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밖에 모르는 ‘스크루지’, 자기애적 인격장애?… 소설 ‘크리스마스 캐롤’ 보니
성탄이면 등장하는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
주인공 스크루지 심리·증상 정신의학적 분석했더니
타인 고통 무감각은 어린 시절 경험이 뿌리
혹독한 생활, 억압된 욕망, 콤플렉스에서 비롯
개인 비난보다 치료·관리가 필요한 정신질환
디킨스, 인간 심리와 정신질환 세밀하게 고찰

해마다 성탄절이 다가오면 떠오르는 대표적 문학 작품의 하나가 영국 작가 찰스 디킨스(1812~1870년)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이다. 1843년 12월 19일 발표된 이 작품은 서구에선 물론 한국에서도 너무도 잘 알려진 '성탄 문학'의 고전이다. 구두쇠 에비니저 스크루지가 성탄 전날 밤중에 이미 세상을 떠난 동업자의 유령과 그가 안내하는 과거·현재·미래의 유령을 만나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고 개과천선한다는 내용이다.
'크리스마스 캐롤'은 매년 성탄을 전후해 전 세계에서 소설은 물론 영화·드라마·뮤지컬 등 다양한 형태의 미디어를 통해 반복 소비돼왔다. 1990년 할리우드 영화 '나홀로 집에'와 2003년 영국 영화 '러브 액추얼리'가 나오기 전에는 거의 유일한 성탄절 가족 드라마로 소비됐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성탄 전야에 벌어지는 수전노의 변신과 양심회복은 가슴을 뜨겁게 해주는 주제다.
도덕적 교훈은 물론 인간 심리 관찰·통찰 돋보여
이런 내용 때문에 이 작품은 주로 도덕적 교훈을 주는 권선징악 문학으로 평가돼 왔다. 하지만 주인공 스크루지의 삐뚤어진 마음과 병적인 행동, 그리고 이를 바꾸는 극적인 변화를 정신의학·정신보건학·심리학적으로 재해석해보면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주인공 의식의 깊은 부분에 가라앉아 있던 과거 어린 시절의 혹독한 경험과 억압된 욕망, 그리고 콤플렉스가 현재의 뒤틀린 사고방식과 행동으로 나타났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와 분석심리학자 카를 융(1875~1961)의 인간심리 개념이 작품 속에 줄줄이 나타난다. 무의식이란 개념을 내놓은 프로이트는 인간의 행동과 성격이 어린 시절의 경험과 억압된 욕망에 의해 형성된다고 파악했다. 융은 콤플렉스와 집단무의식의 개념을 확립했다. 정신분석학이 이 작품이 나온 지 반세기 뒤인 1890~1900년에 확립됐음을 감안하면 디킨스의 인간 심리에 대한 통찰이 놀라울 정도다. 이를 바탕으로 이 작품을 다시 살펴보면 성탄절을 계기로 나를 되돌아보면서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태도 변화를 유도하는 정교한 사이코드라마로 볼 수 있다.
아울러 저임금 노동과 아동 노동을 방치하고 사회적 약자인 가난한 사람과 병든 이, 그리고 장애인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한 배금주의 시대의 그림자와 마음의 병을 묘사한 작품으로도 평가할 수 있다. 디킨스는 사회적 모순이 범람하던 당시 영국 사회에 경종을 울리면서 개인의 양심을 바탕으로 하는 도덕적 변화와 사회 제도의 개선을 호소해 '펜을 든 사회운동가'로 평가 받았다. 조선으로 치면 헌종(1834~1849년 재위) 시대에 쓰여진 디킨스의 작품이 지금까지도 국경을 넘어 사람들의 마음에 울림을 주면서 인기를 누리는 이유는 이처럼 인간의 심리와 사회문제를 동시에 세밀하게 고찰한 덕분일 것이다.

수전노 앞에 나타난 동업자 유령, "선행 베풀지 못하고 죽어 후회"
정신의학·정신보건학·심리학적 시각으로 '크리스마스 캐롤'을 살펴보자. 작품에서 묘사된 주인공 스크루지의 말과 행동은 병든 마음을 잘 보여준다. 그는 "흥, 사기꾼 같으니(Bah! humbug)"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 정도로 사람과 세상을 불신하면서 염세적인 태도를 보인다. 타인에게 인색하고 매정하며 세상에서 고립되고 괴팍하며 돈밖에 모르는 수전노의 전형을 보여준다. 특히 성탄절을 쓸 데 없이 돈을 쓰는 풍습이라며 경멸한다.
작품은 스크루지가 성탄절 직전 보여주는 차가운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는 조카의 저녁 초대를 거절하고, 소외된 사람을 도와줄 후원자를 찾던 방문객들을 쫓아낸다. 저임금에 시달리는 직원과 아동 노동자, 장애인에게도 인색하게 군다.
그런 스크루지는 한밤중에 쇠사슬에 묶인 모습으로 나타난 동업자 제이콥 말리의 유령으로부터 "선행을 베풀지 못하고 죽은 걸 후회한다"는 말을 듣게 된다. 이어 과거·현재·미래를 보여주는 성탄절의 세 유령을 차례로 만나게 된다.
과거의 유령은 방치와 유기, 그리고 가난의 불행한 어린 시절을 겪으면서 돈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변해간 스크루지의 과거를 보여준다. 현재의 유령은 스크루지가 주는 쥐꼬리 급여로 힘들게 살고 있는 직원과 병든 아이의 모습을, 미래의 유령은 앞으로 얼마나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것인지를 각각 보여준다. 세 유령을 만난 것을 계기로 자신을 진지하게 되돌아볼 기회를 얻은 스크루지는 진심으로 회개하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으로 작품은 마무리된다.

