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동의 강간죄’가 ‘남성 차별 인식’ 조장?···“‘감정’ 때문에 현실 젠더폭력 방치하나”
KDI 교수 “극단적 페미니스트 정책 안 돼”
스페인 사례 왜곡해 ‘남성 차별 조장’ 주장
성폭력상담소 “극우 정당화 논리 받아쓰기”

국민통합위원회가 기획한 행사에서 ‘비동의 강간죄’ 등 성평등 정책이 극단적 젠더갈등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국민통합위원회가 구조적 여성폭력은 방치한 채 ‘남성 역차별’ 담론에 힘을 싣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조은 KDI(한국개발연구원) 스쿨 교수는 지난 17일 열린 ‘2025 세대·젠더 국민통합 컨퍼런스’에서 해외 청년세대의 젠더갈등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스페인이 한국보다 남성 역차별을 주장하는 이들과 그 반대편에 있는 페미니스트 비율이 한국보다 높아 훨씬 극단화되어 있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스페인에 적대적 남성주의자나 반여성 폭력주의자가 급부상한 배경으로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의 젠더 정책”을 지목했다. 구체적인 예시로는 스페인이 2022년 도입한 비동의 강간죄를 들었다.
김 교수는 “(스페인에서) 2022년 동의만을 기준으로 ‘성폭력이다, 아니다’를 결정하게 됐다”며 “페미니스트들이 이상하게 정책을 시작해서 사회적 부작용을 낳는다는 얘기들이 나오기 시작했다”고 했다. 스페인이 가정폭력 신고 시 피·가해자 즉시분리 조치를 시행하는 것을 두고서도 “남성의 무고죄 공포가 확산됐다”고 말했다. “여성이 이걸 무기화해서 폭력이 없었는데도 경찰에 신고만 하면 굉장히 불공정한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는 공포가 확산됐다”고 했다.
그러나 스페인의 비동의 강간죄는 성관계시 ‘동의’의 정의를 구체화한 것이다. 법안 통과 이전에도 형법상 동의 없는 성관계는 금지됐다. 그러나 재판 과정에서 판사마다 동의 기준을 판단하는 정도가 달라 논란이 일자 법안 제정 필요성이 커졌다. 2016년 18세 여성이 남성 5명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한 사건에서 법원은 피해 여성이 명백히 반대 의사를 표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성폭행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국민적 분노가 일어나며 명확한 동의만이 성관계에 동의한 것이라는 법이 통과됐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국민통합위원회 컨퍼런스 내용에 대해 “성평등 정책이 남성 차별 인식을 조장하고, 그 결과 청년 남성이 보수·극우화될 수 있다는 잘못된 인과관계를 국민통합위원회는 아무런 비판 없이 제시했다”며 “성평등 정책이 극우의 결집을 불러왔다는 주장은 극우 세력의 자기 정당화 논리를 그대로 받아쓰는 일이며, 정책 실패의 책임을 외부로 전가하는 책임 회피에 불과하다”고 했다.

피해자가 ‘적극적 저항’ 등 피해자다움을 여전히 요구받는 상황에서 성평등 정책을 극우화의 배경으로 지적하는 것은 젠더폭력을 방치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전세계적 추세와도 역행하는 시각이다.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강간죄 구성 요건을 동의 여부로 개정하라고 권고했다. 프랑스와 일본도 비동의강간죄를 도입했다. 한국은 2023년 여성가족부가 비동의강간죄 도입 방침을 밝혔다가 9시간 만에 입장을 철회했고 이후 국회의 입법 논의도 미진한 상태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남성이 일정 부분에서 차별받고 있다고 느낀다는 컨퍼런스의 발제를 두고 ‘차별받는다’는 감정의 문제에 집중하느라 현실의 젠더폭력 등 구조적 문제는 지워진다고 비판했다. 당시 국민통합위원회는 컨퍼런스를 앞두고 ‘남성차별 인식, 40대 이상까지 확산’이란 제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상담소는 “(국민통합위원회가) 여성에 대한 구조적 성차별과 ‘남성 차별’이라는 감정을 마치 대등한 충돌인 것처럼 설정하며 이를 ‘젠더 갈등’으로 호명했다”며 “‘지역균형발전 정책을 강화했더니 수도권 주민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부의 재분배 정책을 시행했더니 상류층이 역차별을 느낀다’는 주장은 타당한가”라고 했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502190600035
https://www.khan.co.kr/article/202502120600091
https://www.khan.co.kr/article/202510301242001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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