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자에서 명상 전도사로 “삶과 죽음 사유하는 사회 위해”
[짬] 노상충 캐럿글로벌 이사회 의장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기업인이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임 ‘모리와 함께’를 운영해왔다. 그는 또 인문철학재단을 설립해 철학 계간지 ‘타우마제인’을 발행하더니 최근에는 명상센터 ‘센터원’까지 문을 열며 명상 전도사로 나섰다. “삶과 죽음에 대한 사유와 명상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는 노상충(54) 캐럿글로벌 이사회 의장을 만나 그 특별한 여정에 대해 들어봤다.
중소기업 운영하며 ‘죽음’ 모임 진행 인문철학재단 설립해 철학잡지 발행
“경영하면서 생긴 ‘인간’에 대한 물음
따라가다 보니 불교 철학까지 공부”
전북 남원에서 태어난 노상충 의장은 어린 시절 심각한 결핵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 뒤 홀로 서울 유학을 떠나오면서 또래보다 일찍 삶과 죽음을 성찰하는 청년으로 자라났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삼성전자에 입사했지만 “더 넓은 세계를 배우고 싶어” 미국으로 건너가 경영대학원(MBA) 과정을 밟았다. 학업을 마친 뒤 30살에 창업한 회사는 직원 2명으로 출발해 현재 200여명이 근무하는 교육 전문 기업으로 성장했다.
“제가 유학하던 1999∼2000년 당시는 세계 시장에서 일본이 정점을 찍고 있었고 한국은 별로 알아주지 않던 때였어요. 한국 기업이 어떻게 글로벌 무대에서 이길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글로벌 역량을 키우는 교육에 주목했습니다. 당시 해외 주재원들은 영어학원 1∼2달 정도만 다니고 나갈 정도로 별 준비가 없었어요. 주재원을 대상으로 언어는 기본이고, 글로벌 이문화, 협상과 프레젠테이션 같은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리더십까지 키우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교육하는 회사를 창업했죠. 지금은 글로벌 기업들과 해외에 있는 한국 기업들의 현지 채용인 교육과 리더십 교육으로까지 확장해 연간 40만명을 교육하고 있습니다.”
창업 초기부터 직급을 막론하고 서로 영어식 이름을 부르게 하고, 매달 독서토론 모임과 연 1회 전 직원 해외여행을 보내는 등 수평적이고 개방적인 조직 문화를 도입해 조직 구성원들의 마음을 샀지만, 경영학 교과서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도 많았다.
“직원들이 2명에서 5명, 10명, 20명으로 늘어나는데 경영학에서 배운 인사관리로는 안 되더라고요. 직원 5명일 때는 1명만 그만둬도 조직의 20%가 잘려나가는 거잖아요. 직원이 ‘할 얘기가 있다’고만 해도 심장이 쿵 떨어졌죠. 사람의 마음을 체계적으로 공부해보고 싶어서 심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성균관대에서 산업·조직 심리학으로 박사 과정을 밟았고, ‘일터 영성’을 주제로 쓴 논문은 한국갤럽에서 수여하는 ‘올해의 박사 논문상’을 받았다. “영성이란 인간이 더 나은 인간이 되고자 하고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의식입니다. 인간에게 본래부터 내재한 것이죠. 이 논문은 개인이 일을 통해 어떻게 조직과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지 탐구한 논문입니다. 조직 구성원의 성장이 전제되지 않고선 회사의 지속 가능성이란 꿈은 결코 현실이 될 수 없거든요.”
박사학위 취득 후에는 일산 백병원에서 뇌파를 이용한 뇌과학을 연구했다. “인간은 의식적 존재인 동시에 생물학적 존재입니다. 심리학을 통해 의식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탐구했다면, 생물학적 메커니즘으로서의 인간을 연구하기 위해 뇌를 공부했지요.” 최근에는 동국대 불교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데이비드 호킨스, 켄 윌버, 에크하르트 톨레 등 세계적인 영성 지도자들의 사상을 살펴보면, 각자 다른 언어로 이야기할 뿐 그 근본은 불교 철학에 닿아 있더군요.”
회사를 운영하기만도 벅찰 텐데 학업과 병행한 비결을 묻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사실 경영과 공부에 경계나 구분은 없습니다. 회사를 잘 운영하기 위해 공부한 것도 아니고, 공부한다고 해서 회사 경영에 소홀해진 것도 아니에요. 그저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 물음을 쭉 따라가다 보니 그 과정 안에 회사도 있고 공부도 있었을 뿐입니다.”
경영 일선 물러난 뒤 명상센터 세워
“죽음 지나치게 터부시하는 한국 사회
몸은 다 컸지만, 의식은 어린이 상태”
그는 오십이 되던 해에 회사 직원들에게 대표의 자리를 물려주고 이사회 의장으로 물러났다. “50살이 넘으면 경영보다는 명상을 가르치는 것으로 사회에 기여해야겠다는 생각을 늘 해왔거든요.”
지난해 8월15일 광복절에 맞춰 서울 용산구 해방촌에 문을 연 명상센터 ‘센터원’은 갤러리와 카페 ‘사유’도 함께 갖추고 있는 복합문화공간이다. 갤러리와 카페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으며, 명상센터는 현재 스타트업 대표들을 대상으로 명상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제가 그 길을 걸어봐서 아는데, 스타트업 대표들이 돈도 없고 마음도 힘들거든요. 주중에는 명상과 요가도 가르치고 주말에는 마음 전문가들을 모시고 강연을 진행합니다. 기업가들의 의식이 확장되어야 한국의 미래도 열릴 수 있죠.”
사실 그는 10대 시절부터 명상해온 오랜 수행자다. 우연히 접한 한권의 책을 계기로 명상을 만난 뒤 명상은 평생 그의 일상이자 길잡이였다. 올해 초에는 경영자이자 명상가로서의 삶을 정리한 ‘명상에서 찾은 경영의 길’을 펴내기도 했다. “명상은 깊은 고요 속으로 들어가 지혜와 자유를 얻는 과정입니다. 자신을 알고 자신을 확장하며, 의식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길이죠.”

2021년 시작한 ‘모리와 함께’(www.withmorrie.com)는 매달 한 차례 죽음 전문가를 초청해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세미나 프로그램이다.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성숙하기 위해선 죽음에 대해 질문하고 사유해야 합니다. 하지만 한국은 죽음을 지나치게 터부시하기 때문에 우리 사회는 몸은 다 컸지만 의식은 어린이인 상태입니다. 내일이라도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고 사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은 인간과 원숭이를 가르는 분기점이죠.”
같은 해 설립한 비영리 인문철학재단 타우마제인(www.thaumazein.co.kr)은 우리 사회의 철학적 사유를 증진시키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전국 철학 교사들을 위한 워크숍을 비롯해 일반인을 위한 철학 축제와 콘퍼런스를 열고, 철학 계간지 ‘타우마제인’도 현재 8호까지 발행했다. 타우마제인은 고대 그리스어로 ‘경이로움’을 뜻하며,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인 이한구 경희대 석좌교수가 이사장을 맡아 재단을 이끌고 있다.
그의 모든 활동이 가리키는 방향은 결국 하나다.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새로운 문명 시대에 인간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이 같은 실존철학적 질문에 대한 사유와 통찰이 풍부한 성숙한 사회가 되는 것이지요.”
김아리 객원기자 a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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