⑦ “‘눈에 보이는’ 선배 되겠다, 나를 뛰어 넘도록” … 김유정 축구심판 [플랫][여자, 언니, 선배들]

김서영 기자 2025. 12. 24.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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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축구심판이 레드카드를 들고 있다. 정효진 기자
소녀는 언니를 보고 자랍니다. 여기 선배가 된 언니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분야에서 이정표이자 버팀목이 되는 [여자, 언니, 선배들]의 일·커리어 이야기를 플랫이 전달합니다.
“월드컵이나 올림픽도 다녀온 ‘눈에 보이는’ 선배가 되고 싶어요. 후배들이 개척한다기보다는 수월하게, 제가 간 것보다 더 뛰어넘을 수 있게 해주고 싶습니다.”

김유정 축구심판(36)은 올해 ‘역대급’으로 바쁜 한 해를 보냈다. 해외에서 보낸 날이 무려 230일에 달한다. 대부분 경기 심판을 보는 일정이었다. 경향신문 여성 서사 아카이브 플랫은 지난 16일 경기도 고양시에서 마침 한국에 들어와 있던 김유정 심판을 인터뷰했다. 그가 꺼낸 레드카드와 옐로카드에는 경기 중 메모했던 기록이 아직 남아 있었다.

김유정 심판은 2018년 국제축구연맹(FIFA) 소속 국제 심판으로 이름을 올렸다. 그 이후 커리어에는 ‘최초’가 종종 붙는다. 2022년 한국 여자 심판 중 처음으로 알가르브컵 결승전 주심을 맡았고, 지난 4월 여자 심판 사상 처음으로 아시아축구연맹(AFC) 남자 U-17 아시안컵 결승에 투입됐다. 내년 1월 AFC 남자 U-23 아시안컵에도 한국 여자 심판 최초로 배정받았다. 이 대회 심판 중 여성은 김유정 심판 뿐이기도 하다. 2024 파리올림픽에서는 축구 종목 주심 21명 중 1인으로 뽑혔다.

김연서 심판의 레드카드와 옐로카드. 경기 중 메모한 기록이 남아있다.

그는 초등학교 6학년 때 학생선수로 축구계에 입문했다. ‘여자가 축구를 한다’는 그림이 지금만큼은 잘 그려지지 않던 시절, 부모님의 우려를 단식투쟁으로 뚫고 공을 차기 시작했다. 대학 시절 잦은 부상으로 고민에 빠진 후 “유니폼을 입고 선수들과 뛰는 일”을 찾다가 발견한 것이 심판이다. 차근차근 무대를 넓혀가며 뛰다 보니 벌써 16년 차가 됐다. 김유정 심판은 “체력뿐만 아니라 ‘축구이해(Football Understanding)’가 심판의 필수 자질”이라고 강조했다. 그 자신도 현대 축구 전술과 트렌드, 선수와 팀, 축구 그 자체를 모두 이해하는 “육각형” 심판이 되려고 노력한다.

한편으로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축구를 더 발전시킬 방법을 고민한다. 심판으로 유입된 이들을 계속 남게 하는 것, 자신이 배운 것을 후배들에게 나누는 것 등이다. 김유정 심판은 축구 심판이 되려는 이들에게 “(축구의) 꿈을 이루고자 한다면 지금도 늦지 않았다. 축구 이해를 통해 경기를 보는 눈이 생기면 축구가 훨씬 재밌어진다”고 조언했다.

뛰어들다: 축구가 좋아 단식투쟁한 딸
김유정 심판.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

- 어떤 계기로 축구에 소질이 있는 걸 알게 됐나요?

“학교 마치고 남자애들이랑 축구를 한두 시간씩 하고 집에 가곤 했어요. 여자애는 항상 저 혼자였지요. 그날에도 어김없이 축구를 하고 있었는데 축구부 감독님이 와보라고 하셨어요. ‘축구할래?’ 해서 뭔지도 모르고 ‘네!’ 했죠. 감독님이 집에 찾아오셨는데 완전히 문전박대를 당했습니다. 무슨 딸이 축구냐 싶으셨던 거죠.”

