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미맘’을 보며, 미완의 거장에게 기대하는 그릇 [콘텐츠의 순간들]

복길 2025. 12. 24.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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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지는 단연 올해의 코미디언으로 꼽을 만한 인물이다. 그의 인간 군상 묘사는 찬탄과 함께 논란을 부른다. 이수지가 자신의 부캐가 처한 맥락도 살펴보길 바란다.
지난 5월5일, 코미디언 이수지씨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61회 백상예술대상 레드카펫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연합뉴스

내가 처음 흉내 낸 사람을 떠올리는 중이다. ‘모험’을 ‘모흠’이라 발음했던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이었다. 코를 벌름거리며 ‘톰 소여의 모흠!’을 외치면, 친구들이 ‘흠! 흠!’ 하고 코러스를 넣었다. 경상도에서 ‘험’을 ‘흠’이라 읽는 건 별난 일이 아니었는데도, 왜 그런지 나는 학기 내내 선생님의 ‘흠’을 지독하게 놀려댔다. 선생님을 괴롭히려던 건 아니었다. 풍자할 마음도 없었다. 나는 그저 ‘흠’ 할 때 뿜는 콧김으로 친구들을 웃게 만들고 싶었을 뿐이다. 누군가 나의 흉내에서 교권 침해나 사투리 이용자에 대한 조롱을 읽는다 해도 대답은 변함없을 것이다. ‘오직 웃음만 생각했습니다.’ 희화화 논란에 대처하는 한국 코미디언의 자세로···.

‘올해의 인물’을 뽑는 시즌이 돌아왔다. 다른 분야는 모르겠지만 ‘올해의 코미디언’만은 그 특성상 한 해 가장 많은 논쟁거리를 만든 인물에게 주어질 수도 있다. 현상을 비틀어 웃음을 주는 풍자가 간혹 조롱과 해학의 경계를 오가기 때문이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2025년이란 숫자 아래 새길 수 있는 코미디언의 이름은 단 하나, ‘이수지’뿐이다.

공개 코미디 시절에는 과장, 왜곡, 슬랩스틱이 중요했다. 유튜브를 중심으로 재편된 현재의 한국 코미디에서는, 이전까지 두드러지지 않았던 평범한 인간 군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방식이 더 인기다. 이미 12년 전 조선족 보이스피싱 사기범 ‘린쟈오밍’ 역할로 데뷔한 이수지는 변화한 매체 환경에서 물 만난 물고기가 되었다. 집요한 관찰력과 섬세한 연기력을 무기로 올 한 해에만 열 개가 넘는 굵직한 ‘부캐’들과 그들이 등장하는 시리즈 수십 개를 세상에 쏟아냈다.

히트작은 다채로우면서도 하나하나 묵직하다. 악플을 받으면 ‘IQ’를 추적해 고소할 거라고 말하는 인플루언서 ‘슈블리맘’, 고객에게 친절히 시술을 권유하며 무례한 ‘얼평’을 남발하는 ‘스마일 피부과 상담실장’, 특정 명품을 고집하며 자녀의 사교육에 열을 올리는 ‘제이미맘’, 특별한 이벤트 없이 고상하고 여유로운 자신의 하루를 브이로그로 만드는 ‘여배우 안나’, 제멋대로 점을 치고 엉터리 상담을 해주는 가짜 무당 ‘북한산 백두장군’···.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풍성한 ‘부캐’ 라인업은 성실성으로나 완결성으로나 모두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인기와 함께 논란도 뒤따랐다. 이수지의 시작점인 ‘린쟈오밍’이 그랬던 것처럼, 그가 흉내 내는 캐릭터들은 주로 권력의 중심에서 먼 사회 주변부의 인물이거나, 이미 손쉽게 혐오의 대상이 되곤 하는 존재들이다. 묘사가 집요해질수록 ‘일반화’ ‘희화화’ ‘조롱’이라는 부정적 평가 또한 올해 내내 따라다녔다. ‘제이미맘’은 그중에서도 가장 논쟁적인 캐릭터다. 몽클레르 패딩을 입고, 샤넬 가방을 들고, 포르쉐로 ‘사교육 등원 라이딩’을 하는 ‘제이미맘’은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 쓰는 고상한 말투로 아이의 ‘천재 모먼트’를 설명하는 극성 엄마다. 영상이 화제가 된 뒤 서울 대치동 일대의 ‘몽클레르 패딩’이 대거 중고시장 매물로 올라왔다는 소문이 돌 만큼 ‘제이미맘’은 ‘대치동 엄마’라는 그룹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는 평을 받았다. 그의 연기가 ‘기형적인 사교육 시장에 대한 우아한 풍자’라는 찬탄과 ‘사교육 시장의 또 다른 피해자인 젊은 엄마들에 대한 조롱’이라는 비판이 충돌했다.

