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은 법이 아니라 예산이 만든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퇴직을 결정하는 기준은 나이가 아니다. 인건비 보조금이 중단되는 시점이 곧 퇴직 시점이 되는 구조, 이것이 현실이다. 종사자는 60세, 시설장은 65세. 법이 아니라 재정 기준이 사실상의 정년으로 작동한다. 그래서 현장에서는 정년 규정보다 '지원 종료 시점'이 더 강력한 퇴직 신호가 된다. 이 구조는 오래 지속돼 왔기에 익숙해졌을 뿐 결코 안전하지 않다. 60세 전후의 사회복지사는 현장에서 가장 많은 경험을 축적한 시기다. 복잡한 사례의 맥락을 읽고 위기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으며, 지역사회 안에서 관계를 조정할 수 있는 역량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능력이 아닌 재정 때문에 우리는 이들을 가장 먼저 떠나보낸다.
사회복지 서비스는 장비나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을 통해 작동한다. 숙련 인력이 빠져나가면 서비스의 연속성은 즉시 흔들린다. 특히 농촌이나 취약 지역에서는 한 명의 퇴직이 곧 서비스 축소로 이어진다. 야간 대응이 어려워지고, 위기 개입은 늦어지며, 그 부담은 결국 이용자에게 돌아간다. 정년은 개인의 생계가 아니라 지역사회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다.
여기에 또 하나의 구조적 공백이 겹쳐 있다. 정년 60세와 국민연금 수급 개시 65세 사이의 5년이다. 이 시기는 개인에게는 불안정한 공백기이고 사회에는 새로운 빈곤을 만들어내는 구간이다. 사회복지 인력의 다수가 중·고령 여성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 문제는 성평등의 문제이기도 하다. 현실적으로 많은 사회복지사는 40~50대에 뒤늦게 현장에 들어온다. 짧은 시간 경력을 쌓고 다시 불안정한 상태로 밀려난다. 전문성이 충분히 축적될 시간도, 노후를 준비할 시간도 부족하다.
이런 구조 속에서 사회복지를 전문직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이제 질문을 바꿀 필요가 있다. "몇 살까지 일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 일하게 할 것인가"다. 단순히 정년 숫자를 조정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보조금 기준이 함께 바뀌지 않으면 제도는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종사자와 시설장으로 나뉜 정년 기준 역시 정리돼야 한다. 연령이 아니라 직무와 역할을 중심으로 한 재설계가 필요하다. 고령 종사자에게 젊은 시절과 동일한 업무 강도를 요구하는 것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해외에서는 이미 다른 길을 선택하고 있다. 일본은 정년 제도를 유지하면서도 일할 의지가 있는 사람은 65세까지 계속 일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했다. 영국과 미국은 나이를 이유로 퇴직을 강제하지 않는다. "몇 살인가"보다 "그 일을 수행할 수 있는가"가 기준이 된다. 유럽의 여러 국가는 근로시간을 줄이면서도 경험을 현장에 남길 수 있는 단계적 은퇴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 사회는 공통적으로 알고 있다. 숙련된 돌봄 인력은 비용이 아니라 사회가 오랜 시간에 걸쳐 축적한 자산이라는 사실을. 정년 연장은 지출이 아니라 투자다. 경험을 지키는 선택이 곧 서비스의 질을 지키는 길이기 때문이다. 정년연장은 숫자의 문제가 아니다. 책임의 문제이며 사회가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비전의 문제다. 우리는 축적된 경험을 남길 것인가, 아니면 예산을 이유로 사라지게 할 것인가. 그 선택이 앞으로의 복지국가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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