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박수진의 행복한 시골살이]


D-180, 재출간은 좀 쉬울 거란 착각
출판사 등록을 한 뒤에도 좀처럼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기존 원고가 있으니 할만해 보였다. 안일함으로 네 달여간 원고를 내버려두다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연초에 신청해 둔 북페어 참가가 코앞으로 다가온 것. 이제 정말 움직여야 할 때였다.
원고 몇 자만 더 추가하면 되겠지… 싶었는데 예상외의 복병이 나타났다. 책 안에 박제된 5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책에 등장한 주변 인물들의 근황도, 나를 둘러싼 상황도 많은 것이 달라 있었다. 책방은 한 차례의 영업 종료와 재오픈이라는 변곡점을 거쳐 송정분점까지 내기에 이르렀고, 수영 대신 서핑을 시작했으며, 반려묘는 한 마리에서 네 마리로 늘었다. 글에 소복이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모두 다듬어야 했다. 하나씩 손을 대다 보니 일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D-60, 마감이라 쓰고 감옥이라 읽는다
글쓰기 모임을 병행하며 쓴 원고를 최대한 모았지만, 생각보다 새로 쓰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남은 일정이 빠듯해서 조금 더 본격적으로 원고 작업을 해야 한다고 판단, 최후의 수단으로 스터디 카페를 떠올렸다. 학창 시절 독서실에서 벼락치기로 시험공부했던 습관이 남아선지, 단시간에 성과를 내야 할 때면 정숙한 분위기의 공간에서 집중이 잘 되었기 때문.

D-30, 본격 편집 작업
1인 출판사의 가장 큰 고충은 아마도 출판사 사장이 저자이자 최초 독자, 편집자이자 디자이너이자 마케터까지 모두 맡아서 해야 한다는 점이 아닐까? 수차례 교정을 하면서 내 글을 고치다 보면 새로 쓴 이야기조차 금세 케케묵은 느낌이 났다. 이게 과연 다른 사람에게도 재미있을까? 의심도 피어올랐다. 그래도 이만큼 솔직한 책방 이야기는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힘을 내기로 했다. 30시간 정액권을 한 번 더 결제하고 나서야 끝까지 빈칸으로 남겨두었던 프롤로그를 완성했다.
교정 감옥에서 빠져나와 자유를 만끽하려는 찰나, 곧 편집 지옥이 시작되었다. 몇 번의 독립출판물을 만든 경험이 있기에 인디자인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것은 문제 되지 않았는데, 표지 삽화는 도무지 자신이 없었다. 책의 얼굴을 담당하는 중요한 일인 만큼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며 얼마간 시간을 흘려보냈다. 감사하게도 초판 표지 작업을 함께 했던 일러스트 작가님이 단행본 작업도 맡아주셨다. 항상 바쁘다는 걸 알고 있어서 선뜻 제안하기가 어려웠는데, 작가님이 먼저 흔쾌히 작업 제안을 해준 덕분에 나와 네 고양이가 담긴 단정한 표지가 나왔다.

D-0, 책의 생일날
책이 배송될 날만을 기다릴 때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날짜를 확인하게 된다. 이미 내 손을 떠난 일이지만, 그 결과가 손에 다시 쥐어질 때까지 별일 없이 무사하길 바라는 마음이랄까. 다만, 사전 예약자들에게 배송을 약속한 날짜가 있었기에 평소보다 조금 더 애가 탔다.

D+10,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책방지기로서 도매처에서 책을 주문할 줄만 알았지, 출판사로서 책을 등록하는 건 전혀 다른 일이었다. 마지막 관문은 바로 배본과 마케팅. 우선 책의 핵심 내용과 전반적인 소개를 포함한 보도자료가 필요했다. 지은 책의 장점을 어필하고, 대형서점 3사의 가이드라인에 맞게 신간 등록 요청 메일을 보냈다. 전자계약에 서명까지 하니 수 시간 내에 사이트에서 내 책이 검색되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의 손길을 거친 책을 인터넷 서점에서 판매하다니, 새삼 신기했다.

D+30, 다음 여정을 향해

이번 책에서 제일 마지막에 쓴 문장은 이렇다. "불안을 연료 삼아 달려온 과거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남들과 조금 다르게 살아도 된다고, 이런 삶도 충분히 괜찮다고."
내가 쓴 문장이 과거의 나를 안아주는 것 같아 자못 애틋해진 마음으로, 10년 여정이 담긴 이 책을 세상에 내놓는다. 불안함을 안고서도 이곳 남해에서, 혹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잘해 먹고살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이 다정하게 가닿기를 바란다. 그리고 출판사라는 새로운 영역에 발을 내디딘 내게도 힘이 되기를 바란다.
/박수진(남해 아마도책방 책방지기)
☞ 필자는 아름다운 섬 남해를 닮고 싶은 작은 서점, 아마도책방을 운영한다. 반려묘 바람, 노을, 별, 달과 함께 남해에서 어느덧 아홉 번째 해를 맞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