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법관 독립·양심 훼손하며 정치색…지금이라도 결자해지해야”

침묵은 권력의 언어다. 비판이 쏟아진다고 움찔한다면 권력이 아니다. 진짜 권력은 행동으로 말한다. 해명과 방어는 주변에서 대신 해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공직선거법 사건 파기환송 판결 이후 조희대 대법원장의 행태가 정확히 이러하다. 도저히 풀리지 않는 의구심과 질문이 조 원장의 굳게 다문 입 앞에서 날개 없이 추락했다. 조 원장에게 답변을 요구하는 국민은 바위에 부딪히는 달걀 같은 신세였다.
김도균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도 마치 달걀 같은 심정으로 조 원장에게 질문을 반복했지만, 조 원장은 대답 대신 실력 행사에 나섰다. 전국의 법원장들을 모아 여당을 비판하며 화살을 돌렸다. 법관대표들마저 조 원장의 성동격서에 가세했다. 누군가는 사태의 본질을 직시하자고 말해야 했다. 김 판사가 현직 부장판사 신분으로는 드물게 언론 인터뷰에 나선 이유일 것이다. 지난 17일 부산지법에서 김 판사를 만났고, 진전된 상황을 메신저로 업데이트했다.
계엄 당일 대법원, 신중 핑계로 비겁
“2024년 12월 3일 그날, 분노와 불안, 당혹과 희망으로 뒤섞여 밤늦도록 텔레비전 앞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관계만을 놓고 보더라도, 계엄을 기도한 자들은 국민으로부터 주권을 빼앗아 전제정, 심지어 왕정을 꿈꿨던 것으로 보입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역모이고 국민에 대한 반역이며 모든 국민이 피해자인 사건입니다. 더구나 계엄 실황이 대통령의 입을 통해 실시간으로 생중계됐습니다. 모든 국민이 증인이자 증거가 명백한 사건인데도 형사재판은 여전히 1심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민이 납득할 수 있겠습니까? 이미 큰 실망을 드린 상황입니다. 법원은 계엄 당일 삼권분립의 한 축으로서 계엄의 위헌·위법을 신속히 선언하고 민주주의와 시민의 인권을 보호할 헌법적 책무를 수행하지 못한 원죄가 있습니다. 신중을 핑계로 비겁하게 행동했습니다. 그 빈자리는 오로지 맨손으로 총에 맞선 시민들이 메웠습니다. 그 덕분에 계엄군의 통제를 받지 않고 편안하게 계엄사건을 재판할 수 있게 되었음에도, 오히려 터무니없는 법리를 들이대며 계엄 수괴를 석방하거나 통상적이지 않은 이유로 영장을 기각하는 등 계엄세력을 두둔하는 듯한 모습마저 보였습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또한 법원 구성원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독재권력 도구, 검찰 영장 자판기
“참으로 뼈아픈 질문입니다. 심각한 위기라는 데 충분히 공감합니다. 최근 문제된 사건들이 아니더라도, 법원은 권력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오랜 기간 독재권력의 충실한 제도적 도구로 공생했던 오욕의 역사가 있습니다. 검찰의 수사권과 공소권 남용을 견제하지 못했고, ‘영장 자판기’에 불과하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폭주하는 검찰에 가려 비판을 비껴갔죠. 검찰 다음으로 법원 개혁의 오래 묵은 숙제가 자연스럽게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게다가 계엄 이후 단기간에 치명적인 실수를 반복했습니다. 이런 기관을 국민이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법원 일반직원 80% ‘조희대 사퇴’
“얼마 전에 법원 일반직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이 ‘직무를 계속 수행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는 응답이 거의 80%에 이른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제가 만나는 직원들과 법관들의 반응도 대체로 비슷합니다. 현재 대법원 체제에 대한 신뢰를 거둔 것으로 보입니다. 법관들은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는 격언에 충실하다 보니, 판결 외의 방법으로 의견을 밝히는 것을 주저합니다. 그런데도 대법원을 비판하는 글이 여러 차례 내부 게시판에 올라왔습니다. 