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탄소에 난방비 절감도 가능한 ‘히트펌프’, 국내서도 ‘히트’ 가능할까


Q. ‘차세대 난방 기술’인 히트펌프는 탄소 감축의 열쇠가 될 수 있을까요?
히트펌프는 공기·물·땅 속에 남은 열을 끌어모아 압축 과정을 거친 뒤 이를 난방 열과 온수로 활용하는 기술입니다. 집 안 열을 밖으로 내보내는 에어컨과 반대 원리로 작동한다고 보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유럽에선 히트펌프를 따뜻한 열을 끌어모아 실내 온도를 높이는 열풍 기기로 활용하고, 우리나라의 경우 열로 물을 데워 온돌을 달구는 난방 기기로 사용한다는 게 활용 방법의 작은 차이에요.
히트펌프의 강점은 투입한 에너지보다 약 3배가량의 열을 얻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에 가장 많이 보급된 난방 기기인 가스 보일러의 경우, 가스에너지 1킬로와트시(㎾h)를 태울 경우 연소 손실 때문에 0.8~0.9㎾h 열을 얻을 수 있어요. 그러나 히트펌프는 자연에 이미 존재하는 열을 모아서 옮기는 데만 에너지를 사용하기 때문에 1㎾h 전기로 3㎾h가 넘는 열을 공급할 수 있습니다. 가스 보일러의 열효율이 80%라면, 히트펌프는 300% 효율을 낼 수 있다는 뜻이죠.
적은 양의 에너지를 사용하는 만큼 히트펌프의 난방 요금은 가스 보일러보다 경제적입니다. ‘국민평형’이라고도 불리는 84㎡(34평) 아파트 기준으로 가스 보일러를 사용할 경우 하루 2㎥ 도시가스를 써서 약 2천원의 난방비가 들지만, 같은 조건에서 히트펌프는 약 6㎾h 전력을 사용해 난방비를 1200원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전세계적으로 히트펌프는 난방 과정에서 화석연료를 직접 태우지 않아 탄소를 발생시키지 않는 기술이라는 점으로 더 주목받습니다. 84㎡ 아파트 기준으로 도시가스는 하루 난방에 탄소 4㎏(가스 2㎥ 사용)를 배출하지만, 히트펌프를 사용하면 배출량이 약 2.3㎏(전기 6㎾h 사용)에 그칩니다. 만약 이 전기를 탄소가 발생하지 않는 태양광 발전으로 조달한다면 온실가스 배출량은 최대 0까지 줄일 수 있겠죠.

산업적인 측면에서도 히트펌프는 우리나라의 미래 먹거리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50년까지 전세계 난방 수요 55%를 히트펌프가 대체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삼성과 엘지 등 주요 기업들이 이미 세계적 수준의 히트펌프 기술을 보유하고 있지만, 국내 시장 대신 국외 시장에서만 영업을 하는 상황이죠. 국내 히트펌프 시장이 활성화하면 국내 제조·설비 산업 생태계는 더욱 확대될 여지가 큽니다. 스웨덴과 핀란드 같은 북유럽 국가에서 공간 난방 목적의 히트펌프 보급률은 90%에 육박하지만, 보급 초기 단계인 우리나라는 관련 통계조차 찾아보기 힘든 상황입니다.
난방비와 탄소를 동시에 줄일 수 있는데도, 히트펌프 기술이 우리나라에는 널리 보급되지 않은 이유는 대체 뭘까요? 가장 큰 이유로 1970년대부터 추진된 도시가스 보급망 확대사업을 꼽을 수 있습니다. 주거지 곳곳에 가스 배관망이 깔려 가스 보일러가 설치됐고, 이후에는 지역난방까지 확대하면서 이외의 다른 설비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던 거죠. 아파트 기준으로 히트펌프를 설치하는 비용이 가스 보일러를 놓는 비용보다 약 7배 이상 비싸, 건설업자 입장에서는 굳이 비싼 설비를 설치해야 할 유인도 적었습니다. 설치 이후 난방비를 비싸게 부담하는 건 거주자의 몫이니까요.
정부는 도시가스나 지역난방 기반 시설이 깔리지 않은 지역에 우선적으로 히트펌프 보급한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현재 국내 10가구 중 6가구는 도시가스 보일러, 2가구는 지역난방을 사용하고 있지만, 나머지 2가구는 관련 기반 시설이 없어서 기름 보일러나 엘피지(LPG) 보일러 등을 사용하고 있죠. 이 가구들을 먼저 공략해 저변을 확대하겠다는 계획입니다. 단독주택 약 250만호와 공장 및 공용시설 100만호 등에 일부 설치비와 저금리 대출을 지원한다는 대책도 세웠습니다.
다만 히트펌프가 국내 주요 난방 설비로 자리잡기 위해선 법과 제도 개선 등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현 제도는 과거 연탄 시대에서 벗어나 가스 등의 보급률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춰왔는데, 이처럼 화석연료에 기울어진 정책을 단계적으로 손보는 게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주택을 건설할 때 가스 설비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는 법이 대표적입니다. 전기를 많이 쓸수록 더 많은 요금을 부과하는 전기요금 누진제가 히트펌프 보급에는 불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난방 목적으로 전기를 사용할 땐 누진제 부담을 줄여주는 안도 검토되고 있습니다. 권병철 기후에너지환경부 열산업혁신과장은 “지역별 도시가스 배관 수명을 고려해 차츰 히프펌프를 늘려가는 정책을 지속하면, 주택 난방 부분의 탄소 감축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옥기원 기자 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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