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통령이 기업간 경쟁에 직접 개입, 부작용 우려된다

조선일보 2025. 12. 24.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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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5일 충남 천안시 한국기술교육대학교에서 열린 '충남의 마음을 듣다' 타운홀미팅에서 참석자의 발언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경쟁 중인 7조 8000억 원 규모의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의 사업자를 경쟁 입찰로 선정하기로 국방부 방위사업추진위가 최종 결정했다. 기본설계를 수행한 업체가 상세설계와 초도함 건조까지 맡던 오랜 관례가 깨진 것이다. 이 사업 경우 HD현대중공업이 기본 설계를 수행했다.

이런 결정은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일 천안에서 열린 청년정책 타운홀 미팅에서 총기 관련 질문에 답변하던 이 대통령은 갑자기 “군사 기밀을 빼돌려 처벌받은 곳에 수의 계약을 주느니 마느니 하는 이상한 소리가 나오던데, 잘 체크하라”고 방사청장에게 지시했다. HD현대 직원들이 옛 대우조선해양의 자료를 유출한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은 사건을 지목한 것이었다. 그 후 17일 만에 방사청은 만장일치로 기본설계 업체의 기득권을 무시하고 경쟁 입찰 방식을 결정했다.

함정 건조는 수만 장의 설계 도면과 복잡한 계산식, 정교한 스텔스 로직 등이 결합된 고도의 사업으로 기술적 연속성이 중요하다. 방위사업관리 규정에 기본 설계 업체가 사업을 계속 수행할 수 있도록 한 ‘연속성 원칙’이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2006년 방사청 개청 이후 18건의 함정 사업 모두 기본설계 업체가 상세설계와 초도함 건조까지 맡아왔다.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는 업체 간 과열 경쟁 속에 기밀 유출 사건 등이 쟁점화 되면서 2년 가까이 교착 상태에 빠져 있었다. 한화오션 측은 “국가 기밀을 탈취해 유죄 판결을 받은 업체에 특혜성 수의계약을 주는 것은 방산 정의에 위배된다”며 경쟁 입찰을 요구해 왔다.

기업 간 경쟁이 아무리 심하더라도 방위사업추진위가 어느 쪽으로든 결정을 내리면 될 일이었다. 항간에는 두 업체가 5 대 5 비율로 사업을 나눠 사업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그런데 돌연 대통령이 개입해 사실상 방향을 정해버렸다. 우리 기업 간 경쟁 역사에 이런 일이 있었는지 의문이다.

앞으로 경쟁 입찰을 한다고 해도 점수를 매기는 방식을 둘러싸고 다시 소송전이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 소송이 없더라도 이미 이 사업은 3년 이상 지연되게 됐는데, 여기서 2~3년이 더 걸릴 수 있다. 해군이 가장 큰 피해자라는 말도 나온다. 해군 전력에 이상이 발생하면 국민의 피해이기도 하다. 나중에 정치 문제로까지 번질 우려도 있다. 시스템 아닌 대통령 한 사람이 좌우하는 결정은 더 큰 비용과 부작용을 부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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