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에서 꺼낸 바다 <55> ‘타찰법’으로 만든 나전칠대모쌍룡문함

김진태 국립해양박물관 전시기획팀 선임학예사 2025. 12. 24.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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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에서 '금(Crack)'이나 '깨짐'은 흠결을 의미한다.

현재 국립해양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조개, かい: 패각에 담긴 한국과 일본의 흔적' 기획전시는 양국의 나전칠기를 기법별로 조명하고 있다.

그중 타찰법을 소개하는 코너의 중심에 단연 돋보이는 유물이 있으니, 바로 부산광역시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나전칠대모쌍룡문함(螺鈿漆玳瑁雙龍文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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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개 깨트려 완성한 영롱한 빛…19세기 조선왕실 위엄을 담다

- 용의 기운·구름무늬 섬세한 표현
- 궁중 의복 보관 용도로 사용 추정

현대사회에서 ‘금(Crack)’이나 ‘깨짐’은 흠결을 의미한다. 스마트폰 액정에 난 작은 금 하나도 우리 마음을 쓰리게 하지 않는가. 하지만 조선의 장인들에게 ‘깨짐’은 흠이 아니라, 더 찬란한 빛을 내기 위한 고도의 기술이었다. 단단한 껍데기에 인위적으로 균열을 내어 기물의 곡면에도 자연스럽게 밀착시키고, 빛의 굴절을 극대화하는 이 역설적인 기법이 바로 우리나라 나전칠기의 고유 기법인 ‘타찰법(打擦法)’이다.

부산 영도구 국립해양박물관 소장 ‘나전칠대모쌍룡문함’.


현재 국립해양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는 ‘조개, かい: 패각에 담긴 한국과 일본의 흔적’ 기획전시는 양국의 나전칠기를 기법별로 조명하고 있다. 그중 타찰법을 소개하는 코너의 중심에 단연 돋보이는 유물이 있으니, 바로 부산광역시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나전칠대모쌍룡문함(螺鈿漆玳瑁雙龍文函)’이다.

19세기 말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함은 의복을 보관하는 용도로 쓰였다. 언뜻 보면 화려한 자개 장식에 눈이 먼저 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바다에서 건져 올린 귀한 재료가 집약된 ‘바다의 보물상자’다. 함의 중앙에는 바다거북의 등딱지인 대모(玳瑁)로 만든 붉은 여의주가 자리 잡고 있고, 그 좌우로는 두 마리 용이 서로 마주 보며 맹렬한 기세로 대치하고 있다.

특히 이 유물의 진가는 세부 묘사에서 드러난다. 장인은 용의 비늘과 갈기에 물고기 가죽(어피)을 사용하여 거친 질감을 살렸고, 용의 눈은 자개를 원형 그대로 오려 붙여 형형한 눈빛을 강조했다. 반면, 용을 감싸고 있는 상서로운 기운과 몽환적인 구름무늬는 타찰법을 이용하여 지극히 섬세하게 표현했다. 매끈한 자개가 아닌 수없이 많은 균열을 낸 조각들이기에, 구름은 마치 바람에 흩날리는 듯한 입체감을 가진다. 깨트려진 면들이 빛을 여러 갈래로 흩뿌리며 더욱 영롱한 광채를 뿜어내는 원리다.

함의 크기와 형태, 당대 귀한 수입 재료였던 대모를 사용한 점, 그리고 함 내부 바닥면까지 원룡문(圓龍文)이 수놓아져 있는 비단으로 감싼 점 등으로 보아 이 함은 궁중에서 왕실의 의복을 담았던 최상급 기물로 추정된다.

깨지고 부서진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완벽한 우주를 이루는 나전칠대모쌍룡문함. 흠결 없는 매끈함만을 강요받는 현대인에게, 이 오래된 함은 ‘부서져야 비로소 빛날 수 있다’는 역설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바다의 흔적을 예술로 승화시킨 타찰법의 정수와 한일 양국의 다양한 패각 유물들은 내년 3월 2일까지 국립해양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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