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금 5억뿐인데 983억 빌딩 쇼핑? 피플바이오 ‘상폐 탈출’ 꼼수 논란

김정은 기자 2025. 12. 24.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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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채·채무 승계로 900억 강남 부동산 매입
관리종목 위기 회피 목적…주주들 “일단 급한 불은 껐다”
시장 전문가 “재무 수치 조절일 뿐, 본업 경쟁력이 중요”

알츠하이머 진단 의료기기 전문 기업 피플바이오가 서울 강남구 대치동 소재의 900억원대 부동산을 매입한다. 지속된 적자로 관리종목 지정 위기에 몰리자, 부동산 매입을 통해 재무구조를 개선하겠다는 취지다. 이 소식이 전해진 24일 피플바이오 주가는 상한가를 기록했다.

주주들은 일단 급한 불은 껐다며 안도하는 분위기이지만, 시장에서는 본업 경쟁력 강화가 아닌 재무적 기법에 의존한 위기 탈출이라는 점에서 장기적인 리스크를 우려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그래픽=정서희

피플바이오가 서울 강남구 대치동 소재의 토지와 건물을 휴먼데이타로부터 983억원에 취득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피플바이오의 올해 3분기 기준 자본총계(17억원) 대비 약 57배에 달하는 규모다.

이번 거래는 현금 유출없이 기존 대출 600억원을 승계하고, 나머지 356억원은 휴먼데이타에 8회차 전환사채(CB)를 발행해 대용 납입하는 구조로 설계됐다. 사채 발행으로 들어올 돈과 부동산 매입에 쓸 돈을 상계해 처리했다는 의미다.

이번 거래의 핵심은 발행되는 CB가 ‘영구채(신종자본증권)’ 성격이라는 점이다. 일반 CB는 부채로 인식되나, 영구채는 회계상 자본으로 분류된다. 이 덕분에 피플바이오는 실질적인 현금 유입 없이도 자본을 확충한 것과 유사한 회계 효과를 얻게 된다.

2020년 기술특례로 코스닥에 상장한 피플바이오는 매출액 기준 5년, 법인세비용차감전계속사업손실(법차손) 기준 3년의 유예를 받아왔으나, 법차손 유예는 지난해, 매출액 유예는 올해 각각 만료된다. 특히 ‘자기자본 대비 법차손 비율 50% 초과’ 규정이 발목을 잡고 있다. 피플바이오의 해당 비율은 지난해 161%에 이어 올해 3분기 341%까지 치솟았다. 이번 결산에서도 50%를 넘길 경우 곧바로 관리종목으로 지정되며, 이는 상장폐지 실질심사로 이어질 수 있는 사안이다.

회사 측은 이번 거래가 주된 사업 변경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최근 금융위원회는 ‘코스닥 시장 활성화 방안’을 통해 기술특례 상장 기업이 상장폐지 유예 기간(5년) 동안 상장 심사를 받은 기술과 무관한 사업으로 주된 사업을 변경할 경우, 상장폐지 심사 사유로 삼겠다고 밝힌 바 있다.

피플바이오 치매 조기 진단키트. /피플바이오 제공

거래 상대방인 휴먼데이타의 박세권 대표는 지난 11월 유상증자를 철회했던 이스턴네트웍스의 대표와 동일 인물이다. 한 차례 무산된 거래가 주체만 바뀌어 다시 성사된 셈이다.

회사 측에 따르면, 당초 이스턴네트웍스가 유상증자 납입을 위해 추진하던 자산 유동화에 차질이 빚어지면서 거래가 무산됐으나, 이후 협의를 거쳐 휴먼데이타가 CB를 인수하는 구조로 거래가 다시 성사됐다. 이 과정에서 발행되는 CB는 기존 발행 주식 수의 60%에 달하는 3272만 주 규모로, 추후 주식 전환 시 심각한 지분 희석이 불가피하다. 휴먼데이타가 사실상 최대 주주로 올라설 수 있는 구조이기도 하다.

시장에서는 이번 자산 양수가 단기적으로는 상장폐지 리스크를 완화하는 호재로 작용할 수 있지만, 본업 경쟁력 확대를 통한 재무 구조 개선이 아닌 만큼 장기적으로는 부담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CB 이자와 600억원 규모의 채무 승계에 따른 이자 부담도 현금 흐름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CB 표면이자율과 만기이자율은 각각 2%로 평균보다는 낮지만, 3개월마다 약 1억7800만원의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 현재 피플바이오의 현금성 자산은 5억원 수준에 불과하다.

자본시장에 정통한 한 회계사는 “관리종목 지정과 상장폐지 위험을 일단 넘겼다는 점에서 단기적으로는 긍정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면서도 “전액 채무와 CB로 부동산을 취득한 만큼 이자 비용 부담이 크고, 임대나 매각이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재무 리스크가 오히려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피플바이오는 “판관비 절감을 진행 중이며, 알츠하이머 진단 제품 ‘알츠온’의 실제 검사 건수가 증가하고 있어 매출로 연결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이번에 취득한 유형 자산을 내년 중 매각하는 방안도 검토 중으로, 현금 유동성을 확보해 바이오 본업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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