사법개혁 논의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는 글이나, 집단적 이기주의에 빠져 스스로 과오를 인정하지 못하는 법원의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글도 있었습니다. 내란사건 담당 재판장에 대한 윤리감사 결과 공개, 대법원장에게 제기되는 정치권 유착 의혹에 대한 해명을 강하게 요구하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다만, 국회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사법개혁 논의에 대해 사법권 독립 침해를 우려하는 분들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법관 사회 보수화 부인 어려워
“전국법원장회의는 예상했던 결론입니다. 대법원장의 제왕적 사법행정권 아래서 임명된 법원장들이 대법원장의 의중을 충실히 따르려고 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럽습니다. 오히려 심각한 것은, 전국법관대표회의조차도 비슷한 행보를 보이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2017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사법부 개혁 논의를 촉발했고, 그해 6월 사법연수원에서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최초로 열렸습니다. 저도 당시 대표의 한 사람으로 그 자리에 참여했습니다. 교과서를 통해 헌법과 민주적 절차를 배운 판사들인데도, 그것을 실제로 실행해 보는 것은 머리로 아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였습니다. ‘민주주의는 많은 시간과 노력, 오랜 연습과 경험이 필요하다’는 걸 가장 크게 느꼈습니다. 이후 전국법관대표회의가 대법원 내규로 제도화되었고, 나름의 체제를 갖추어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계도 노출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매주 단위로 밀려오는 사건처리에 급급한 판사들이 업무부담 때문에 대체로 법관대표직을 맡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강하고, 그러다 보니 선임 판사가 후임을 지명하듯 법관대표를 선발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법관대표의 직무에 소극적으로 임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더 본질적으로는 법관 사회의 보수화를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적지 않은 법관들이 일반 시민의 인식과는 괴리된 상황 판단을 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습니다. 국민은 민주주의와 국민주권을 이야기하는데, 사법권 독립만을 이야기하는 법관들이 있습니다. 사법권 독립이 사법부 존립의 근원적 가치임을 부정할 수 없지만, 사법부 독립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기본권 보장에 봉사하는 도구적 가치에 불과합니다. 법원이 이른바 ‘민주주의의 적’으로부터 민주주의와 국민주권, 법치주의를 수호해야 하는 헌법적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고, 그 결과로 제도적 보완책을 이야기하는 마당에, 사법권 독립만이 최고의 가치인 듯 주장하는 것은 수단과 목적을 착각한 직역 이기주의에 불과합니다. 특권 의식에 매몰되어 주객을 전도한 억설입니다.”
계엄 위헌성 몰랐다면 일개 법관 자격도 없는 것
“저는 사법연수원 시절 현 대법원장님의 강의를 들었고 그 인품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훌륭한 인격자임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현 대법원장은 지난 계엄 이후 세 가지의 치명적 과오를 범했습니다. 첫째, 계엄 당일 폭주하는 행정부 수반의 헌법침해 행위를 저지할 사법부 수장으로서의 헌법상 책무를 방기했습니다. 삼권분립은 민주주의와 국민주권, 법치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헌법적 장치입니다. 최고의 법 해석, 법집행 기관인 대법원과 대법원장이 계엄의 위헌성을 인지하지 못했다면, 대법원장이 아니라 일개 법관 자격도 없는 것입니다. 위헌성을 인지하면서도 행동하지 않았다면, 헌법상 ‘행정권력 견제의무’를 해태한 것이고, 부작위에 의한 내란방조 행위에 해당합니다.