- 아무래도 여자 축구를 향한 인식이 지금만큼은 아니어서 그러셨나요.

“지금은 ‘골때녀’ 등이 유명세를 타지만 당시에는 생소했죠. 오빠가 축구부를 1년 했었는데 (기껏) 아들을 그만두게 했는데 다시 딸이 한다고 하니까 더 싫으셨던 것 같아요. 엄마가 끝까지 안 된다고 반대하셨어요. 그런데 제가 좀 잘 먹거든요. 한 일주일 단식했어요. 축구 시켜달라고. 정말 하고 싶은데 못 하게 하니까 밥맛이 없어지고 기운이 빠져서 시름시름 앓았나 봐요. 그때 엄마가 ‘그렇게 좋으면 해라’ 하셨어요. 초등학교 때까지만 시켜보자 해서 6학년 1학기 말쯤 시작하게 됐습니다. 하다 보니 자연스레 중·고등학교에서도 하고 학생선수가 됐죠.”

- 요즘은 6학년은 좀 늦은 시작이라고 보는 편인데 그때는 어땠나요?

“그때 기준으로도 늦은 거죠. 6학년에 하다 보니 팀의 베스트 11명은 정해져 있었어요. 그러니까 저는 처음부터 후보선수였고 졸업도 후보선수로 했습니다. 정말 선수를 하고 싶다면 초등학교 4학년부터는 해야 기본기를 1~2년 닦고 6학년 때쯤은 핵심 선수가 돼서 경기에 나가는 것이 보통입니다.”

- 중·고등학교 축구팀에서는 어땠나요?

“저만 초등학교 경력을 가지고 올라갔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중학교부터 시작한 언니들도 있었거든요. 초등학교 때는 남자애들과 몇 년 차이가 났지만 중학교에 가서는 그런 걸 느끼지 않았어요. 뭘 해도 제가 더 잘하는 것 같았죠. 중학교 때는 멋모르고 계속 축구만 해서 몰랐는데 고등학교 올라가서는 시합 갔다 오면 축하를 많이 받았어요. 우승·준우승도 해서 학교의 자랑이었죠.”

발견하다: 유니폼 입고 필드를 뛰는 또 다른 존재, 축구심판
김유정 축구심판이 16일 경기도 한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기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 그러다 부상으로 선수 생활을 그만두셨는데, 어느 정도의 부상이었나요?

“고2 때부터 계속 부상-재활-복귀를 반복했습니다. 수비형 미드필더 포지션이었기 때문에 피지컬 콘택트(육체적 부딪힘)도 제일 많았고 저도 몸싸움을 피하지 않았던 스타일이었거든요. 고2 때 경기 중 쇄골이 부러진 뒤로 다시 또 쇄골 부상, 발가락뼈 골절을 당하고 복귀했어요. 마지막으로 무릎 연골이 찢어지는 부상을 입어서 퍼포먼스도 안 올라오고 그래서 대학교 2학년 때 그만뒀습니다.”

- 언제쯤 심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나요?

“그만두고 1~2달 노니까 축구를 너무 하고 싶었어요. 엄마한테 ‘다시 축구 하겠다’고 말씀드렸더니 한숨을 쉬시더니 ‘그래, 원하면 해’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그 짧은 대답 한마디에 다시는 엄마 앞에서 축구를 한다고 하면 안 되겠다고 느꼈어요. 부상을 당해 실려 나가는 걸 엄마가 직접 보시기도 했고 우시기도 했거든요. 근무 중에 전화가 오면 엄마 심장이 ‘쿵’ 하고 내려왔대요. 제가 다쳤다는 전화일까 봐. 거기서 이제 해방됐는데 갑자기 다시 축구를 한다고 하니까, ‘엄마는 너무 불안하고 힘들지만 하고 싶으면 해라’ 이런 게 너무 느껴졌어요. 그래서 ‘아니야, 안 할게’ 하고 고민을 했죠. 선수랑 같이 뛰는 일이 뭐가 있을까. ‘아, 심판이 유니폼 입고 같이 뛰더라’ 하고 강습을 찾아보고 심판 자격증을 땄어요. 그만큼 운동장을 너무 뛰고 싶었어요. 대학교 3학년 3월에 땄으니 벌써 16년 차 경력이 됐습니다.”

