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마사회, ‘베팅 넘어 가치로’...산업·문화·공공성 아우르는 스포츠 도약

정현·하재홍 2025. 12. 25.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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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츠런파크 서울 출발대를 박차고 나서는 경주마들. 사진=한국마사회

말산업을 이끄는 한국마사회가 경주로 안팎에서 '달리는 방식' 자체를 바꾸며 의미 있는 전환의 한 해를 만들어가고 있다.

공정성과 국제 경쟁력 강화, AI 기반 기술 혁신, 승마의 대중화, 그리고 말 복지까지. 2025년 한국경마는 단순한 경주 운영을 넘어 산업·문화·공공성을 아우르는 방향으로 진화하며 새로운 정체성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어떻게 달릴 것인가'라는 질문에 제도와 현장 변화로 답해온 한국마사회의 행보는 경마를 '즐기는 스포츠'이자 '책임 있는 산업'으로 재정의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문화 레저 플랫폼으로 거듭난 렛츠런파크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경마 건전화 정책을 중심으로 한 이용 환경의 전환이다. 과천 렛츠런파크 서울은 더 이상 베팅 중심의 공간이 아니라, 시민 누구나 찾을 수 있는 문화·레저 플랫폼으로 재구성되고 있다.

봄 벚꽃축제 기간에는 말과 벚꽃, 공연과 체험 프로그램이 어우러진 복합 문화축제가 펼쳐지며 지난해에만 약 30만 명에 가까운 시민이 방문했다. 승마 체험, 마방 견학, 말 테마 포토존 등은 경마와 승마에 대한 심리적 진입 장벽을 낮추며 가족 단위 방문객과 MZ세대의 발길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경마가 '특정 이용자만의 공간'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대중 친화적 여가 문화로 자리매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제도적 변화 역시 병행됐다. 정식 운영 2년 차를 맞은 온라인 마권 발매는 건당 구매금액을 약 5천 원 수준으로 관리하며 소액·분산 참여 구조를 정착시켰다. 이는 과도한 사행성을 억제하는 동시에 합리적 소비를 유도하는 장치로 작동하고 있다. 특히 불법 온라인 도박 시장으로 흘러가던 수요를 합법 시장으로 흡수해 음성적 거래를 양성화하는 효과도 거두고 있다. 한국마사회는 온라인 베팅 환경을 제도권 안에서 관리하는 한편, 렛츠런파크 현장에서는 경주 관람과 문화 콘텐츠를 강화해 '관전형 레저 수요'에도 대응하고 있다. 건전화 정책과 문화 콘텐츠 확대를 병행하며 경마 수익의 공익 환원과 말산업 기반 강화라는 공기업 본연의 역할을 다시금 부각시키고 있다.
지난 9월 7일 열린 코리아컵 경기를 찾은 3만 여 명 관람객들. 사진=한국마사회

◇국제무대에서 존재감 드러내는 K-경마
국제화 전략은 한국경마의 또 다른 변화 축이다. 2025 코리아컵과 코리아스프린트에는 일본과 홍콩 등 경마 강국의 경주마와 기수들이 대거 참가하며 국제 등급 IG3급 대회로서의 위상을 재확인했다. 특히 일본 경마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스타자키 다케 유타카의 원정 출전은 국내외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대회의 상징성을 높였다. 우승마에게 미국 브리더스컵 출전권이 부여되는 등 세계 주요 레이스와의 연계 강화는 한국경마가 국제 경주 일정 속에서 점차 존재감을 확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경주 콘텐츠의 해외 수출 확대도 주목할 만하다. 한국마사회는 경마 실황 중계를 아시아, 북미, 유럽, 오세아니아 등 전 대륙 24개국에 공급하며 'K-경마' 브랜드의 글로벌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연간 약 1천200억 원에 이르는 수출 실적은 단순한 재정 성과를 넘어 한국 경마 시스템의 신뢰성과 운영 역량이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방증으로 해석된다. 이는 장기적으로 국내 말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기반이 되고 있다.

◇경마에 등장한 AI 기술...하지만 대체불가한 '사람'의 기술
기술 혁신 분야에서는 AI가 핵심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마사회는 AI 기반 불법 경마사이트 통합 탐지 시스템을 구축해 온라인상 사설 마권 판매, 우회 홍보, SNS 확산 경로까지 자동 분석·차단하고 있다. 이를 통해 불법 경마로 인한 사회적 피해를 줄이고 산업 전반의 투명성을 높이고 있다. 또한 AI를 활용한 경주 심의 데이터 분석, 중계 화면 내 경주마 자동 식별 기술 도입으로 경기 판정의 공정성과 시청 편의성도 한층 강화됐다. 기술은 경마 운영의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신뢰 회복의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말산업은 기술만으로 완성될 수 없는 영역이다. 장제사, 재활승마지도사, 말 조련사 등 말과 직접 교감하는 전문 인력은 AI가 대체할 수 없는 핵심 자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도제식 훈련을 통해 축적되는 숙련된 기술, 말의 상태를 읽어내는 감각, 교감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관리 능력은 인간만이 수행할 수 있는 영역이다. 기술 혁신과 함께 휴먼 파워의 가치가 재조명되며 말산업의 균형 잡힌 발전이 이뤄지고 있다.
돌봄승마 현장에 참여한 어린이가 미니어처 포니를 만져보고 있다. 사진=한국마사회

◇승마의 대중화...국민 곁에 한걸음 더 다가간 승마
승마의 대중화 또한 의미 있는 성과다. 초등 검정교과서에 승마가 정식 수록되며 학교체육 승마가 공교육 현장에 본격 안착했고, 민간 승마장과 연계한 체험 수업, 거점형 키움센터와 협업한 '찾아가는 승마 프로그램'도 확대되고 있다. 아이들은 말을 통해 정서적 안정과 자신감을 키우고, 생태 감수성을 자연스럽게 익히고 있다. 힐링승마, 도심 속 승마체험 등 국민 참여형 프로그램 역시 확대되며 승마는 '특별한 스포츠'에서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공공 레저'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출생에서 은퇴후까지...생애주기별 지원체계 구축해 가는 말 복지
말 복지 강화는 말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하는 핵심 과제로 자리 잡았다. 한국마사회 산하 제주목장은 개장 30주년을 맞아 최첨단 의료 인프라와 전문 수의 인력을 기반으로 말 중증외상센터를 운영하며 생애주기형 복지 시스템을 구축했다. 은퇴마 케어, 재활승마, 발굽 건강 관리, 취약 현장 복지 컨설팅 등은 말의 삶의 질을 높이는 동시에 복지 인식을 산업 전반으로 확산시키고 있다. 말 복지는 단순한 보호 차원을 넘어 말의 자연적 행동과 정서적 안정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경주로에서 시작된 변화는 산업과 문화, 공공성으로 확장되고 있다. 한국마사회가 '달리는 방식'을 바꾸며 만들어낸 이 흐름은 다가오는 말의 해를 새로운 도약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다. 한국경마의 오늘은 말산업의 미래를 가늠하는 중요한 이정표가 되고 있다.

정현·하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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