공적 책임을 정의하고, 오프콤에서 직접 공정성 심사를 하는 대신 독립언론모니터(IMPRESS)를 통해서 협의된 자율 심의를 진행하고 있다. 단순히 개별 방송사들의 자체 심의에 맡겨두는 것이 아니라 언론 종사자들의 독립 협회와 행정기구를 연계한 협의된 자율 심의 체제를 효과적으로 운용하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우리도 이번 개정안을 통해서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 공정성에 대한 직접적 규제에서는 한걸음 벗어날 수 있게 된 걸 환영하지만, 이러한 흐름에 걸맞은 자율 심의 체제에 대한 논의도 뒤처지지 않고 진행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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