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박수진의 행복한 시골살이]

박수진(남해 아마도책방 책방지기) 2025. 12. 25.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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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운영하는 책방과 같은 이름으로 출판사 등록을 했다. 나름대로 큰 결심이었다. 5년 전 책방과 남해살이 이야기를 독립출판물로 엮은 <남해에서 뭐 해 먹고사냐 하시면 아마도 책방이겠지요>를 개정판으로 내겠다는 다짐만 해온 지도 수년째. 생업이 바빠서 각고의 공을 들여야 하는 원고 마감과 책 만들기 작업은 늘 우선순위에서 밀리곤 했다. 그러나 재출간을 기다리는 독자를 언제까지고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나의 두번째 책. /박수진
이왕 재출간을 목표로 정했다면 정식으로 출판사 등록을 하고, ISBN(국제표준도서번호) 바코드를 붙인 단행본으로 만들어 대형서점에도 입점을 해보기로 한 것이다. 군청 문화체육과에 출판사 등록 신청을 하고 소정의 면허세를 내고 나니 생각보다 빨리 신고필증이 나왔다. 등록만 끝났을 뿐인데 뭔가 해낸 느낌이 들었다. (아니었다….)
재출간을 쉬울 거라는 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박수진

D-180, 재출간은 좀 쉬울 거란 착각

출판사 등록을 한 뒤에도 좀처럼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기존 원고가 있으니 할만해 보였다. 안일함으로 네 달여간 원고를 내버려두다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연초에 신청해 둔 북페어 참가가 코앞으로 다가온 것. 이제 정말 움직여야 할 때였다.

원고 몇 자만 더 추가하면 되겠지… 싶었는데 예상외의 복병이 나타났다. 책 안에 박제된 5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책에 등장한 주변 인물들의 근황도, 나를 둘러싼 상황도 많은 것이 달라 있었다. 책방은 한 차례의 영업 종료와 재오픈이라는 변곡점을 거쳐 송정분점까지 내기에 이르렀고, 수영 대신 서핑을 시작했으며, 반려묘는 한 마리에서 네 마리로 늘었다. 글에 소복이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모두 다듬어야 했다. 하나씩 손을 대다 보니 일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D-60, 마감이라 쓰고 감옥이라 읽는다

글쓰기 모임을 병행하며 쓴 원고를 최대한 모았지만, 생각보다 새로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남은 일정이 빠듯해서 조금 더 본격적으로 원고 작업을 해야 한다고 판단, 최후의 수단으로 스터디 카페를 떠올렸다. 학창 시절 독서실에서 벼락치기로 시험공부했던 습관이 남아선지, 단시간에 성과를 내야 할 때면 정숙한 분위기의 공간에서 집중이 잘 되었기 때문.

30시간에 5만 원 하는 정액권을 결제한 뒤 매일 스터디 카페로 출근 도장을 찍었다. 학생들 하교 시간 전에 출근해야 좋은 자리를 맡을 수 있었는데, 내가 선호한 자리는 3번. 노트북에 들어갈 기세로 원고를 보다가 고개를 들면 '꿈의 크기만큼 당신 또한 자랍니다'라는 문구가 보였다. 기지개를 켜려고 상체를 일으키면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각자의 목표를 위해 열중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좋은 자극이 되어 나도 다시 고개를 숙이고 작업에 몰두할 수 있었다.
저자 소개글. /박수진

D-30, 본격 편집 작업

1인 출판사의 가장 큰 고충은 아마도 출판사 사장이 저자이자 최초 독자, 편집자이자 디자이너이자 마케터까지 모두 맡아서 해야 한다는 점이 아닐까? 수차례 교정을 하면서 내 글을 고치다 보면 새로 쓴 이야기조차 금세 케케묵은 느낌이 났다. 이게 과연 다른 사람에게도 재미있을까? 의심도 피어올랐다. 그래도 이만큼 솔직한 책방 이야기는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힘을 내기로 했다. 30시간 정액권을 한 번 더 결제하고 나서야 끝까지 빈칸으로 남겨두었던 프롤로그를 완성했다.

교정 감옥에서 빠져나와 자유를 만끽하려는 찰나, 곧 편집 지옥이 시작되었다. 몇 번의 독립출판물을 만든 경험이 있기에 인디자인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것은 문제 되지 않았는데, 표지 삽화는 도무지 자신이 없었다. 책의 얼굴을 담당하는 중요한 일인 만큼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며 얼마간 시간을 흘려보냈다. 감사하게도 초판 표지 작업을 함께 했던 일러스트 작가님이 단행본 작업도 맡아주셨다. 항상 바쁘다는 걸 알고 있어서 선뜻 제안하기가 어려웠는데, 작가님이 먼저 흔쾌히 작업 제안을 해준 덕분에 나와 네 고양이가 담긴 단정한 표지가 나왔다.