- 국제 대회에서 심판으로 뛰려면 어떤 절차와 자격이 필요한가요?

“한국에서 1급 2년 차가 되면 국제 심판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생깁니다. 여자 심판 기준으로 부심 4명·주심 4명 T.O가 있어요. 그렇게 국제 심판이 되면 아시아축구연맹(AFC)이나 국제축구연맹(FIFA) 대회를 갈 수 있습니다. 그 대회에서 평가를 받지요. 평가 항목은 공개된 건 아니고 내부적으로 연령별 대회를 보내보고 또 추천해서 내보내고 하는 식입니다. 그렇게 한 사람의 국제 심판이 크는 것이죠.”

- 생각보다 T.O가 적네요.

“(기존 심판이) 은퇴를 하지 않는 이상 T.O가 안 나서 운과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그 시점의 퍼포먼스와 몸 관리는 기본이고 부상도 없어야 하죠. 10년 전과 비교하면 여자 축구 대회가 정말 많아졌는데 T.O는 그대로라서 늘려야 될 필요성을 어필하고 있습니다.”

- 선수 출신 심판이 일반적인가요?

“많지 않습니다. 제가 운동할 때도 그랬는데, 보통은 ‘운동 그만두면 지도자 해야지’하거든요. 심판이 선수한테 욕먹는 걸 계속 경험하면서 성장하기 때문에 이미지가 아무래도 그렇습니다. 또 선수는 주목과 응원을 많이 받는데 심판은 조용히 사라지거든요. 선수들이 그런 부분에도 거부감이 좀 있는 것 같습니다.”

깊어지다: 심판의 고민과 자질…‘축구 이해’로 나아가기
2022년 U-20 여성 월드컵, 스페인과 멕시코의 8강전 주심으로 동전 토스를 하는 김유정 심판.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

- 그랬는데 심판이 돼 보니 어땠나요?

“처음에는 그 욕먹는 것도 며칠씩 기억에 남는 상처가 됐습니다. 심판은 못 하고 욕먹는 게 아니라 최선을 다해서 욕먹는 측면이 있거든요. 두 팀 모두 이기고 싶으니 판정하는 사람에게 비난의 화살이 오기도 하는 것 같아요. 한번은 WK리그에서 친한 (선수) 친구들도 마주쳐서 경기 전에는 서로 반가워했는데 경기 끝나니 눈길도 안 주더라고요. ‘내가 심판이라 어쩔 수 없구나’ 싶었습니다. 너는 선수고 나는 심판, 같이 여자 축구 발전을 위해 뛰지만 서로 현역인 이상 이 선수들에게 어떠한 감정도 느끼지 말자고 다짐했어요.”

- 앞서 심판을 평가하는 구체적인 항목이 알려지지 않다고 했는데요. 일반적으로 어떤 심판이 좋은 평가를 받나요?

“첫 번째로는 큰 오심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오심했다는 것 자체가 심판이 잘못 봤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는 젊은 세대를 키운다는 측면에서 장래성을 봅니다. 퍼포먼스, 체력, 현대 축구에 대한 이해 등 심판으로서의 능력을 보는 것이죠.”

- ‘축구 이해’라는 것은 어떤 개념인가요?

“FIFA는 ‘축구 이해(Football understanding)’를 중시해요. 규칙서에 있는 원칙만으로 경기를 보는 것이 아니고 경기 흐름과 분위기를 잘 알아내서 융통성 있게 하는 것이죠. 축구는 사람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융통성을 부릴 수 있는 충분한 선에서 운영하려면 축구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축구 자체에 대한 이해뿐만 아니라 선수와 팀에 관한 전략적인 이해가 있어야 하죠. 그것을 전부 축구 이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손흥민 선수는 주력이 빠르니 빈 공간에 두세 발 먼저 가 있는 것, 특정 팀은 짧게 짧게 패스하니 패스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부딪힘을 잡아주는 것, 흥분하는 기질의 선수가 있으면 그가 폭발하지 않게끔 미리 자제시키는 것 등이 심판의 축구 이해도입니다.”

- 오심에 관해선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임하나요?

