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학개미 22% 양도세 없애주겠다”… 채찍 안 먹히니 당근 제시

달러 한 푼이 아쉬운 정부가 서학개미(해외에 투자하는 국내 개인 투자자)들이 쥐고 있는 달러를 국내로 들여오기 위한 ‘당근’을 들고 나왔다. 개인 투자자가 이달 23일까지 보유하고 있던 해외 주식을 팔아 원화로 환전해 국내 주식에 1년간 장기 투자하는 경우, 해외 주식 양도소득세를 한시적으로 면제해주겠다는 것이다. 해외 주식 매매로 번 돈이 250만원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초과액의 22%를 양도소득세(지방소득세 2% 포함)로 내야 한다. 정부는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환율 방어를 위해 서학개미에 대한 추가 과세 가능성을 내비쳤는데, ‘채찍’으로는 고수익을 찾아 물 건너간 투자자들을 돌아오게 만들 수 없다고 판단하고 ‘당근’을 제시했다.
◇”세금 깎아줄게, 달러 다오”
24일 기획재정부는 1인당 해외 주식 매도액 5000만원을 한도로 양도소득세를 비과세하되, 복귀 시기에 따라 세액 감면 혜택을 차등 부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내년 1분기(1~3월) 중 국내로 복귀하는 투자자는 세금의 100%를, 2분기(4~6월)와 하반기(7~12월) 복귀자는 각각 80%와 50%를 감면하는 방안이다. 최지영 기재부 국제경제관리관은 “개인 해외 투자자의 국내 복귀를 지원해 외환시장 안정화와 자본시장 활성화를 동시에 도모하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세제 혜택은 신설되는 ‘국내 시장 복귀 계좌(RIA·Reshoring Investment Account)’를 통한 매매 거래에만 제공된다. 각 증권사에서 RIA를 개설한 서학개미들은 해외 주식 계좌에 있던 해외 주식을 이 계좌로 이체한 뒤, 여기서 해외 주식 매도와 환전, 국내 주식 매수를 해야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만약 매도액 5000만원에 대해 총 1000만원의 투자 수익이 났다고 가정할 때, 지금은 세금(165만원)을 감안하면 총 투자 수익률이 20.9%이지만 세금을 감면받으면 수익률은 25%로 올라간다. 증권사들은 이르면 내년 1월 말 RIA 상품을 출시할 것으로 보인다.
◇서학개미 정밀 타격에...“효과 보나”
정부가 전에 없던 서학개미 맞춤형 세제 혜택을 내놓은 것은, 개인들의 전례 없는 해외 주식 투자 움직임으로 국내에서 달러 수요가 크게 늘자 환율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올 들어 11월 말까지 내국인은 국내 주식을 11조6000억원 순매도(매수보다 매도가 많은 것)한 반면, 해외 주식은 309억달러(약 45조원)어치 순매수했다.
국내로 돌아오는 해외 주식에 대한 양도세 비과세 대책 등이 발표된 2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3년 1개월 만에 최대 폭(33.8원) 하락했다. 그간 대통령실이 주요 수출 기업들을 불러 달러를 가급적 빨리 팔아 달라고 ‘협조’를 구하고, 금융감독원이 증권사들의 해외 주식 마케팅을 자제하도록 지도에 나서는 등 환율 잡기에 안간힘을 써도 먹히지 않던 약발이 이날은 작동했다는 말이 나왔다.
◇서학 개미들 “땡큐”, 동학 개미들 “불공평”
최근 환율 상승의 주범으로 지목돼 질타를 받아온 서학 개미들은 대체로 ‘환영’ 입장이지만, 실효성에 대해선 의견이 갈렸다.
테슬라 등 미국 테크주에 노후 자금을 5억원 넘게 투자하고 있는 회사원 한모(53)씨는 “딱 5000만원 세제 혜택 한도만큼만 팔고 국내 주식에 투자할 생각”이라며 “세제 혜택이 달콤하긴 하지만, 장기 수익을 생각한다면 큰 인센티브도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세제 혜택만 보고 다시 해외로 나갈 ‘구멍’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금융사에 다니는 이모(38)씨는 “RIA 계좌에서 해외 주식 팔아 국내 주식 5000만원을 사면 일단 양도세 감면 혜택을 챙기고, 기존 주식 계좌에서 국내 주식 5000만원어치를 팔고 해외 주식을 그대로 사면 달러는 다시 빠져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환율 방어를 이유로 ‘전향 개미’, ‘귀순 개미’에게만 혜택을 준다며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이도 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 주식에서 확실한 수익을 본 개인 투자자들이 불확실성 큰 국내 주식으로 뛰어들지 의구심이 있다”며 “환율 문제가 이번 정부에서 얼마나 절실한지를 보여줬지만, 코스피 5000 달성 등 국내 증시 부양이라는 목적을 같이 넣다 보니 그 메시지가 흐릿해졌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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