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미 대통령, 1차 북핵 위기 때 일본에 ‘긴급사태 대비’ 언질”

홍석재 기자 2025. 12. 24.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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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부가 1994년 1차 북핵위기 당시 일본에 한반도 비상사태에 대비하라는 사전 언질을 했던 사실이 일본 외교 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그해 2월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호소카와 모리히로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에서 북핵 위기 관련 의제가 다뤄졌다.

1차 북핵위기는 1994년 여름 미국이 북한 영변 핵시설 선제공격 일보 직전까지 갔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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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외교 문서 공개
1994년 10월21일 미국 핵담당대사 로버트 갈루치(앞줄 왼쪽)와 북한 외무성 강석주 제1부부장이 제네바에서 ‘북-미 기본합의서’에 서명한 뒤 교환하고 있다. ‘1차 북핵 위기’를 넘기고 외교적 해결의 실마리를 연 합의였지만 이후 지켜지지 않았다. 한겨레 자료사진

미국 정부가 1994년 1차 북핵위기 당시 일본에 한반도 비상사태에 대비하라는 사전 언질을 했던 사실이 일본 외교 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일본 외무성은 24일 1994년 당시 6800쪽 분량의 외교 문서를 누리집에 공개했다. 그해 2월 미국 백악관에서 열린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호소카와 모리히로 일본 총리의 정상회담에서 북핵 위기 관련 의제가 다뤄졌다. 클린턴 대통령이 긴박한 북한 상황을 호소카와 총리에게 설명해 달라고 요청하자 워런 크리스토퍼 미 국무장관이 이렇게 말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이사회가 (독일) 빈에서 열리면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북한의 협상이 검토될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현재의 신호는 좋지 않다. 북한은 완고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국제원자력기구의 보장 조처에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 아직 희망은 있다. 그러나 2월21일 국제원자력기구가 북한에 대한 보장조치의 지속성이 단절되었다고 결정할 가능성도 있으며, 그 경우에 대비해 비상대응책을 마련해 둘 필요가 있다.”

크리스토퍼 장관은 호소카와 총리에 상황의 심각성을 알리면서 유사시 일본 정부의 협조도 요청한다. 그는 “협상을 통해 이런상황을 고려하지 않아도 되기를 바라지만, 국제원자력기구가 이 문제를 유엔(UN) 안보리에 회부할 경우에 대비해 제재에 이르기까지의 중간적 조치에 대해 논의해 두는 것이 유익하다”며 “제재를 부과하면 일본의 협력이 매우 중요한 만큼 공동의 입장을 마련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이런 사태에 이르게 될 가능성은 상당히 있다”고도 언급했다.

1차 북핵위기는 1994년 여름 미국이 북한 영변 핵시설 선제공격 일보 직전까지 갔던 일이다. 앞서 1992년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의 임시사찰을 6차례 받았다. 1993년 1월 국제원자력기구는 북한의 보고 내용 중 ‘중대한 불일치’를 지적하며 특별사찰을 요구했다. 하지만 북한이 여기에 거세게 반발해 1993년 3월12일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했다. 미국이 이 상황에 물리적 대응까지 고려하며 1차 북핵 위기의 시작됐다.

당시 긴박했던 상황에 클린턴 대통령이 호소카와 총리와 정상회담 때 일본까지 국가 비상사태(컨틴전시)에 대비하라는 경고를 건넨 것이다. 이에 대해 호소카와 총리는 북핵 개발 문제에 대해 “북한이 1500km 사거리를 가진 미사일 개발과 발사 실험을 하고 있어 (일본은) 위기감을 갖고 있다”며 “유엔 안보리에서 경제 제재를 실시하는 사태가 발생할 경우, 일본은 당연히 국내법상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 책임있는 대응을 할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또 그는 한국을 언급하며 “미국, 한국, 중국과 협력해 대처해 나가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때 크리스토퍼 장관은 “우리(미국과 일본)는 공통의 이익을 갖고 있다”며 “한국, 중국과도 협력해 나가고 싶다”며 북한을 둘러싼 주변국 가운데 특히 중국의 태도에 관한 분위기도 전달했다. “중국 쪽은 북한에 대한 압박이나 제재에는 다소 우려를 표했지만 한반도에 핵 존재를 허용하는 것은 단호히 반대한다는 입장이었다. (중국이) 스스로 당장 압박이나 제재를 가해 달라고 요청한 것은 아니지만 현상을 방치하면 북한이 핵 게임을 벌여 지역 전체가 불안정해질 수 있음을 강조했다.”

다만 당시 상황은 다행히 1994년 10월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로 누그러졌다.

도쿄/홍석재 특파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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