“팀과 선수들도 오심을 정말 싫어하겠지만 누구보다도 제가 가슴이 아픕니다. 내가 왜 그렇게 봤을까, 왜 그걸 놓쳤을까…. 계속 생각나고 수백 번 돌려봐서 머릿속에 남아요. 어쨌든 벌어진 일이고 경기가 끝나면 바꿀 수 없는 것이 스포츠의 세계이니 털고 이겨내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실수를 줄여나가는 것이 심판들의 목표지요. ‘잘한 판정’은 없다고 생각해요. 심판으로서 그건 당연하니까요.”

- 심판이 선수보다 더 많이 뛴다는 이야기도 있는데요. 정말 그런지 궁금합니다.

“심판보다 많이 뛰는 선수는 있겠지만 평균적으로는 심판이 더 뛰는 것 같습니다. 심판과 제일 많이 겹치는 포지션이 미드필더라서 미드필더 선수들은 비슷할 것 같고요. 축구와 육상이 섞인 느낌이죠. 마라톤이나 단거리 육상처럼 쭉 뛰는 것도 아니고 가속·감속, 방향 전환 등도 필요하니까요. 그렇지만 잘 뛰는 것보다는 축구 이해가 먼저입니다.”

빛나다: 국제경기를 달리는 한국 여자 심판
김유정 축구심판이 16일 경기도 한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 올해 해외에는 며칠이나 머물렀나요?

“올해가 역대급이었어요. 세보니 230일 외국에 있었더라고요. 평균적으로 100일이었는데, 지난해 대비 제 배정이 3배 정도 늘었어요. 올해 남자 경기 국제 심판 체력테스트를 통과해서 더 많이 배정받은 것 같아요. 카타르, 호주, 사우디아라비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태국, 아랍에미리트(UAE), 미얀마 등을 다녀왔습니다. 내년 1월에는 AFC 남자 U-23 아시안컵 본선에 가요. 저도 남자 U-23 대회는 처음이고 한국 여자 심판은 최초 배정이라고 하더라고요. AFC 안에서도 여자 심판은 저뿐입니다.”

- 심판 커리어에서 기억에 남는 경기는 무엇인가요?

“첫 번째로는 2022년 알가르브컵(매년 포르투갈 알가르브에서 열리는 국제 여자 축구 대회로 ‘미니 월드컵’으로도 불림) 결승전 주심을 봤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인도에서 열린 AFC 여자 아시안컵을 끝내고 포르투갈로 넘어가는 일정이었는데 코로나19 양성이 나왔어요. 호텔에 있는 일주일 동안 방으로 실내자전거와 훈련 프로그램을 올려주면서 타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하고 나와서 한 게임을 봤고 좋은 평을 받아서 결승전까지 봤습니다. 아직 경험이 많이 없던 시절인데도 기회를 준 것이 감사했습니다. 그 경기를 마치고 ‘내가 여태까지 해왔던 게 틀리지 않았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전까지는 이런저런 말에 ‘나는 자질이 없나?’ 끊임없이 의심했었거든요. (알가르브컵 결승전 주심으로) 아시아 여자 심판이 배정된 건 제가 세 번째였고 한국 여자 심판 중에선 최초였습니다. 자신감을 얻은 계기였죠.

두 번째로는 2024 파리 올림픽에서 예선 2경기를 봤던 것인데요. 3일 간격으로 하느라 체력적으로 걱정을 많이 했는데 강사와 평가관이 잘했다고 하면서 부상 선수에게 너무 가까이 가지 말라고만 언급하더라고요. 피드백은 그것밖에 없다고, 정말 잘했다고 하는데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것 같아 무척 힘이 됐습니다.”

김유정 심판(왼쪽에서 두번째)이 2024 파리올림픽 남자축구 도미니카공화국과 우즈베키스탄의 경기에 배정된 심판진과 함께 기념촬영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

- 그런 디테일까지 신경을 써야 하는군요.

“중계 카메라에 굳이 부상선수와 심판이 함께 잡힐 필요가 없으니까요. 저도 디테일하게 하려고 노력해요. 예를 들면 공(공식 경기구)을 놓을 때 딱 메인 스폰서가 보이게 놔줘요. 올라갈수록 디테일과 기본에 충실해야 하더라고요.”

