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중환의 진화의 창]왜 아이들은 산타클로스를 믿을까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25. 12. 24.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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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 크리스마스가 되면 이런 의심이 들었다. 혹시 얘가 산타클로스는 말짱 허구임을 알면서도 선물을 더 받고 싶어 짐짓 속아주는 척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보라. 산타 할아버지는 이미 유치원 산타 잔치에 오셔서 선물을 건네주셨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전날 밤 우리 집을 방문해 침대 머리맡에 또 다른 선물을 놓는다고? 말도 안 된다. 물론, 막상 성탄절 아침에 선물을 열며 활짝 웃는 아이를 보고 내가 괜한 의심을 했음을 깨달았다. 이해가 안 되면 외우자. 아이들은 산타클로스가 있다고 철석같이 믿는다. 그뿐만 아니다. 미취학 아동은 미키 마우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루미, <겨울왕국>의 엘사 여왕, 드래건, 티니핑, 슈퍼맨, 뽀로로, 피터 팬, 귀신, 요정, 신, 천사, 악마 등이 정말로 있다고 믿는 경향이 있다. 왜 그럴까?

“아직 어려서 실재와 가상을 구별하지 못하니까 그렇죠”라고 답하신다면, 틀렸다. 발달심리학자들은 유아가 약 3세부터 실재와 가상을 또렷이 구별하는 능력을 지님을 되풀이해서 보고했다. 이를테면, 주방 놀이에 심취한 꼬마 요리사는 장난감 케이크를 씹는 시늉을 할 뿐이지 정말로 씹진 않는다. 그런데 왜 ‘알 건 다 아는’ 아이들이 전 세계 수십억명을 착한 아이와 나쁜 아이로 나누고, 하룻밤 동안에 썰매를 타고 하늘을 날면서 착한 아이가 사는 집마다 선물을 넣는 할아버지가 실제로 북극에 산다고 믿을까?

인류의 진화사를 놓고 보면 우리의 마음이 어떤 아이디어에 흥미를 느끼고 오래 기억하도록 진화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산타클로스, 괴물, 요정, 신 같은 초자연적 행위자는 우리가 사람에 대해 직관적으로 품는 기대를 ‘살짝’ 뒤엎기 때문에 우리의 관심을 끈다. ‘깡그리’ 말고 ‘살짝’이 중요하다. 인지종교학에 따르면, 사람이라는 범주에 얌전히 속한 대상은 따분해서 금방 잊힌다. 사람 범주에 대해 우리가 직관적으로 품는 기대를 너무 많이 벗어나는 대상은 도대체 이해하기 어렵다. 직관적으로 품는 기대를 ‘살짝’ 뒤엎는 대상만이 우리의 흥미를 자아내고 오래 기억된다.

예를 들어, 귀신은 느끼고, 생각하고, 욕망하는 등 우리가 사람 범주에 직관적으로 품는 기대를 대부분 따른다. 그러나, 귀신은 벽을 뚫고 다닐 수 있는 존재라서 우리의 기대를 ‘살짝’ 벗어난다. 쉽게 기억되어 입에서 입으로 널리 전해진다. 반면에 직관적인 기대를 너무 많이 벗어나는 귀신, 이를테면 강철로 되어 있고, 광합성을 하고, 목요일에만 존재하고, 달걀을 낳는 귀신은 우리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산타클로스는 모든 아이의 일상을 엿보고, 하늘을 나는 썰매를 타는 등 반직관적인 요소를 ‘살짝’ 지니는 사람으로 묘사되기 때문에 우리의 관심을 끌고 오래 기억된다.

이쯤에서 눈 밝은 독자는 질문할 것이다. 왜 사람들이 초자연적 행위자를 흥미롭게 여기고 오래 기억하는지를 설명하는 것과 그중 극히 일부가 진짜로 있다고 믿으며 열렬히 숭배하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여러분은 뽀로로가 실존한다고 믿는 어른을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을 것이다. 여러분은 약 8세까지는 산타클로스가 실존한다고 믿었겠지만, 이후 그 믿음을 접었을 것이다.

초자연적 행위자 가운데 종교적 숭배의 대상이 되는 일부 행위자들은 중요한 특징이 있다. 바로 인간 세상을 주시하며 악인에게 벌을 내리는 도덕주의적 신이라는 점이다. 사실, 신이 인간사와 전혀 무관하다면 우리가 그러한 신에게 굳이 기도를 드리거나 의례를 행할 필요는 없다. 아마존 정글에 사는 무척추동물에만 통달한 신에게 예물을 올릴 신도는 없다. 아무도 없을 때 슬쩍 저지른 악행도 반드시 처벌하는 초월적인 신을 진심으로 두려워하고 섬긴 진화적 조상은, 남들과 거래할 때도 결코 뒤통수를 치지 않을 믿음직한 동반자로 선호돼 번식에 유리했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산타클로스가 아이들의 행동을 일일이 도덕적으로 판단하기보다는 그저 아이들을 전반적으로 착함 혹은 나쁨으로 나누는 데 그치는 모습은 아이들에게 큰 감흥을 주기 어렵다.

요약하자. 아이들이 산타클로스를 굳게 믿는 까닭은 산타클로스가 직관에 ‘살짝’ 어긋나는 초자연적인 행위자일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도덕적 삶에 산타클로스가 일정 부분 개입하고 감시하기 때문이다. 산타클로스는 유아의 삶에만 개입하므로, 아이들은 커가면서 산타 이야기의 허점을 캐묻는 질문을 부모에게 하면서 서서히 믿음을 놓는다. “어떻게 산타는 하룻밤 만에 전 세계를 다 돌 수 있죠?”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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