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기다린 양자기업 큐노바…"기술창업, 해외시장에 초점 맞춰야"

"국내 벤처 약 95%는 코스닥 상장이 목표지만 이스라엘은 70~80%가 미국 나스닥 상장을 목표로 합니다. 투자나 사업 규모가 여기에서 달라집니다. 같은 수준의 기술을 개발하고도 사업화 단계에서 국내 기업이 해외 기업에 밀리는 이유입니다."
최근 대전에서 만난 이준구 큐노바 대표(KAIST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국내 기술기업 성장 한계의 근본적인 문제로 '시장 규모'를 지적했다. 큐노바는 양자컴퓨터를 구동해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인 양자알고리즘을 개발한다.
이 대표는 "국내 기술창업 지원 체계는 잘 마련됐다"며 "중소벤처기업부 지원 사업 등을 고려하면 오히려 미국 실리콘밸리보다도 딥테크 창업에 좋은 생태계가 구축돼 있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시장의 규모다. 같은 수준의 기술이 있어도 훗날 규모에서 밀린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여러 번 반복되면서 투자사들도 국내 상장된 벤처 기업 성장에 한계가 있다고 보고 일종의 '투자 상한선'을 둔다는 설명이다.
특히 양자과학기술 창업은 내수 시장만으로는 사실상 성장이 불가능한 분야로 평가된다. 전세계 양자컴퓨터 기업이 나스닥처럼 '큰 물'을 찾는 이유다. 이 대표는 "현재 국내 세무 구조가 해외 상장에 장벽으로 작용한다"며 벤처기업이 해외 시장에 자리잡고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창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타이밍'을 꼽았다. 그는 1997년 처음 미국에서 양자컴퓨터와 첫번째 양자알고리즘으로 불리는 '쇼어 알고리즘'을 접했다. 고전컴퓨터에서는 기하급수적으로 많은 계산이 필요한 소인수분해를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 대표는 당시 양자알고리즘을 구현할 하드웨어가 받쳐주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기대감만 있고 실질적인 투자는 없었다는 분석이다.
그는 통신과 네트워크 분야 연구를 하면서 한편으로는 양자컴퓨터 기술 발전을 지켜보고 시장 이해도를 키웠다.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양자컴퓨터 분야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 대표는 "대략 2017년부터 양자컴퓨터 사업에 뛰어든 빅테크 기업들이 로드맵을 발표하기 시작했다"며 특히 가장 선두였던 미국 IBM의 성과가 로드맵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창업에 대한 확신을 가졌다는 설명이다.
그는 "양자컴퓨터의 유용성이 증명되고 상품화될 수 있는 시기를 2025~2027년으로 봤다"며 "이를 기준으로 역산해 제품 개발 사이클을 약 2번 정도 돌릴 수 있는 2021년 창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약 30년에 걸친 치밀한 준비인 셈이다.
큐노바를 비롯한 전세계 양자알고리즘 기업들은 현재 양자화학 분야에 집중하고 있다. 어떤 입자의 에너지 준위를 정확히 계산하고 나아가 화학 반응의 결과나 반응 생성물까지 예측하는 것이 핵심이다. 화학 반응 예측의 정확도를 높이면 반응 최적화부터 신소재·신약 개발 등 다방면으로 응용될 수 있다.
이 대표는 "양자화학은 양자컴퓨터의 본질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분야"라며 "문제 정의가 상대적으로 단순하고 이후 계산만 복잡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존 슈퍼컴퓨터와 경쟁해 우수한 성능을 보여줄 수 있는지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큐노바는 현재 IBM,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 등과 협력해 양자알고리즘을 양자화학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있다. 이 대표는 "현존 최고 성능의 슈퍼컴퓨터보다 8~9배 정도 빠르게 화학 계산을 수행하는 알고리즘을 제시하는 수준에 도달했다"며 "곧 논문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대표는 현재 양자컴퓨터의 기술성숙도가 인공지능(AI)으로 치면 2012년 AI의 근간이 되는 기술인 '딥 뉴럴 네트워크' 등장과 AI의 폭발적 성장의 트리거가 된 2022년 대형 언어모델(LLM) '챗GPT'의 출시 사이에 있다고 봤다. 그는 "지금 시점에서 어떻게 투자하느냐에 따라 양자컴퓨터 분야의 승패가 갈릴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이 대표와의 일문일답.
Q. 창업 당시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에 주목한 이유는.
"기술 격차와 범용성 때문이다. 하드웨어 경쟁에 뛰어들기엔 이미 기존 기업, 연구 그룹과의 격차가 있었다. 또 미래에 어떤 물리적 큐비트(양자컴퓨터의 정보처리 단위) 구현 방식이 상용화에서 우위를 가져갈지 아직 아무도 확답할 수 없다. 양자알고리즘은 큐비트 종류와 관계없이 공통적으로 활용되기 때문에 채택했다."
Q. 국내 양자컴퓨터 연구·산업이 하드웨어에 치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금 사람들이 양자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잘 못보는 이유는 아직 양자컴퓨터 자체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정부도 양자컴퓨터에 대해 이해하는 단계다. 정부 투자에 비판의 목소리도 많지만 목표 달성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정부 투자를 통해서 인재, 기업 등 생태계가 생기는 것이 중요하다.
국내에서는 양자 소프트웨어 투자가 양자 하드웨어 투자의 10분의 1수준이다. 현재 컴퓨팅 시장을 살펴봤을 때 결국 양자컴퓨터도 컴퓨터이기 때문에 소프트웨어 비중이 절반 이상까지 차지할 것으로 예측한다.
양자 하드웨어는 격차를 따라잡기가 어렵다. 상대적으로 양자 소프트웨어는 장벽이 낮기 때문에 한국이 빨리 따라잡고 시장에서 선도 지위를 확보할 수 있다. 전략적이고 현실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Q. 양자컴퓨터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변곡점'을 예상한다면.
"불과 2~3년 전만 해도 사람들이 양자컴퓨터의 실체가 뭔지 잘 몰랐다. 쓸만한 양자컴퓨터가 시장에 등장하려면 10년 넘게 남았다는 예측도 나왔다. 지금은 내년, 내후년 이야기가 나온다. 실체가 보이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시장을 형성하기 위한 예산도 확보되고 있다. 양자컴퓨터 산업 규모가 올해 1.4조원, 내년이 2.8조원으로 예상된다. 일반적인 첨단 기술산업 시작 규모와 비교해 적절하다. 내후년부터 5~10조원 정도로 확대되고 2029년으로 예상되는 변곡점 이후 가속될 것으로 생각한다."
[대전= 이병구 기자 2bottle9@donga.com]
Copyright © 동아사이언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