- 남자 경기를 맡는 때 특별히 준비하거나 대비해야 하는 부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머리를 많이 써야 하고, 선수들보다도 제 축구 수준이 더 높아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남자 축구는 스피드가 빠르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더 많이 준비하려고 합니다. 심판으로서 경험이 쌓이다 보니 지름길 더 빠르게 진입하고 페널티 에어리어 쪽에도 더 가까이 가려고 합니다. 또 남자 축구는 사소한 충돌에는 넘어지지 않기 때문에 그보다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쪽으로 미리 가 있죠. 그리고 제가 남자 선수들보다는 키가 작으니 너무 가까이 가지 않으면서도 단호히 제어하는 걸 많이 준비합니다. ‘내가 너 카드 주고 보내겠다’는 표정, 눈빛, 제스처 하나도 강하게 준비하고 가죠. 선수들 생년월일도 보고 갑니다. 이제 어느 리그를 가도 저보다 어린 선수들이기 때문에 자신감도 얻고 정신무장을 하려고요.”

- 나이와 경력이 쌓이면서 마음이 편해지는 모습이네요.

“30대 초반보다는 좀 더 능구렁이처럼 선수들 어필에 대처도 하고 위기를 관리하게 됐어요. 사실 레드카드를 내는 게 능사는 아니거든요. 팬들은 11:10보단 11:11 축구를 원하잖아요. 좋은 축구 경기를 팬들에게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그런 것(선수 퇴장)도 예방해야죠. FIFA가 이런 철학으로 교육을 많이 해요.”

- 심판이 된 후에 어떤 식으로 계속 공부해야 하나요?

“제가 축구를 하던 시절엔 배우지 않았던 기술을 요즘 선수들이 하거든요. 분명 파울은 아닌데 생소하죠. 이런 플레이도 공부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꼭 축구 규칙이나 심판 공부라기보다는 축구 트렌드, 전술 변화나 세트피스 같은 것도 공부해야 좋은 심판이 되는 것 같아요. 또 가끔 축구를 직접 하면 선수의 처지도 이해가 가요. 지도자를 하면서(김유정 심판은 전북 유나이티드 위민스 감독이다) 벤치 입장도 느끼고요. 다양한 역할을 경험해보는 게 도움이 됩니다.”

체감하다: 축구 관심은 높아졌지만…심판 처우 개선은 ‘고민’

- 여러 예능이나 유튜브 덕분에 여자 축구를 향한 관심도 커지고 있는데요. 어떻게 체감하나요?

“아직은 심판으로 온다거나 (선수로) 더 성장한다거나 하는 변화는 크게 없지만 유입은 많이 되는 것 같아요. (자생적인) 여자 축구 리그, 팀과 일반인 레슨도 늘어났어요. <골때녀> 분 중 원더걸스 유빈을 포함해 두 분이 심판 자격증을 따셨더라고요. 그렇게 (유입된 사람들) 한 명 한 명이 심판을 한다면 처우가 당장 개선되지 않더라도 더 관심이 생기지 않을까요.”

김유정 심판이 전주시여학생FC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 처우라는 건 어떤 측면을 의미하나요?

“심판은 프리랜서 개념이라 근무환경이 고정되지 않고 수당을 받는 구조입니다. 한 경기를 위해 체력과 전문성이 많이 필요하고, 판정의 무게를 고려하면 수당이 아쉽죠. 그래서 유입이 된다고 하더라도 처우가 뒷받침되지 않으니 더 성장하지 못한 채 떠나고, 버티고 버틴 사람들만 남는 것 같아요. K리그는 주말에 하니 주중에 다른 일을 하는 심판도 나올 수 있는데 WK리그는 평일에 해서 심판들이 직장을 못 잡는 구조예요. 요즘 세대는 투잡, 쓰리잡도 병행하려고 하는데 (심판일에) ‘올인’해야 하는 구조 속에서 수당 10만~20만원으로는 못 버티죠. 경험치가 쌓여서 베테랑이 되려고 할 때쯤 없어져요. 그러면 경험치가 낮은 심판만 남는 악순환이 됩니다.”