새 옷을 입은 책을 보니 절로 힘이 났다. 그동안 모아온 필름 사진과 새로운 문구를 타이핑한 내지 디자인도 얼추 마무리되었다. ISBN·ISSN·납본 시스템 홈페이지에서 ISBN을 신청했다. 이제 13자리의 숫자와 바코드가 부여되면, 책이 출간될 준비를 마쳤다는 뜻. 고심하여 제작 사양을 정하고, 인쇄소에 견적 문의를 하고 최종 인쇄 데이터를 넘기고 나니 고지가 코앞이라는 실감이 났다.
인쇄소에서 보내준 감리 사진. /박수진

D-0, 책의 생일날

책이 배송될 날만을 기다릴 때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날짜를 확인하게 된다. 이미 내 손을 떠난 일이지만, 그 결과가 손에 다시 쥐어질 때까지 별일 없이 무사하길 바라는 마음이랄까. 다만, 사전 예약자들에게 배송을 약속한 날짜가 있었기에 평소보다 조금 더 애가 탔다.

걱정이 무색하게 책은 약속한 날 무사히 책방으로 도착했다. 3단으로 쌓여 있던 책을 정리하고 나서 하나 뜯어보았다. 이미 며칠 전 제본소에서 만들어졌지만, 책은 지은이의 손에 닿았을 때 비로소 탄생한다. 모니터로만 보던 책의 실물을 마주하는 순간에는 '드디어 결과물이 나왔다'는 기쁨과 안도감, '혹시 파본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 '이걸 언제 다 파나' 하는 걱정 등 온갖 감정이 교차한다. 몇 개 상자를 더 열어 확인해 보았는데 다행히 오차 범위 내 파본을 제외하고 큰 문제가 없었다. 11월 30일, 책의 생일을 조촐하게 축하하며 세상 밖으로 나갈 준비를 마쳤다.
드디어 도착한 나의 새책. /박수진

D+10,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책방지기로서 도매처에서 책을 주문할 줄만 알았지, 출판사로서 책을 등록하는 건 전혀 다른 일이었다. 마지막 관문은 바로 배본과 마케팅. 우선 책의 핵심 내용과 전반적인 소개를 포함한 보도자료가 필요했다. 지은 책의 장점을 어필하고, 대형서점 3사의 가이드라인에 맞게 신간 등록 요청 메일을 보냈다. 전자계약에 서명까지 하니 수 시간 내에 사이트에서 내 책이 검색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손길을 거친 책을 인터넷 서점에서 판매하다니, 새삼 신기했다.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요즘은 출판사가 워낙 많고 하루에 쏟아지는 신간도 수백 종이라, 대형서점에서도 재고를 쌓아두고 판매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나는 별도의 MD 미팅(신간을 분야별 담당 MD에게 소개하는 자리)을 하지 않았기에 홍보가 전혀 되지 않은 상태. 시간을 들여 구매팀에 문의 메일을 따로 보냈더니 오프라인 서점에 진열될 50부 발주 요청이 들어왔다. 막 첫발을 뗀 작은 출판사에는 큰 부수였다. 친애하는 전국의 독립서점에도 입고 문의를 했다. 오래 연을 맺고 지낸 책방지기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메일을 보냈고, 곧 다정한 답장이 왔다. 감사한 마음으로 친구들 손까지 빌려 납품할 책들을 포장하고, 택배 상자를 이고 지고 우체국을 오가는 생활이 일주일간 이어졌다.
사인본 제작. /박수진

D+30, 다음 여정을 향해

내년이면 남해 이주 10년 차를 앞둔 시점, 사람들은 여전히 내게 묻는다. 남해에서 먹고살 만하냐고, 책방은 언제까지 할 거냐고. 주위를 둘러보면 쉬운 일이 아닌 것 같기는 하다. 좋아하는 일을 하다가 유지가 어려워져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지 못해서, 결국 도시로 돌아간 친구들이 툭하면 떠오르곤 하니까. 새로운 여정을 떠나려는 친구나 어떤 방법으로든 남으려는 친구나, 누구의 선택도 가볍지 않은 것을 알기에 함부로 뭐라고 할 수가 없다. 그저 남해에서 만나게 된 소중한 인연들이 이곳에서 좀 더 길게 이어지기를 소망하는 수밖에.
책 표지. /박수진

이번 책에서 제일 마지막에 쓴 문장은 이렇다. "불안을 연료 삼아 달려온 과거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남들과 조금 다르게 살아도 된다고, 이런 삶도 충분히 괜찮다고."

내가 쓴 문장이 과거의 나를 안아주는 것 같아 자못 애틋해진 마음으로, 10년 여정이 담긴 이 책을 세상에 내놓는다. 불안함을 안고서도 이곳 남해에서, 혹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잘해 먹고살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이 다정하게 가닿기를 바란다. 그리고 출판사라는 새로운 영역에 발을 내디딘 내게도 힘이 되기를 바란다.

/박수진(남해 아마도책방 책방지기)

☞ 필자는 아름다운 섬 남해를 닮고 싶은 작은 서점, 아마도책방을 운영한다. 반려묘 바람, 노을, 별, 달과 함께 남해에서 어느덧 아홉 번째 해를 맞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