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임수]툭하면 국민연금을 ‘쌈짓돈’으로 여기나

이사장 “청년 공공주택 투자하겠다”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출신인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은 지난주 취임 일성으로 연금 자산을 청년 공공주택에 투자하겠다고 했다. “공공주택에 투자해 결혼과 출산을 촉진하고 인구 절벽을 극복하겠다”는 것이다. 청년 주택 공급이 시급하지만 정부가 국가 재정으로 해결할 문제이지 투자 수익을 추구하는 국민연금이 나설 일이 아니다. 게다가 연금의 투자 결정권은 정부 부처와 각계 대표로 구성된 기금운용위원회에 있다. 이미 문재인 정부에서 공단 이사장을 지냈던 그가 이를 모를 리 없는데도, 기금 운용의 독립성과 수익성을 해치는 위험한 발상을 꺼낸 것이다.
김 이사장은 2016년 총선에서 떨어진 뒤 공단 이사장에 임명됐지만 임기를 10개월 남기고 다시 총선에 출마하겠다며 중도 사퇴했다. 지난해 총선 도전에 실패하자 이사장으로 돌아왔다. 그의 지역구가 공단 본부가 있는 전북 전주병인데, 벌써 다음 총선을 앞두고 사퇴할 것이라는 전망이 파다하다. 정부가 1361조 원을 굴리는 세계 3위 연기금의 수장 자리를 선거 떨어지면 한 철 머물다 가는 곳으로 만든 셈이다. 이러니 이사장이 “오래된 꿈” 운운하며 국민의 노후 자산을 당정의 정책 방향에 맞춰 활용하겠다는 발언을 하는 것 아니겠나.
보건복지부가 “이사장 개인 의견”이라며 선을 그었지만, 공공주택 투자 아이디어는 신호탄에 불과할 수 있다. 이미 정부는 1500원이 코앞인 원-달러 환율을 방어하기 위해 국민연금을 소방수로 끌어들였다. 외환 당국과 함께 협의체를 꾸린 국민연금은 전략적 환헤지 기간을 내년까지 늘리고, 한국은행과의 통화스와프도 연장했다. 국민연금이 보유한 달러를 시장에 풀어 환율 상승을 억제하겠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 방식이 국민연금의 중장기 수익률을 낮출 수 있다는 점이다. 국민연금연구원은 12년간 투자 포트폴리오를 분석해 헤지를 하지 않고 환위험에 100% 노출되는 것이 장기 수익률에 최적이라고 권고했다. 한미 간 성장률과 금리 차이, 통화량 팽창, 대미 투자 수요 확대 등 환율 상승을 이끄는 구조적 문제가 겹겹인데 연금 자산만 축낼까 우려된다.
환율·주가 방어도 동원… 불신만 더 높여
게다가 ‘코스피 5,000’을 내건 정부와 민주당은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투자 확대를 거듭 압박하고 있다. 1361조 원의 기금 중 몇 %만 투자를 늘려도 주가 상승엔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 투자 비중을 계속 줄여 왔다. 보험료 수입보다 연금 지출이 더 많아지는 시점이 되면 연금 지급을 위해 주식을 팔아야 하는데, 매물 폭탄이 증시에 큰 충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게 당장 5년 후다. 실물경제의 뒷받침 없이 올해와 같은 증시 상승세가 계속될 거라고 장담하기도 힘들다.
국민연금은 아직 많은 개혁이 필요한데, 청년들은 자신이 낸 연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 불안해하고 있다. 최근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조사에서 국민 절반 이상이, 특히 2030세대 10명 중 7명이 국민연금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을 정부 쌈짓돈이나 눈먼 돈 정도로 여기고 간섭하는 일이 계속된다면 불신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법 1조에 명시됐듯 연금의 목적은 ‘국민의 생활 안정과 복지 증진’이다. 국민 노후를 지킬 최후의 보루인 국민연금이 이 정부의 정치적 실험대가 돼선 안 된다.
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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