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집값 조작’이라는 범죄
한국인에게 아파트는 평생의 목표이자 재산 목록 1호다. 가족과 생활하는 안식처일 뿐 아니라 사회적 지위와 평판까지 드러낸다. 사람들이 아파트를 사기 위해 영혼까지 끌어모으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아파트 시장은 공정하지 않다. 중고차 시장처럼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인해 매수자가 턱없이 불리하다. 파는 사람은 물건의 시세와 장단점 등을 속속들이 알지만 사는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
아파트 매매에서 기준 역할을 하는 것이 직전 거래 가격이다. 하지만 이것도 매도자가 나쁜 마음을 먹으면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꿀 수 있다. 실제로는 거래하지 않았으면서 높은 가격에 판 것처럼 꾸미는 식이다. 최근엔 이런 수법이 더욱 정교해지고 있다. 어떤 이는 자신이 이사로 있는 법인에 아파트를 종전 가격보다 높게 판 것처럼 신고한 뒤 다른 사람에게 되팔아 앉은 자리에서 수억원을 챙겼다. 가족끼리 짬짜미로 고가에 거래한 뒤 제3자에게 매도한 사례도 있다. 가격 상승기엔 이런 집값 조작이 한두 건만 생겨도 부동산 심리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친다.
올들어 서울에서 아파트 매매 후 계약을 취소한 비율이 급증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1~11월 서울 아파트 매매 건수 7만5339건 중 현재까지 해제 신고를 한 사례는 5598건으로 전체 계약의 7.4%에 이른다. 실거래가 시스템에 계약 해제 이력을 공개하기 시작한 2020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국토부가 하반기에 적발한, 신고가를 찍고 계약을 취소하는 등 위법 의심거래만 1002건이다. 당국도 감시를 강화하고 있지만 계약일과 잔금 지급일 간 시차가 길면 정상적인 거래 취소인지 집값 조작용 취소인지 구분하기 쉽지 않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이용해 가격을 담합하거나 특정 공인중개사를 동원해 시세보다 높은 가격에 매물을 내놓는 행위도 비일비재하다.
불투명하고 불공정한 시장에서 피해 보는 쪽은 실수요자와 서민이다. 인위적인 집값 띄우기는 주가조작 못지않은 악질 민생범죄다. 이재명 대통령이 “주가를 조작하면 패가망신한다는 걸 보여주겠다”고 했는데 집값 띄우기에도 철저한 조사와 엄한 처벌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인 형량을 더 높여야 한다.

오창민 논설위원 risk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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