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술] 찬바람 부는 계절, 사케 한 잔의 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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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센스] 찬바람이 매서워지는 계절, 따뜻한 안주와 함께 은은한 향의 사케 한 잔이 생각난다. 최근 한국에서도 사케 문화가 확산되고 있지만, 정작 어떤 사케를 선택해야 할지 망설이는 이들이 많다.

쥬욘다이(十四代), 아라마사(新政), 지콘(而今) 같은 '환상의 사케'는 일본 현지에서도 구하기 어렵고, 국내에서는 리셀가로 몇 배씩 비싸게 거래된다.
쥬욘다이의 경우 정가 보다 몇 배 비싼 가격으로 온라인에서 4만 4000엔에 팔릴 정도다. 이런 초프리미엄 사케를 쫓다 보면 지갑만 얇아질 수 있다. 이번 달에는 가성비와 접근성을 모두 갖춘 사케들을 소개한다.
사케, 전 세계가 주목하는 유일한 성장 주류
사케에 대한 관심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전 세계 주류 시장이 재편되고 있다. 한때 프리미엄 주류 양대 산맥이었던 와인과 위스키의 수출액이 정체 혹은 감소세를 보이는 가운데, 사케만이 유일하게 가파른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일본 재무성에 따르면 2023년 사케 수출액은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으며, 이는 10년 전 대비 3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국내 사케 수입액은 매년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2020년 이후 급격히 늘어난 사케바와 이자카야가 이를 방증한다. MZ세대를 중심으로 '소주 대신 사케'를 선택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사케는 더 이상 마니아만의 술이 아닌 대중적인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추성훈, '사케 전도사'에서 양조자까지
이런 사케의 대중화에는 연예인들의 영향도 한몫했다. 특히 이종격투기 선수 출신 방송인 추성훈은 방송에서 사케에 대한 애정을 숨김없이 드러내며 '사케 전도사'로 불린다. 2025년 5월 방송된 JTBC '냉장고를 부탁해'(냉부해)에서 추성훈은 요리 시식 중 갑자기 자신의 냉장고로 향해 "내 냉장고니까"라며 사케 한 병을 꺼냈다. 스튜디오 장식용 소품 술잔을 자연스럽게 가져와 물처럼 사케를 쏟아부어 마시는 모습에 출연진들은 환호했다.

추성훈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025년 7월 직접 프리미엄 사케 브랜드 '아키(AKI)'를 출시한 것이다. 단순한 유명인 콜라보가 아닌, 일본 이와테현의 300년 전통 양조장을 수차례 방문하며 블렌딩 방향부터 숙성 시기, 병입까지 모든 과정에 직접 관여했다. 정미율 40%의 '준마이 다이긴조'로 제작된 아키 사케는 쌀의 60%를 깎아내고 핵심부만 사용해 깔끔한 맛을 낸다고 한다.
"주변에서 '사케는 너무 독하고 알코올 냄새가 강하다'는 의견이 많아, 처음 마시는 사람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도록 부드럽고 향긋하게 만드는 데 집중했다"는 추성훈의 말처럼, 아키는 매운탕, 삼겹살 같은 기름진 한식은 물론 회 같은 섬세한 요리와도 잘 어울린다고 알려졌다. 추성훈의 자연스러운 사케 사랑은 '사케는 특별한 날 마시는 술'이라는 인식을 깨고, 일상에서 편하게 즐기는 술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줬다.
추성훈만이 아니다. 배우 강하늘 역시 tvN '인생술집'에서 온나나카세(女泣かせ) 준마이 다이긴조를 직접 들고 나와 "집에 모아 놓을 정도로 좋아하는 사케"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편하게 말해서 이리온나 사케"라고 소개하며, '여인을 울린다'는 이름에 대해 "너무 맛있어서 남자가 술만 마시게 되고, 서운한 여인이 눈물을 흘린다는 뜻"이라고 유래를 설명했다. 온나나카세가 화제에 올랐지만, 사케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가격 대비 아쉽다는 평도 있다.
사케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 알아야 할 기본 용어
그렇다면 이제 본격적으로 사케를 고를 때 알아둬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나마(生)와 히이레(火入れ)의 차이다. 나마는 열처리하지 않은 생사케로 신선하고 탄산감이 살아있지만 냉장 보관이 필수다. 히이레는 저온 살균 처리해 맛이 안정적이고 보관이 용이하다. 같은 브랜드라도 나마와 히이레는 맛이 확연히 다르다.

