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 100%·빅맥 50% 껑충… 천하의 트럼프도 인플레는 괴롭다

21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의 대형 소매업체 타겟(Target)에서 두 자녀와 크리스마스 선물을 고르던 미누엘라 키차드씨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초등학교 1학년인 그의 딸은 디즈니 공주 캐릭터가 들어 있는 장난감 성을 사고 싶었지만 한 세트에 199.99달러(약 30만원)였다. 그는 “몇 년 전만 해도 100달러면 아이들이 원하는 장난감을 사줄 수 있었는데 요즘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했다. 최근 스레드업(ThredUp) 등 중고품 거래 업체들은 크리스마스 특수를 누리고 있다. 새 상품 가격보다 월등히 저렴한 중고 물품에 소비자들이 눈길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전미소매연맹(NRF)이 최근 미국 소비자 8200명을 상대로 벌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절반이 이번 크리스마스 연휴를 앞두고 중고품을 구매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고물가 문제가 미국 사회에서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특히 크리스마스 연휴 기간 온 가족이 모여 선물을 주고받고, 함께 음식을 나눠 먹는 전통을 가진 미국 소비자들은 “식료품에서 공산품까지 어느 것 하나 가격이 오르지 않은 것이 없다”며 지갑을 닫고 있다. 먹고사는 문제가 어려워지고, 민심이 악화하자 내년 11월 중간 선거를 앞두고 있는 집권 공화당 발등에도 불이 떨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중간 평가를 담고 있는 이번 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의회 다수석을 넘겨줄 수 있을 뿐 아니라, 2028년 대선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는 위기감이 작동하고 있다.

◇휘청대는 식탁 물가
미 노동부가 가장 최근에 발표한 물가 지표인 11월 근원 소비자물가지수(변동성이 큰 에너지·식품을 제외한 수치)는 전년 동월 대비 2.6%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미 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 정지) 여파로 데이터 수집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 상승률은 더 클 것이라고 보고 있다. 미 의회 합동경제위원회(JEC)는 트럼프의 관세정책으로 올해 2월부터 11월까지 가구당 평균 1200달러(약 180만원)의 추가비용이 발생했다고 추산했다. 미국 가계가 1년 전과 같은 물건과 서비스를 사려면 매달 평균 208달러를 더 지출해야 한다는 통계도 있다.
높아진 물가를 체감할 수 있는 곳은 매일 가족들이 마주 앉는 식탁이다. 이날 뉴욕의 대형 소매업체 육류 코너에서 확인한 ‘간 소고기(ground beef)’ 가격은 파운드당 8.49달러(약 1만2000원)로, 2020년(약 5달러)보다 70%가량 뛰었다. 스테이크용으로 쓰이는 ‘뉴욕 스트립’은 파운드당 18.49달러로, 2020년(약 12달러)에 비해 약 50% 상승했다. 미국 가정에서 즐겨 먹는 소고기 가격이 비싸지면서 ‘소고기’와 ‘물가 상승’이라는 단어를 결합한 ‘비프플레이션(Beef-flation)’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미 소비자들이 자주 찾는 분쇄 원두 커피 평균가는 몇 년 사이 파운드당 7달러에서 8~9달러대로 약 20% 뛰었고, 달걀은 12개들이 한 판이 2달러대였지만 지금은 높게는 4~5달러대까지 상승했다. 바나나나 우유, 치즈, 버터 등 유제품도 전부 올랐다. 로이터는 “소비자들은 일주일에 여러 번 식료품점을 방문해 가격을 확인하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에 빠르게 반응한다”고 했다.
◇부담 되는 팁플레이션
식료품 가격뿐 아니라 외식 물가도 가계에 부담을 준다. 미국인의 소울 푸드 격인 맥도널드 빅맥 세트는 11.86달러(미디엄 사이즈 감자튀김과 콜라 기준)로 2020년(약 8달러)보다 50% 가까이 뛰었다. 식당에서 먹을 경우 음식값과 별도로 내야 하는 팁 수준이 높아진 것도 외식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이른바 ‘팁플레이션(과도하게 높아진 팁 수준)’이 몰아닥치며 이제 웬만한 식당에서는 팁을 20% 내도록 권장한다.

외식 물가는 식품 산업 트렌드까지 바꾸고 있다. 신선한 채소와 토핑을 골라 일회용 그릇에 담아 먹는 ‘샐러드 보울(salad bowl)’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유행했지만, 10달러 안팎에서 14~20달러로 가격이 치솟으며 발길이 끊기고 있다. 샐러드 보울 인기를 주도한 기업 주가는 곤두박질했다. 미국 상장 외식 기업 중 맥도널드와 스타벅스에 이어 시가총액 3위인 치폴레 주가는 올해 40% 이상 하락했고, 카바와 스위트 그린도 각각 56%, 80% 가까이 떨어졌다.
◇미국판 다이소는 인기
고물가는 미국인들 소비 패턴도 바꾸고 있다. 특히 1달러(약 1457원) 안팎의 저가 상품을 집중적으로 판매해 ‘미국판 다이소’로 불려온 ‘달러 스토어’들이 호황을 맞고 있다. 달러 스토어에서 팔리는 제품군은 주로 생활용품이다. 5온스짜리 콜게이트 치약은 1.25달러(약 1850원), 4롤이 들어가 있는 화장지는 1.5달러(약 2200원) 수준이다.
미국 최대 달러 스토어 ‘달러 제네럴’은 이달 초 발표한 3분기 실적 발표에서 매출이 같은 기간보다 4.6% 증가한 106억5000만달러(약 15조5256억원)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또 다른 달러 스토어 ‘달러 트리’도 같은 기간 매출이 전년 동기보다 9.4% 오른 47억달러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마이크 크리든 달러 트리 최고경영자는 “올해 유입된 신규 고객 300만 가구를 분석해보니 60%는 연소득 10만달러 이상, 30%는 6만~10만달러를 버는 중산층”이라고 했다. 저소득층만 찾는다는 인식이 컸던 이곳에 고소득자와 중산층까지 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대형 마트에서도 코스트코·트레이더조·홀푸드 등 기존 마트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 경쟁력을 장점으로 내세우는 독일계 할인 체인 알디(ALDI)에 손님이 몰리고 있다. 알디의 확장세는 두드러져 올해 문을 열었거나 열 예정인 점포만 200곳에 달한다.
◇발등에 불 떨어진 美 정부
당장 소비 여력이 줄어든 소비자들은 트럼프 정부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트럼프는 강력한 국경 봉쇄 정책, 관용 없는 법 집행 분야 등에서 비교적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지만, 경제 정책은 사실상 낙제점을 받으면서 지지율이 30%대에 머무르고 있다. 보수 성향 폭스뉴스가 17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현재 경제 상황을 “나쁘다”고 대답한 응답자는 72%로, 5개월 전보다 5%포인트 상승했다. 같은 조사에서 인플레이션을 “심히 우려한다”고 답한 사람은 61%로, 지난 6월(48%)보다 13%포인트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미 CBS가 21일 공개한 여론조사에서 ‘현재 미국 경제에 어떤 점수(A, B, C, D, F)를 주겠느냐’는 질문에 응답자 75%가 C등급 이하를 지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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