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려 사는 농촌' 연구하면서 '남해다운' 건축에 빠진 귀촌 청년 [지역에 사니다]
최근 <평화롭게 치열하게> 발간
연구 논문과 에세이 결합 독특
건축 철학과 지역 일상 담아내

'산토'는 지역을 연구하는 건축사
그는 지난해 대학원 연구 활동으로 남해군을 찾아 귀촌 청년들이 만든 세 단체를 인터뷰했다. 귀촌 청년들의 활동 특성을 분석하면서 귀촌 생활을 자연스럽게 경험했다. 그러면서 지역 공동체가 어떻게 형성돼있는지, 이 공동체가 지역민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 지역 재활성화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등을 탐구했다. 1년 동안 연구를 마치고 논문 <경남 남해군 귀촌청년을 대상으로 한 관계인구 관점에서의 활동특성>을 발표했다. 논문만 발표한 게 아니라 자신도 지난해 12월 말 완전히 남해로 귀촌해 산토건축을 열었다. '산토'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이 출생한 땅(産土)'이다. 문 건축사는 여기에 건축을 둘러싼 산과 토양, 지역 토양에서 자라난 자생초 같은 건축을 하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문 건축사에게는 '남해 최초 여성 건축사'라거나 '남해 최연소 건축사'란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하지만, 그는 이를 그렇게 의미 있게 보지는 않는다. 쓴 책과 인터뷰 내용으로 정리하면 그가 남해에서 건축사로서 하는 일의 핵심은 '지역 탐구'다.
그가 운영하는 산토건축은 지역성 연구와 건축·인테리어 설계 그리고 지역 기록을 한다. 이를 통해 지역성을 담은 건축을 하고자 한다. 지역성을 담으로면 그 지역의 역사 문화 등 맥락을 먼저 알아야 한다. 문 건축사는 초등학생 때부터 살아온 인천이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이런 맥락을 익혔다고 했다.
"인천을 보면 서울로 자원이 다 쓸려나간다. 교육 환경도 비교된다. 개항했던 근대엔 제물포로 발전했지만, 중심지 또는 번화가가 구월동이었다가 송도로 옮겨갔다. 가족이 살던 연수동도 비슷한 상황을 맞았다. 서울은 중심지가 바뀌어도 남은 지역이 황폐해지진 않는데, 인천은 그렇게 남게 된 지역의 주거 환경이 열악해졌고 낙후됐다. 부동산으로 재테크를 하는 사람들은 개발지 따라다녔다. 부동산으로만 지역의 등락이 결정됐다. 경제가 순환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남아있는 지역 관점에서 봤을 때 이런 개발의 형태가 맞는 것인지 생각했다."

남해에 맞는 건축 설계를 고민해야
그는 그동안 어떤 건물을 지었고, 앞으로 어떤 건물을 짓고 싶은 걸까. 이는 그가 남해 귀촌 청년들을 연구하면서 큰 줄기로 삼았던 질문과도 통한다. '귀촌 청년들은 지역 재활성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나?' 이제 그도 남해에 온 청년이 됐으니 질문이 자신에게도 돌아온 셈이다. 그의 책에는 이러한 고민의 흔적이 담겼다.
"지역성을 담은 건축은 '물리적인 공간'과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아우르는 '시간', 이 두 가지 축을 모두 고려하여 설계해야 한다."(119쪽)
"경관을 해치지 않으면서 안락하고, 주변에 조화롭게 녹아드는 건축물은 어떻게 설계해야 할까? 단순히 건축물을 조형이 아니라, 주변 환경과 사람의 양분을 받아 공생하는 하나의 생명체로 본다면 답이 조금 보일 수도 있겠다."(220쪽)
문 건축사는 공간을 움직일 수 있는 대상, 유기적인 존재로 본다. 확장 가능성 즉, 공간이 커지거나, 작아졌을 때 어떤 형태가 될 지 생각한다. 특히 남해에는 오래된 집이 많아 확장 가능성을 고려한 설계가 쉽지 않다. 규모가 정해져 있고, 기존 공간이 삶의 형태가 바뀐 현대인에게 맞지 않기도 하다.
"남해에는 건물을 한 번 지으면 오래 지속된다. 올해 작업했던 주택 중 한 곳은 70~80년 된 것으로 보였다. 신축하더라도 재료, 구조, 형태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잘 쓰일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도 오래 지속될 것이고, 또 그만큼 오래 비워질 수도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다.
아무래도 관광지이기에 남해의 아름다운 자연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거나 마을 주민이 접근하기 어려운 신축 건물도 들어선다. 이 관련한 생각도 책 곳곳에 드러나 있다.

서울보다 입체적이고 풍요로운 일상
문 건축사의 책은 귀촌 후 현실적으로 맞닥뜨릴 문제에 해결책을 전해주는 길라잡이 같기도 하다
"누군가와 마주치고 웃으며 인사 나눌 용기만 있다면, 시골 마을도 충분히 살만한 공간이다. 농촌마을에 사는 것이 청년들이 선택할 수 있는 당연하고 합리적인 옵션 중 하나가 되기를 바란다."(104쪽)
남해에 처음 정착하며 살았던 상주면 두모마을에서의 적응기 '두모마을 주민이 된 건축가'(64쪽)를 보자. 그는 마을회관에 떡을 돌리며 동네 주민에게 첫인사를 건넸다. 공동 식사 시간에 가서 스스럼없이 곁에 앉아 밥을 먹고, 이장에게 이것저것 도움을 청했다.
그에게는 주민들이 집 바깥의 마을, 자신이 다니는 길거리도 깨끗하게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매번 동네 하천에서 쓰레기를 줍고, 길거리에서도 쓰레기를 주워 호주머니에 넣고 걸어가는 주민들을 심심치 않게 본다. 그는 '이게 사람 사는 것이지'라고 느꼈다. 이를 통해 소통과 연결 없이 점점 더 폐쇄적인 구조로 지어지는 현대식 아파트를 건축가로서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생각해 보기도 했다.
이제 문 건축사가 남해로 이사 온 지 만 1년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다닌 직장에서도 분명 행복한 순간이 있었다. 실력도 잘 쌓았고, 건축을 더 깊이 공부하고 싶어 대학원 공부도 마쳤다. 하지만, 서울에서 그는 날카로운 칼같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남해에서 자라는 시금치가 해풍을 맞아 달큼해지듯, 나도 좋은 이웃과 바래길을 걸으며 해풍을 맞았더니 변한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책 마지막에 남해바래길을 함께 걷는 모임 '화-잇팅'과 찍은 사진과 함께 이런 문장이 있다.
"서울에서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에 둘러싸여 살았다면, 남해에서는 훨씬 다양한 사람들과 접할 일이 많다. 편견이 깨지고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경험이다. 이곳에서의 삶은 사람들로 인해 서울보다 훨씬 입체적이고 풍요롭다."(247쪽)
/주성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