둘째, 야당 정치인(이재명)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극도의 이례적 재판진행으로 계엄세력의 편에 서는 듯한 정치적 편향성을 드러냈습니다. 국민의 선거권을 침해하고, 헌법상 민주주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훼손했습니다.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강변하는 것은 솔직하지 못한 억지 주장으로 들릴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셋째, 내란사건 주범의 담당 재판장이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구속취소 결정을 하고, 가장 신속하고 집중적으로 처리해야 할 사건을 태만에 가까울 정도로 지연하는데도 그대로 방치했습니다. 심지어 개인적 비위까지 드러났는데도 방관했습니다. 대법원장의 지휘를 받는 윤리감사관은 여론에 밀려 뒤늦게 ‘1인당 접대받은 금액이 관련 법령상 처벌기준인 100만원에 미달하여 별도의 처분을 하지 않았다’는 의견을 밝혔는데,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형사처벌과 법관윤리 위반에 따른 징계처분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법관이 변호사로부터 유흥주점에서 향응을 받은 행위는 금액을 떠나 도무지 용납될 수 없는 행위입니다. 더군다나 국가적으로 가장 중요한 사건을 담당한 재판장으로서, 이미 고의가 의심되는 여러 가지 반복된 실책마저 보여온 상황에서, 더더욱 자격과 신뢰를 잃었음이 자명합니다. 대법원장은 해당 재판장에 대한 적절한 인사 조처의 기회를 놓침으로써 사법행정권자로서도 너무도 무력하고 미흡하였습니다. 오히려 그 재판장을 두둔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사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의 과오 하나하나가 중대합니다. 이미 (조 원장) 스스로 ‘법관의 내적 독립’과 ‘객관적 양심’의 가치를 훼손하면서 정치색을 드러내는 정치행위를 한 이상 합당한 정치적 책임을 감수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전원합의체 판결 직후부터 각지의 많은 법관이 대법원장의 사퇴를 요구한 이유입니다. 외람되지만, 대법원장께서 스스로 과오를 인정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였다면, 사법개혁 논의는 훨씬 건설적인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대법원장 개인의 반복된 실책과 이로 인한 불신은 법원 전체에 대한 신뢰의 위기와 공격의 원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대법원장께서 평생을 봉사해 온 법원이 본인의 과오로 인해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결단하셔서 이 상황을 결자해지해 주실 것을 탄원하고 싶습니다.”
이제와 내란전담재판부 구성, 저항처럼 보여
“너무 늦어 실기했다고 생각합니다. 법안이 상정될 때까지 무대응하다가 이제야 전담재판부 구성을 논한다는 것은 그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을 사기에 충분합니다. 결과적으로 국회의 조처에 저항하는 모습이 되고 말았습니다. 국민이 법원의 재판을 불신하는 상황을 초래해 놓고 국회가 그 대책을 마련하자 이에 저항하기까지 한다면 국민이 그런 법원을 어떻게 생각할지 참으로 걱정스럽습니다. 결국 현재의 대법원 체제에서는 어떤 대응도 진정성을 인정받기 어렵지 않을까 합니다.”
애초 내란전담재판부 안도 헌법상 하자 없어
“내란사건전담재판부의 경우, 법원 밖에 별도의 신분을 가진 법관으로 구성된 재판부를 구성하는 것이 아닌 이상, 특별한 헌법상 하자는 없다는 의견입니다. 기존 법관 중에서 내란사건만을 전담할 재판부를 구성하는 것은 재판의 신속성, 통일성, 전문성을 이유로 다양한 전담재판부를 운영하는 현 제도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사법권 독립 침해를 우려하는 분들이 많은데, 사법권 독립은 국민주권과 법치주의 실현을 위한 방편일 뿐입니다. 기존 체제의 흠결 하에서 탄생·유지된 일부 재판부가 국민주권, 민주주의의 헌법적 가치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여 사법부 불신을 초래할 지경이라면, 국민이 이에 대한 단기적 처방이라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질병에도 장기적 처방과 단기적 대증요법이 모두 필요한 것처럼, 사법권 독립의 장기 처방 외에, 현재의 시급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단기적 조처도 불가피합니다.