삐뚤어진 성격은 어려서 경험에 따른 트라우마와 방어기제
심리학 학술지 '사이콜로지 투데이(Psychology Today)' 등에 실린 논문들을 바탕으로 작품이 묘사하는 스크루지의 마음을 분석해보자. 그의 성격과 행동은 극도의 인색함, 사회적 고립 자초, 메마른 감정과 타인에 대한 공감 부족과 타인 착취 등이 특징이다. 이를 현대 정신의학과 심리학적으로 보면 '강박성 인격장애(OCPD)', '자기애적 성격장애', 외상후 분노장애, 우울증, 그리고 스트레스로 인한 일시적인 정신병적 환각 등으로 파악할 수 있다.
작품 중에서 과거의 유령이 보여준 내용을 보면 스크루지의 이런 성격은 어린 시절 혹독하고 가난한 삶과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경험에 따른 '트라우마'와 상실에 따른 '방어기제'로 볼 수 있다. '트라우마'와 '방어기제'는 스크루지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중요한 정신분석 개념들이다. 사람들을 공포에 질리게 하는 그의 잔혹함은 과거 어려서 받았던 고통, 특히 아버지의 방치가 가져온 트라우마에서 비롯한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그가 감정적으로 위축되고 돈에 집착하는 것은 어려서 겪었던 버림받음과 가난에 대한 '방어기제'로 볼 수 있다.
이는 자립심과 자기애, 그리고 타인의 감정적 고통에 대한 혐오라는 방어기제를 형성하면서 내성적이며 고독하고 타인에 대한 공감부족과 힘없는 사람에 대한 경멸로 이어진 것으로 해석된다. 과거의 억압된 고통과 원한이 현재의 괴팍한 성격과 행동의 뿌리인 셈이다.
인색함과 자기만 아는 공감능력 부족은 일종의 정신질환
스크루지가 보여주는 경직성, 꼼꼼함, 저장강박을 비롯한 돈에 물건에 대한 지나친 집착, 그리고 통제적 행동은 '강박적 성격장애(OCPD)'의 특징을 보여준다. 이러한 형식적 완벽주의와 질서 추구는 자신의 불안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수단으로 보인다.
스크루지는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이 부족한 것은 물론 사람과의 관계를 이익을 위한 도구적 관점에서만 바라본다. 이처럼 타인들과 정서적인 거리감을 보이는 것은 '자기애적 인격장애(NPD: 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와 반사회적 성향의 특징이다.
스크루지의 불행감과 우울함, 부정적인 것에 대한 집착(질병을 치료받지 못해 곧 죽을 운명에 처한 아이에 대한 막말 독백) 등은 우울증과 '외상후 울분장애(PTED: Post-Traumatic Embitterment Disorder)'로 파악할 수 있다. PTED는 부당함·배신 등을 경험한 뒤 오랫동안 분노·증오·울분이 지속돼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정신질환이다. 과거의 상처가 타인과 세상에 대한 원한과 격분으로 굳어진 상태다.
그런 스크루지가 성탄 직전에 동업자 말리의 유령과 과거·현재·미래의 유령을 각각 만나 자신이 살아왔던 방식에 도전을 받고 결국 심리적 변화를 겪은 뒤 삶의 방식을 바꾸게 됐다. 이는 프로이트가 말한 무의식의 상처와 융이 말한 그림자 자아를 드러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옹벽에 둘러싸인 스크루지의 성격은 과거의 심리적 상처를 발가벗기는 유령들에 의해 도전을 받게 되고, 자신의 잠재적인 죽음과도 마주하게 되면서 결국 심리적 변화로 이어진다.

스크루지의 병적인 행동은 정신건강과 치료가 필요
스크루지의 행동에선 프로이트의 개념인 '투영'과 '가학성', 그리고 반복적인 '강박'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불행을 타인에게 투영하고, 성탄절을 귀찮은 일, 남의 일로 여긴다. 그가 보여주는 타인에 대한 적대감은 내면의 고통에서 비롯된 가학적인 행동의 한 형태로 간주할 수 있다.
그가 만나는 유령들은 그로 하여금 무의식 세계를 마주해 과거의 경험을 곱씹게 하면서 자각을 얻도록 이끈다. 이는 프로이트가 제시한 '트라우마 재현'과 흡사하다.
결국 스크루지가 보인 일련의 '나쁜 사람' 증상은 정신질환의 일종으로 파악할 수 있다. 개인에 대한 비난보다 치료·관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누구나 조금씩 그런 증상을 갖고 있는 게 사실이다. 다만 이를 사회적인 규범을 통해 억제할 뿐이다. 스크루지처럼 증상이 심할 경우 정신건강과의 도움을 받아 해결할 필요가 있다.

채인택 의학저널리스트 tzschaeit@kormedi.com
채인택 의학 저널리스트 (tzschaeit@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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