- 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어떤 편인가요?

“수당제 구조 자체는 비슷하지만 (일부 국가는) 투잡, 쓰리잡 구조가 돼 있어요. 예를 들어 호주 여자 리그는 주말에 경기하니까 심판이 주중엔 직업을 가져요. 경찰, 교사, 변호사 심판도 있어요. WK리그는 평일에 해서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없는 점이 아쉬워요. 심판만을 직업으로 하기에는 너무 힘들죠(김유정 심판도 한때 방과 후 강사 등을 병행했다).”

- 경력에 비례해 몸값이 오르는 구조가 아니라고 이해됩니다.

“심판 급수나 경력이 올라가도 수당이 올라가는 건 아니고 경기와 리그의 수당이 다른 것입니다. 급수를 올리면서 들어갈 수 있는 경기가 올라가는 거지 내 몸값을 올려서 가는 건 아니죠. 그러니 프로리그 1년 차와 20년 차가 같은 경기를 뛰면 받는 건 똑같아요. 1년 차 심판이 젊은 체력으로 10경기를 뛰고 20년 차 심판이 그보다 적게 뛴다면 20년 차가 1년 차보다 덜 버는 구조입니다.”

꿈꾸다: 후배들은 더 멀리 가길…축구 인생, 남은 목표는
김유정 축구심판이 16일 경기도 한 카페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기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효진 기자

- 영향을 준 여자 선배가 있나요?

“(세대에) 틈이 있습니다. 홍은아 선배님 이후 제가 올림픽에 간 게 12년 만이니까요. 그 전 선배 언니들이 만약 (국제 대회를) 가셨다 하더라도 제가 워낙 어려서 아무것도 모를 때였을 거예요. 대가 쭉쭉 이어나가야 하는데 끊긴 느낌이 있죠. 제가 나중에 이끌어주고 조언을 해줄 후배가 있으면 좋겠어요.”

- 어떤 선배가 되고 싶나요?

“월드컵이나 올림픽도 다녀온 ‘눈에 보이는’ 선배가 되고 싶어요. 후배들이 개척한다기보다는 수월하게, 제가 간 것보다 더 뛰어넘을 수 있게 해주고 싶습니다. 후배들이 해외에 갔을 때 ‘한국의 유정 킴은 좋은 심판이었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뿌듯해하고, 또 그런 선배가 있었기 때문에 그 후배도 좋은 심판이 되겠다는 (좋은) 선입견도 씌워졌으면 좋겠습니다.”

- 축구 심판을 꿈꾸는 여성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가요?

“어릴 때 운동을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여성들이 정말 많아요. 선수로 뛰진 못했지만 꿈을 이루고자 한다면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심판 급수를 차근차근 쌓으면 유니폼 입고 선수들과 뛸 기회가 무궁무진합니다. 선수들이 내 휘슬에 멈추거나 시작하는 데서 오는 쾌감도 있고요. 또 축구 이해를 통해 경기를 보는 눈이 생기면 축구가 훨씬 재밌어져요. 그것 때문에라도 축구 심판에 도전해 봤으면 좋겠어요.”

- 다음 목표는 무엇인가요?

“첫 번째 목표는 2027년 FIFA 브라질 여자 월드컵에 가서 월드컵 경기를 주심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다음 목표는 AFC 남자 클럽 챔피언스리그와 AFC 남자 아시안컵이고요. 여기까지 가면 심판으로서는 다 이뤘다 싶습니다. 심판 이후엔 FIFA 강사가 되고 싶어요. 운과 타이밍이 좋았던 덕에 국제 심판이 됐고 여기까지 왔기 때문에 제가 받은 것들을 돌려주고 나눠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험을 후배들에게 나눠야 더 좋은 후배, 더 좋은 심판이 나오니까요.”

- 축구 얘기를 해서 그런지 눈이 계속 빛나세요.

“축구가 없었다면 제 인생이 뭐였을까 생각이 들어요. 축구가 먹여 살려 주고 있잖아요. 그러니 축구가 발전해야죠. 재미있잖아요.”

▼ 김서영 기자 westzero@khan.kr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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