코미디가 혐오적 관습과 만났을 때

딱 잘라 말하기 쉬운 논쟁은 아니다. 풍자의 화살이 강자를 향해야 한다는 당위는 타당하다. 그러나 개별 사례를 판단할 때는 ‘누가 강자이며, 누가 약자인가’라는 질문에 가로막히곤 한다. 특히 ‘제이미맘’처럼 정체성을 쉽게 규정할 수 없는 논쟁적 캐릭터의 경우, 그가 풍자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를 심판하는 일은 더욱 어려워진다. 계급 재생산을 위해 교육 시장의 질서를 교란하는 ‘제이미맘’은 풍자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남편 돈으로 사치 부리는 허영심 많은 전업주부’라는 조롱에 갇히고 만 ‘제이미맘’을 보며 웃고 난 한편에 찜찜한 마음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자신의 유튜브에서 대치동 엄마 ‘제이미맘’을 연기한 이수지씨. ⓒ유튜브 채널 ‘핫이슈지’ 갈무리

학원가로 자녀를 데려다준다는 사실 때문에 배우 한가인에게 쏟아졌던 일부 대중의 ‘제이미맘’ 공격에서 볼 수 있듯, 코미디에 대한 이러한 반응은 자녀 교육의 책임을 오직 엄마에게만 전가해온 ‘맘충’이라는 혐오적 관습과 만난다. 과도한 입시 경쟁 속에서 엄마들 역시 그 시스템의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미디어는 쉽사리 그들을 사교육 시장을 주도하는 ‘가해자’로 그린다. 이수지의 탁월한 연기는, 사람들이 이들이 처한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마음껏 비웃을 명분을 제공한다. 이 지점에서 볼 때 그의 코미디에 환호하는 동력 일부는 우려스러운 면이 있다. ‘풍자’와 ‘조롱’을 구분할 충분한 내러티브를 제공하지 않는 한국 코미디 문화와, 그 코미디가 다루는 대상의 외형에만 집착하는 공론장의 병폐가 드러난 전형적인 사례다.

‘제이미맘’ 논란 후 이수지는 한 인터뷰에서 “정제할 것이 많아지면 웃음은 옅어질 수밖에 없다”라고 토로했다. 코미디언들이 흔히 말하는 딜레마다. ‘캔슬 컬처’ 시대에 코미디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일지 상상한다면 일견 그의 말에 공감하게 된다. 하지만 동시에 그가 말하는 ‘정제’의 정의가 궁금했다. 만약 그가 ‘흉내 내기 좋은 사람’을 대상화한다면, 그들이 둘러싸인 사회적 맥락을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정치적 견해를 갖는 것은 가장 기초적인 정제일 것이다. 이 과정은 금기가 아닌 질문을 만들 수 있다. 린쟈오밍은 왜 보이스피싱 사기범이 되었을까? 여배우 안나는 왜 연기를 하지 않고 브이로그를 찍게 되었을까? ‘제이미맘’은 왜 ‘이소담’이라는 본인의 이름을 쓰지 않을까? 이수지의 비상함을 사랑하는 대중으로서, 나는 그가 자신이 만든 수많은 ‘부캐’들과 좀 더 깊이 있는 관계를 맺길 바란다. 그가 가진 재능의 그릇은 그것을 모두 담고도 넉넉할 것이기에.

복길 (자유기고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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