켑카, 2100억원 챙기고 떠났다… 흔들리는 LIV 골프

이태동 기자 2025. 12. 25.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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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선수 이탈에 위기감 커져
지난해 2월 멕시코 플라야 델 카르멘 엘 카마레온 마야코바 골프 코스의 최종 라운드에서 생각에 잠긴 브룩스 켑카/로이터 연합뉴스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가 주도하는 LIV 골프의 간판 스타 브룩스 켑카(35·미국)가 24일(한국 시각) LIV 골프를 떠난다고 공식 발표했다.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했지만, 골프계에서는 PGA(미 프로골프) 투어로 복귀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쏠린다. LIV 측도 “켑카와 결별을 상호 합의했다”고 밝혔다. 메이저 대회에서 유독 강한 켑카를 영입하기 위해 LIV는 2022년 계약금으로만 1억달러(약 1450억원)를 안겼다. 켑카는 2023년 PGA챔피언십에서 LIV 소속 선수로는 처음으로 메이저 챔피언이 됐다. LIV 골프에선 다섯 차례 우승하며 상금 4641만6000달러(약 673억원)를 벌었다. 계약금과 상금으로만 약 2123억원을 챙긴 것이다.

켑카의 이탈로 LIV 골프 위기설이 확산하고 있다. 23일엔 LIV 유망주 미토 페레이라(칠레·30)가 골프계 은퇴를 선언했다. 2023년부터 LIV에서 뛴 페레이라는 우승 한 번 없이 상금 1737만3000달러(약 252억원)를 벌었다. 2022년 라이더컵 유럽 단장직 박탈을 감수하면서까지 LIV로 이적한 헨리크 스텐손(49·스웨덴), 지난해 PGA 투어 Q스쿨 도전을 포기한 장유빈(23)도 올 시즌 부진한 성적으로 강등되자 LIV를 떠났다. 스텐손은 DP월드 투어, 장유빈은 KPGA(한국프로골프) 투어 복귀를 선언했다.

그래픽=김현국

LIV 골프의 더 큰 고민은 투어를 대표할 신진 스타 영입에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최근 김시우(30)가 LIV로부터 이적 제안을 받았지만 PGA 투어 잔류를 선언했다. 골프다이제스트는 “LIV는 최근 네 번의 비시즌 기간 중 세 번이나 스타급 선수를 영입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선수 풀은 점점 빈약해지는데 PGA 투어와의 통합 논의는 사실상 중단된 것도 LIV 흥행에 악재가 되고 있다.

이처럼 주요 선수들이 이탈하고, 정상급 선수 영입에 애를 먹는 가장 큰 이유는 LIV 골프 소속으로는 마스터스 등 4대 메이저 대회에 출전하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메이저 대회 주최 측은 보통 세계 랭킹 50위 내 선수들에게 출전권을 주는데, 랭킹 포인트가 주어지지 않는 54홀짜리 LIV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은 대다수가 세계 랭킹이 100위권 밖이다. 이런 문제점을 해소하려 LIV가 2026 시즌부터 72홀 4라운드로 대회를 치르기로 했지만, 적은 출전 선수와 컷 탈락 없는 운영 방식 때문에 랭킹 포인트를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일각에서는 “오일 머니로 상징되는 ‘물질 공세’ 덕분에 LIV 골프가 출범했지만, 단기간에 PGA 투어에 맞먹는 위상을 갖추기엔 역부족이었던 것”이라고 분석한다. 자본의 힘으로 리그를 구성하긴 했지만, 구성원에게 제대로 된 ‘경쟁의 장’을 마련해주지 못하면 지속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스포츠 정신건강의학 전문가인 조은정 인하대 교수는 “엘리트 선수들에게 본질적으로 중요한 건 자신의 실력에 대한 객관적 평가”라며 “특히 경제적으로 독립한 선수라면 명예욕이나 가족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서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찬승 박사도 “처음엔 돈을 보고 LIV에 합류한 선수들이 어느 순간 LIV에서의 보상이 더는 달콤하게 느껴지지 않는 순간이 온다”며 “이럴 때 선수들은 이적이나 은퇴 등 자신이 처한 환경을 과감하게 바꾸고 싶은 욕구에 휩싸인다”고 설명했다.

LIV 골프의 위기는 PGA 투어엔 호재다. PGA 투어는 켑카가 LIV를 떠났다는 소식에 즉각 “우리는 최고의 골프 선수들이 위대해질 수 있는 경쟁적이고 도전적이며 수익성 높은 환경을 계속해서 제공하고 있다”는 성명을 냈다. 이어 켑카를 “대단한 업적을 세운 선수”라고 칭찬했다.

켑카가 PGA 투어에 복귀하기 위해선 내년 8월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전망이 나온다. PGA 투어는 LIV 출전 선수에게 1년 징계를 내리는데, 켑카가 출전한 마지막 LIV 대회가 지난 8월 열렸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우선 DP월드 투어에 출전해 경기 감각을 유지할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2023년 PGA챔피언십 우승 덕에 내년 4개 메이저 대회엔 모두 출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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