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청춘불패’ 어르신들 “마을방송하며 젊어지고 성장” [지역에 사니다]
코로나 때 복지관 중국어반 70~80대 뭉쳐
김해 곳곳 탐방하며 현장 방송 촬영 열정

김해에서 마을미디어 활동을 하는 70~90대 어르신들이 있다고요? 처음 얘기를 들었을 땐 믿어지지 않았다.
코로나19기 기승을 부렸을 때 노령층에 큰 타격을 줬다. 김해 복지관 운영도 중단돼버렸다. 중국어반 20명 가운데 동기 7명은 공부를 못하게 된 점이 아쉬워 짬짬이 만나다가 의기투합했다. 중국어반 교사 권유로 마을방송 활동을 하기로 결심했다. 마을미디어 명칭은 '청춘불패'다.
지난 11일 김해 삼방어울림센터에서 청춘불패 회원 6명과 얼굴을 마주했다.
첫 방송 서툴렀지만 몰랐던 마을 알아가며 감탄
이들이 부담감을 덜며 마을미디어를 접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어 교사가 바로 김해 마을미디어 플랫폼인 김해FM 조아라(50) 대표였기 때문이다. 김해FM은 지역 마을미디어가 손쉽게 방송하도록 방송 장비를 제공하고 편집해준다.
김원형(88·삼계동·전 기업체 임원) 청춘불패 회장은 "선생님이 마을 방송을 권유했을 때 김해에는 보존하고 계승해야 할 문화유산이 많아서 신문이나 방송 미디어에 기록을 남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방송 경험이 전혀 없는 이들이 촬영에 참여하고 방송을 하기에는 서툴렀다. 첫 방송은 마을 이야기를 지역에 전해보고자 시작했다. 회원들은 2020년 한림면 화포천, 진례면 하촌 효자마을, 상동면 백파선마을, 봉황동, 진례면 고령마을 등을 직접 탐방해 마을 이야기를 듣고 느낌을 전하는 현장 콘텐츠를 만들어냈다.
청춘불패 회원들 목소리와 지역이야기는 '청년이 청년에게 시즌1' 방송으로 송출됐다. 어르신들은 김해에서 살아오며 좋았던 이야기와 김해에 살면서도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마을을 보고 들으며 감동하고 행복해 한다.
"예전에는 바싹 마른 나무를 '갈비'라 했어요. 이런 갈비로 불을 뗐다고". "소나무 이파리 이기 갈비라. 갈은 '마를 갈'이고". "뽕나무 열매를 경상도말로 뭐라 하는 줄 압니꺼. 오디 말고. 오들깨라 했어요". "진례에는 가죽나물이 유명했어요. 말려서 고추장 발라서 요리를 많이 해뭇거든요". "이 나무는 쌀밥나무, 이팝나문데 옛날에는 배가 고파서 이걸 다 먹었지".
쉴 새 없이 어르신들 옛날이야기가 쏟아진다. 마을을 천천히 거닐며 갑자기 누군가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한 소절 부르니 전부다 같이 흥얼거린다. 방송인지 나들이인지 산책인지 알 수 없는 풍경이 뒤섞인 채로 카메라는 계속 돌아간다.
어떤 어르신은 김해에서 20여 년 살아왔지만 고령마을 구경은 난생 처음이라며 신기해했다. "해발 300m 높은 지대에 있는 아름다운 고령마을을 처음 가봤어요. 봄에 쑥이 너무 잘 자라나 쑥 캐서 약쑥 만들고 즐겁고 좋은 추억이었지요", "고령마을이라 해서 경북 고령인 줄 알았는데, 김해에 고령마을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어요".

김해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덕 경시풍조 걱정
청춘불패 회원들은 2000년 전 금관가야의 찬란한 고적과 문화유산을 김해 으뜸 자랑거리라고 했다. 김해 문화유산이 전국에 더 많이 알려져 온 국민이 김해에 여행하러 오고 힐링하고 가면 좋겠단다. 가야 유적인 수로왕릉, 구지봉, 봉황동 유적과 더불어 화포천을 멋진 관광지로 손꼽았다.
황병인(92·봉황동·전 김해읍 시절 동장) 회원은 "봉황대에 여의낭자와 황세 설화가 담긴 여의각이 있고 봉황대 둘레길에 조개껍데기가 아직도 많아 옛날에 바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송수복(89·진례면·농부) 회원은 "(1900년 대 초) 힘이 장사였던 '송 장사'가 진례에서 연자루(현 동상동 자리에 있었으나 지금은 없음)에 와서 저녁을 먹고 놀다가 집으로 돌아갔다는 얘기가 전해진다"며 "진례 송씨 집성촌에 전해져 오는 송 장사 이야기를 발굴해 기록해 볼만하다"고 제안했다.
최근 뉴스를 보면 흉악 범죄 보도가 적지 않다. 어르신들은 이런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김 회장은 "요즘 도덕과 윤리가 너무 경시되고 있다. 젊은 층과 시니어층은 생각 자체가 달라서 이의를 달면 꼰대 취급 당한다. 도덕 재무장을 하지 않으면 사회가 지속되지 못한다"고 걱정했다.
오영례(72·내동·자영업) 회원은 "학교교육에 도덕과목 교육을 더 강화하면 좋겠다. 그저 영어와 수학만 공부시간을 늘리니 벌어져선 안 되는 일들이 자주 벌어진다"고 말했다.
황선유(77·삼계동·주부) 회원은 "가정에서 사회성 교육이 안 돼 사회공동체 결핍 문제가 발생하고 개인주의적 사고를 하게 되면서 온 사회가 혼란스럽고 인륜이 경시되고 있다"며 "내 아이가 최고라는 생각을 고치는 가정교육이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김해 시니어들 활동, 전국에 알리고 싶다"
청춘불패 회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마이크다. 마이크만 잡으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처음 방송에 임할 때는 하고픈 말을 해야 하는데 두려움이 커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자꾸 반복하고 계속 마이크를 접하다 보니 이제는 나아졌다.
이들은 올해 초 시니어통역봉사단과 함께 방송에 '오늘의 한마디' 코너를 만들었다. 하루에 한마디씩 중국어, 영어, 일본어 세 가지 언어로 시니어통역봉사단이 짧은 문장을 발음하면 청춘불패 어르신들이 따라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면 '힘내세요'를 3개 국 언어로 통역해 여러 번 따라하며 회화를 익힌다.
김 회장은 "방송하고 나면 하고 싶은 얘기를 조리있게 못해서 늘 후회하지만 훈련하는 일도 삶의 한 과정이며 정신적으로 많이 성장했고 더 젊어졌다고 생각한다"며 마을방송을 자랑했다.
청춘불패 활동은 계절에 따라 늘었다 줄었다 한다. 노령층이라 많이 덥거나 추우면 방송하기 어렵고 자주 하지도 못한다. 겨울 지나고 새해 봄부터 '청년이 청년에게 시즌2' 방송을 이어갈 계획이다.
김 회장은 "우리들 각자 계획도 있지만 청춘불패 김해 시니어들 활동을 경남뿐 아니라 전국에 알리고 싶다"고 새해 희망을 밝혔다.
/이수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