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이 드리는 크리스마스 이야기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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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면서도 있는 그대로 복사하지 않는다.
문학은 이렇게 현실과 길항 관계를 맺으며 또 다른 현실을 상상하게 한다.
한겨레21이 2009년 "손바닥 하나로 다 가려질 정도로 작고 하찮아 보이는 노동자·민중의 이야기를 발굴한다"는 취지로 만든 손바닥문학상이 2025년으로 17년째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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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면서도 있는 그대로 복사하지 않는다. 현실의 관계를 낯설게 비틀어 통념을 전복하거나, 현실에서 보이지 않는 이들을 가시화하기도 하고, 해석이 어려운 인물을 앞세워 시스템에 균열 내기를 시도하기도 한다. 문학은 이렇게 현실과 길항 관계를 맺으며 또 다른 현실을 상상하게 한다.
한겨레21이 2009년 “손바닥 하나로 다 가려질 정도로 작고 하찮아 보이는 노동자·민중의 이야기를 발굴한다”는 취지로 만든 손바닥문학상이 2025년으로 17년째를 맞이했다. 이번 손바닥에는 283편의 글이 도착했다. 역대 최대다. 이 작품들을 한겨레21 기자들이 20~25편씩 나눠 읽고 1차 심사를 한 뒤 21편을 뽑아 세 명의 심사위원(서윤빈·성해나 소설가, 은유 작가)에게 최종 심사를 맡겼다. 그렇게 대상 1편과 우수상 2편을 선정했는데, 그제야 세 수상자가 누군지 확인하는 과정에서 놀라운 일이 생겼다.
대상 수상자가 한겨레21 ‘무적의 글쓰기’ 연재가 한창이던 2024년 5월 첫 번째 독자 투고자로 선정된 ‘김영희’님이었다.(제1513호 참조) 영희님은 당시 자신의 글이 실린 한겨레21을 받아들고 “매끄러운 종이에 인쇄된 활자를 만져보고, 냄새 맡고, 읽고 또 읽어봤습니다. 창피하지만 점심시간에 아무도 없는 휴게실에 들어가 조금 울고 말았습니다”라는 글을 보내왔다.
그리고 2025년 6월엔 에스피씨(SPC)삼립 제빵공장 노동자의 끼임 사망 사고를 아파하며 ‘이상하다, 빵에서 자꾸 피 맛이 난다? 피,자빵도 아닌데’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을 보내왔다.(제1568호 참조) 이 글을 읽은 뒤 영희님이 한겨레21에 정기 기고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2025년 11월부터 ‘노 땡큐!’에 4주에 한 번 기고하고 있다.(제1590호 참조) 그게 이번호에 영희님의 손바닥문학상 대상 수상작과 수상 소감, 그리고 ‘노 땡큐!’ 글이 함께 실리게 된 까닭이다.(결단코 수상작 선정 전까지 수상자가 누군지 몰랐다.)
대상 수상작인 ‘숨은 글자들’은 불행한 사고로 남편이자 아들을 잃은 이주민 식부 케일라와 해녀 시모 귀남이 고단한 상황에서도 모르는 것을 서로 배워가며 연대하는 관계를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섬세한 표현과 오밀조밀한 묘사로 소복이 담아낸 소설이다. “인물의 낙관과 온기”(성해나)를 바탕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이주민 식부와 정주민 시모의 ‘일반적’ 권력 관계를 따뜻하게 비틀었다. 우수상 수상작인 ‘클럽 273의 드랙퀸 김동‘수’’(조혜림)는 “특수청소부이자 드랙퀸이라는 이중의 소수자성을 지닌 인물”(서윤빈)을 우리 앞에 전면화하면서 “공동체의 범위를 확장”(은유)해준 작품이다. 또 다른 우수상 수상작인 ‘기호수 K’(유미연)는 한국 사회의 “온갖 모순과 부조리가 흘러드는 곳”인 편의점을 배경으로 “가장 약한 사람에게 가장 많이 부과되는 역할노동의 경계에 질문을 던진”(은유) ‘바틀비적’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이 모든 이야기가 독자 여러분께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다가갈 수 있으면 좋겠다. 쿠팡의 창업자가 편리함을 보고 모여든 소비자 수를 권력 삼아 제멋대로인 세상을 만들려는 이때, 현실을 비튼 이 이야기들이 시민의 마음을 일깨우는 도구가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더했다.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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