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호영 부의장, 사회보세요”···끝없는 필리버스터에 의장단 ‘체력 고갈’ 호소 촌극까지

우원식 국회의장이 24일 “이런 식의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 여당은 쟁점 법안의 일방 처리를 밀어붙이고, 야당은 민생법안까지 가리지 않고 모든 안건에 필리버스터를 하면서 의장단이 체력 고갈을 호소하는 촌극까지 벌어졌다. 대화와 타협의 정신을 잃은 국회가 필리버스터 제도를 스스로 형해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우 의장은 이날 국회 본회의 산회를 선포하기 직전 “어제 새벽 4시에 의장이 사회 교대를 하던 시간에 본회의장 의석에는 두 분의 의원만 있었다”며 “이런 비정상적인 무제한 토론은 국민들 보시기에도 너무나 부끄럽고 창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이런 식의 무제한 토론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양당 교섭단체 대표께서는 개선 방안을 내어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앞서 우 의장은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본회의 상정에 앞서 국민의힘 소속 주호영 국회부의장에게 23일 밤 11시부터 24일 오전 6시까지 본회의 사회를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우 의장은 주 부의장이 사회를 거부할 경우 무제한 토론을 중단하고 본회의를 중단할 수 있다는 뜻도 내비쳤다. 그러나 주 부의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필리버스터 사회 거부는 의회주의를 위한 최소한의 저항”이라며 사회 거부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여야가 우 의장에게 본회의 재개를 요청하면서 필리버스터 중단이라는 초유의 사태로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다만 우 의장은 반복된 필리버스터로 의장단의 체력 부담이 한계에 이르렀다고 토로했다. 우 의장은 “지금까지 10회에 걸쳐 535시간의 무제한 토론이 있었다. 이중 주호영 부의장이 사회를 본 시간은 33시간”이라며 “의장과 다른 한 분의 부의장 체력에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무제한 토론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필리버스터는 ‘소수당의 마지막 언로’라는 제도 취지를 잃고 형식적인 정쟁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쟁점 법안을 강행 처리하고 국민의힘은 민생 법안에까지 필리버스터를 하면서 법안 처리를 지연시키는 양상이 반복됐다. 무제한 토론이 시작되면 국민의힘 의원들이 대거 퇴장하거나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 자당 의원이 필리버스터에 나서는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졌다.
우 의장의 발언을 계기로 필리버스터 요건을 강화하는 국회법 개정 논의도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재적 의원 5분의 1(약 60명)이 충족되지 않으면 국회의장이 필리버스터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연내 처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의장실 관계자는 “부의장이 사회를 보지 않아 발생하는 문제를 필리버스터 관련 법을 개정해 풀겠다는데 회의적이었다”면서도 “최근 의장의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관건은 조국혁신당의 입장이다. 혁신당은 그동안 “필리버스터는 소수 의견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라며 국회법 개정에 반대해왔다. 민주당은 최근 필리버스터 유지 요건을 기존 60명에서 30명으로 낮추는 수정안을 제안했지만 혁신당은 여전히 회의적인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상임위원장이 본회의 사회를 대신 맡도록 하거나 여야 합의로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에 대해서는 필리버스터를 제한하는 방안에는 의견 차가 크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과 혁신당의 합의 여부에 따라 연초 민생법안 처리 일정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오는 30일로 예상되는 본회의에서는 29일 열리는 감사원장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이 주 안건이지만, 민주당은 민생법안 처리도 병행하자는 입장이다. 현재 국민의힘은 본회의에 부의된 199개 법안 가운데 52개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신청했다. 이대로라면 민생법안 52건을 처리하는데 최소 52박53일이 걸릴 수 있다.
일각에서는 여야 협치를 복원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법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은 22~24일 본회의를 통과한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과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에 이어 법왜곡죄 신설, 대법관 증원 등 사법개혁 법안을 내년 1월 처리하겠다고 예고한 만큼 여야 간 대치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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