법왜곡죄의 경우에도 직권남용죄의 개념에 포섭될 수 있는 특별 구성요건을 두는 것이니 헌법상 문제는 없다는 의견입니다. 다만, 입법자의 의도와 실제로 그 법률이 적용되는 현실 사이에는 많은 괴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른바 ‘악성 민원인’으로 불리는 이례적 행태의 당사자들이 그 조항을 가장 많이 이용하게 될 것이고, 정당하게 재판한 법관을 괴롭히는 합법적 도구로 악용할 것입니다. 또한 수사기관이 사실상 모든 민·형사사건의 당부를 심사하는 ‘대법원 위의 법원’으로 기능하는 기형적 상황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염려됩니다.”
변호사들은 ‘이진관’보다 ‘지귀연’ 좋아해
“대법원장이 제왕적 사법행정권을 행사하는 도구로 이용되어 온 법원행정처는 폐지 가능성까지 열어둔 대대적 개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대법관 증원안은 과거부터 상고심 제도 개선안 중 하나로 논의되어 오던 것입니다. 주로 재판지연, 상고심 충실화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된 것인데, 상고허가제나 상고법원 등 다른 대안이 사라진 이상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입니다.
그 외에 법관 인사평정에 관한 개선책도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사실, 독일이나 프랑스, 영국, 미국, 일본 등 주요국의 법관인사제도를 보면, 우리나라처럼 법관에 대한 정기적이고 적극적인 근무평정 제도를 운용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비위 등이 확인되는 경우에 징계 절차를 진행하거나 신임투표 등을 통해 신임을 묻는 등 소극적 인사제도를 제도화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는 근무평정이 법원조직을 수직적으로 관료화함으로써 법관의 재판상 독립을 침해할 위험을 방지하기 위함입니다. 근무평정은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이므로, 독립성의 개념과 충돌할 수밖에 없습니다. 효율성을 위해 독립성 침해를 감수할 것이냐, 아니면 독립성을 확실하게 보장하기 위해 효율성 감소를 감수할 것이냐는 선택의 문제인데, 효율성과 근무평정을 강조하면 할수록 법관조직이 행정부 조직처럼 관료화하는 것은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법행정권자는 끊임없이 근무평정을 도구로 법관들을 길들이고 최고의 효율성을 달성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법관에게는 승진, 전보 등의 인사 소요를 근원적으로 제거하여 오로지 재판에만 관심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 사법부 독립의 가치와 헌법적 이익에 부합한다는 의견입니다.
특히 법관 근무평정에 사건에 참여한 변호사의 평가를 반영하여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다 태우는 위험을 초래할 수 있어 보입니다. 예컨대, 최근 감치 재판을 받은 변호사들의 사례를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입니다. 대부분의 변호사는 ‘지귀연’ 식의 재판에 호의적이고, ‘이진관’ 식의 재판을 좋아하지 않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주변 동료 변호사들까지 동원하여 평가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변호사들은 재판장에게 악감정을 가진 소수의 변호사일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문제의 원인도 해결책도 법관독립
“어떤 문제가 발현한 경우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원인부터 찾아야 하고, 그 후에야 그 원인에 맞는 해결책이 도출될 수 있을 것입니다. 원인을 찾으려는 노력을 등한히 한 채 해결책부터 찾고 그 해결책에 원인을 꿰맞추는 식의 미봉책으로 끝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독립의 가치는 사법부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한 필수적인 원리입니다. 과거 사법부가 권력의 시녀 노릇에 안주했다거나 최근에 일어난 여러 사건에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 것도 본질적으로는 사법부 독립, 법관 독립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구조적 한계에 기인합니다. 원인도 ‘법관의 내·외적 독립’에 관한 제도적 흠결이고, 그 해결책도 ‘법관 독립’의 흠결을 고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법원 외적 측면에서, 법원의 수장(대법원장)이나 대법관을 모두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하는 것은 법원의 독립에 있어 매우 치명적인 흠결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현재까지 우리가 경험한 사법부 오욕의 역사는 이를 객관적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향후 개헌 과정에서 외국의 입법례를 참조하여 독립된 외부의 위원회 등을 통해 대법원장, 대법관 후보자를 선출하는 방향으로 개정해야 합니다. 