쌀을 얼마나 깎았는지를 나타내는 정미율도 알아두면 좋다. 쌀을 깎아서 60% 이하 쌀을 남기면 긴죠(吟醸)로, 50% 이하 남기면 다이긴죠(大吟醸), 분류된다. 다이긴죠는 쌀을 많이 깎아 향이 화려하고 섬세한 편이다. 다만 다이긴죠가 반드시 더 맛이 좋다고 할수는 없다. 준마이(純米)는 쌀, 쌀누룩, 물만으로 빚은 순수 사케다.
교과서 같은 완성도, 하쿠라쿠세이 준마이 긴죠
이제 기본 용어를 알았으니, 실제로 구입할 수 있는 사케들을 살펴보자. 가격대는 합리적이면서도 실력은 검증된 사케들이다. 먼저 유튜브 채널 '소믈리에 케이지' 채널에서 추천된 사케로 미야기현을 대표하는 하쿠라쿠세이(伯楽星) 준마이 긴죠가 있다.
이 사케는 일본 사케 소믈리에들이 '교과서'라고 극찬하는 사케다. 1760엔이라는 합리적인 가격에 깔끔하고 우아한 향, 부드러운 단맛, 깨끗한 여운을 모두 갖추고 있다. '궁극의 식중주'를 표방하며, 생선회, 조개찜, 샤브샤브 같은 담백한 요리와 함께하면 음식의 맛을 한층 끌어올린다.
매니아들의 숨은 보석, 나베시마
사가현 후쿠치요 주조의 나베시마(鍋島)는 국내 사케 매니아들 사이에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명주'로 통한다. 쥬욘다이나 아라마사만큼 프리미엄이 붙지 않으면서도 섬세함과 깊이를 자랑한다. 멜론과 청사과 같은 과일향이 풍부하며, 특히 나마 라인은 탄산감이 살아있어 청량하다.

가장 가성비가 뛰어난 '나베시마 퍼플라인(Purple Line)'은 일본에서 약 3000엔 정도, 국내 직구 기준 6만 원 정도다. 섬세한 꽃향기와 신선한 과일향, 부드러운 단맛이 조화롭게 펼쳐진다. 흰살 사시미, 도다리, 광어 같은 담백한 생선회와 궁합이 좋다.
대중화되었지만 여전히 탁월한, 닷사이
닷사이(獺祭)는 한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사케 브랜드가 되면서 '이제는 좀 식상하지 않나...'라는 반응도 나온다. 하지만 유명하다고 해서 실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야마구치현 아사히 주조의 닷사이는 극한의 정미율을 추구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닷사이 뒤에 붙는 숫자는 쌀을 깎고 남은 비율을 의미한다. 닷사이 23은 쌀을 23%만 남을 때까지 깎아낸다는 뜻으로, 77%를 버리고 핵심만 사용하는 극한의 정미율을 자랑한다. 닷사이 45(정미율 45%)는 가격 대비 퀄리티가 뛰어나다.
닷사이를 구입할 때는 일본 공항 면세점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저렴하다. 국내보다 30~40% 저렴하게 살 수 있고 신선도도 보장된다. 닷사이는 양조장에서도 냉장 보관이 필수라고 강조한다.
가격대의 현실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닷사이를 포함한 고가 사케를 구매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백화점이나 면세점에서 선물용 사케를 고를 때 많은 이들이 720ml 기준 5000엔에서 비싸게는 1만 엔 이상 제품을 선택한다. 문제는 이 가격대가 사케 시장에서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는 점이다.
일본 사케 시장은 전반적으로 품질이 상향 평준화되어 있다. 3000엔대만 되어도 만족스러운 사케가 상당히 많고, 5000엔대면 웬만한 명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수준이다. 실제로 일반인들이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5000엔대 사케가 수만 엔짜리 아라마사를 이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가격이 곧 맛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평소 훌륭한 사케를 빚어 좋은 평가를 받는 양조장들조차 1만 엔 이상 가격대에서는 기대만큼의 만족도를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닷사이 23도 '가진 맛에 비해 가격이 아쉽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렇다면 전문성 없는 판매자가 권하는 낯선 브랜드의 고가 사케는 어떨까? 만족스러운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선물용으로 일정 수준 이상의 가격이 필요하다면, 닷사이처럼 검증된 브랜드의 고가 모델을 선택하는 편이 현명하다. 인지도 있는 브랜드는 신뢰를 담보할 뿐 아니라, 선물 받는 사람도 그 가치를 알아볼 수 있다.
일본 여행 시 지샤케를 경험하라
일본 여행 기회가 있다면 지샤케(地酒), 즉 지역 사케를 경험하는 것을 추천한다. 닷사이는 면세점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지만, 일본은 각 지역마다 고유한 사케 문화가 살아있다. 니가타는 깔끔하고 드라이한 사케로 유명하고, 야마가타는 쥬욘다이를 비롯한 달콤한 사케들이, 교토는 전통적이고 우아한 사케들이 강세다. 지역 사케들은 해당 지역에서만 마실 수 있는 경우가 많고, 그 양조장 근처 이자카야에서만 맛볼 수 있는 한정 제품도 있다.
샴페인 대신 스파클링 사케는 어떨까
최근 일본에서는 스파클링 사케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야마나시현 시치켄(七賢)의 '모리노 카나데(杜の奏)'가 대표적이다. 섬세한 기포와 은은한 단맛, 깔끔한 여운이 샴페인 못지않지만 가격대가 1만 엔이 넘긴 하다. 스파클링 사케는 알코올 도수가 10~12%로 일반 사케(15~16%)보다 낮아 술에 약한 사람도 편하게 마실 수 있다.
이자카야 수준을 한눈에 파악하는 법
이자카야나 사케바에 들어갔을 때 그 집의 수준을 가늠하는 방법이 있다. 냉장고나 진열대의 사케 라벨을 살피는 것이다. 쥬욘다이가 있다면 더 이상의 검증이 필요 없다. 나베시마 나마, 하나아비, 지콘 같은 구하기 어려운 사케가 있다면 주인장이 사케에 대한 안목과 열정을 갖춘 곳이다.

하쿠라쿠세이, 쿠보타, 핫카이산 같은 정통 명주들이 냉장 보관되어 있다면 기본기는 갖춘 집이다. 반대로 유명 브랜드를 상온에 디스플레이해놓거나 병에 먼지가 쌓여 있다면 피하는 것이 좋다.
찬바람 부는 저녁, 사케 한 잔의 여유
사케는 일본 술이지만, 이제는 한국 식문화에도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다. 쥬욘다이나 아라마사 같은 환상의 사케를 쫓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사케 시장은 워낙 상향평준화되어 있어 합리적인 가격대에서도 훌륭한 맛을 경험할 수 있다.
실제로 쥬욘다이, 아라마사, 지콘을 모두 마셔본 애호가들조차 "가격이 10배 이상 차이 나는데, 맛도 10배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물론 이들 사케가 뛰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하쿠라 쿠세이의 균형 잡힌 맛, 나베시마의 프루티한 향, 닷사이의 부드러움을 차근차근 경험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여정이 될 수 있다.
찬바람이 부는 이 계절, 따뜻한 안주 하나와 차갑게 냉장된 사케 한 잔. 그것만으로도 하루의 피로가 녹아내리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굳이 수십만 원짜리 환상의 사케를 쫓지 않아도, 당신 앞의 사케 한 잔이 충분히 특별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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