또한 예산에 관한 법원의 독립성을 강화하지 않고서는 법원은 항상 정권의 눈치를 살피는 존재로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법원의 ‘예산 편성권’을 보장하여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법원 내부, 즉 대법원장이나 법원장의 영향력으로부터 대법관이나 법관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대법원장의 대법관 임명제청권, 대법원장의 제왕적 사법행정권에 대한 개혁이 필요합니다. 대법관 임명의 실권이 대법원장에게 있는 이상, 대법관이 자신을 임명시켜준 대법원장의 의중을 거스르기 어려울 것이고, 대법원장이 법관인사를 장악하는 이상, 법관들은 대법원장의 심기를 살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법관의 인사는, 다수의 외국 입법례와 같이, 외부의 독립위원회 등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각급 법원의 사법행정권은 최종적으로 판사회의에 귀속시키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또한 법정에서 재판부와 원고, 피고 사이의 삼면적 토론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도록 할 필요가 있습니다. 재판부가 ‘심증’을 홀로 독점하게 할 것이 아니라, 변론기일마다 쌍방의 주장, 입증 내용에 대한 ‘잠정적 심증’을 개시하도록 함으로써, 이에 불복하는 당사자가 그 ‘잠정적 심증’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반박할 기회를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합니다. 합의부 구성도 부장, 배석판사의 기형적, 수직적 구조를 없애고 대등하게 구성해 실질적인 토론과 합의가 가능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런 조건들이 정착된다면, ‘평균적 판단력을 갖춘 다수에 의한 단계적 집단지성 도출’이라는 법원의 이상은 자연스럽게 실현될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은 직업법관·선출판사 같이 일해
“사법권에 대한 국민적 통제라는 관점에서 고려해볼 만한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국민참여재판 이용률이 떨어지는데요. 활성화를 위해서는 국민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합니다. 제도의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귀찮아서 회피하는 경우가 많고, 비용 문제도 있는데, 의미를 잘 살릴 수 있도록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합니다.
법관 선거도 고민해 볼 수 있습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지방법원에서 단기 연수를 한 적이 있는데요. 직업법관과 선출판사가 섞여서 일하더군요. 선출법관들이 젊은 편입니다. 지금처럼 법원이 지나치게 보수화하는 상황이라면, 시민 인식과 보조를 같이할 수 있도록 직업법관과 선출법관을 함께 구성해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민주적이어야 할 곳은 법정이거든요.”
사법부는 오로지 국민의 것
“한번 무너진 신뢰는 쉽게 회복되지 못할 것입니다. 어쩌면 많은 법관의 수 십년에 걸친 오랜 노력이 쌓여야 가능할 것입니다. 다른 특별한 방법이 있을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묵묵히 맡은 재판을 성실하고 공정하게 수행하는 외에는. 다만, 계엄이 선포되었을 당시 대법원이 ‘계엄 선포는 실체적, 절차적 요건을 갖추지 못해 헌법과 법률에 위반된다. 법원은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재판을 진행하고, 적법절차에 따라 시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겠다’고 선언하였더라면, 내란 사건 접수 시부터 연일 개정하며 신속하고 엄정하게 형사적 책임을 묻는 모습을 보였다면, 국민은 오히려 계엄을 계기로 사법부를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기관으로 각인하였을 것이라는 진한 아쉬움을 금하기 어렵습니다.
사법부는 현재의 대법원장의 것도 아니고, 특정 정권이나 특정 법관의 소유물도 아닙니다. 오로지 국민에게 봉사하는 국민의 것입니다. 불신을 야기한 인물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현직에서 물러날 것입니다. 사법부는 몇년 또는 몇십년 사용하다가 버릴 기관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이 유지되는 한 수백, 수천년을 존재하며 국민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키는 보루로 남아야 할 것입니다. 드러난 문제에 대해 엄격하게 책임을 묻고 질책하되, 애정을 가진 눈으로 살펴봐 주시고, 사법부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자세히 살펴주시기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이재성 논설위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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