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능은 한국 구축함 이하, 가격은 1조원... 미군이 구형 경비함 택한 이유는?

2025. 12. 23.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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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군의 이지스구축함 로렌스함. 미군의 주력 전투함인 이지스함은 100척에 달한다. 로이터 연합뉴스

군 복무 중 한·미연합훈련에 한 번이라도 참가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미군이 사용하는 장비들을 보며 그 덩치에 놀랐던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군대의 발’이라고 할 수 있는 기본적인 사륜구동차량만 예를 들더라도 그렇다. 우리 군은 정말 작고 좁은 ‘레토나’를 쓰다가, 한국형 험비라고 불리는 K151 계열 차량으로 교체한 지 몇 년 되지 않았지만, 미국은 그 험비조차도 어린애처럼 만들어 버리는 육중한 덩치의 JLTV를 기본 사륜구동차량으로 사용 중이다.

한국군과 미군의 장비 덩치 차이는 해군으로 가면 더 크게 벌어진다. 오랫동안 1,200~2,200톤급 초계함과 호위함을 주력으로 사용하던 우리 해군은 최근 주력 전투함을 3,000톤급 *호위함으로 대체 중이다. 그런데 미군은 2선급으로 사용되는 연안전투함 일부만 3,000톤급이고, 주력은 8,000~9,000톤이 넘어가는 이지스함만 100척에 달한다.

호위함(Frigate)
주로 함대 또는 선단의 호위를 위해 만들어진 중형 수상전투함을 통칭하는 용어. 범선 시대에는 최전선에서 싸우는 작고 빠른 함선을 통칭했으나, 20세기 이후에는 초계함(Corvette)보다는 크고 구축함(Destroyer)보다는 작은 수상 전투함을 통칭하는 용어가 됐다. 주로 2,000~7,000톤급 규모의 전투함을 지칭했으나, 호위함의 덩치와 무장이 강화돼 최근에는 구축함과 구분이 매우 모호한 상황이 됨.

중국과 맞서기 위해 차세대 호위함 사업 추진했던 미국

이 이지스 구축함이 너무 크고 비싸 중국과의 물량전에 쓰기에는 부적합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미국은 차세대 호위함 사업을 추진했다. 그런데 싸게 대량으로 건조해 쓰겠다는 호위함조차 7,000톤이 넘는 덩치에 이지스 레이더를 탑재한 모델로 등장했다. 보조 전력으로 쓸 군함의 성능과 덩치가 다른 나라의 주력 전투함을 압도하는 수준이 된 것은 군함의 덩치가 어느 정도는 되어야 장기간의 원양 작전 수행은 물론, 차후 개량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덩치가 커진 이 호위함은 결국 사업 일정 지연과 비용 상승으로 지난달 말, 사실상의 사업 취소 처분이 내려졌다. 그리고 한 달 뒤, 미국은 기존의 상식을 뒤엎는 놀라운 결정을 발표했다.

컨스털레이션급 호위함 상상도. 핀칸티에리 조선소 홈페이지

미국이 최소 20척, 최대 35척을 건조하려 했던 차세대 호위함 *‘컨스털레이션’급은 우리나라 기준에서 보면 호위함이 아니라 구축함, 그것도 주력 구축함 수준의 고성능 전투함이었다. 길이 151m, 만재배수량 7,200톤이라는 덩치는 우리나라의 주력 구축함인 충무공 이순신급보다 컸고, 레이더 역시 차세대 이지스 레이더인 SPY-6(V)3가 채택됐다.

컨스털레이션(Constellation class)
냉전 시절 표준 호위함으로 사용된 올리버 헤저드 페리급을 대체하는 연안전투함(LCS : Littoral Combat Ship) 프로그램이 사실상 실패로 끝나면서, 이를 대체하기 위한 신형 호위함 사업인 FFG(X)를 통해 만들어진 함종. 2020년 이탈리아 핀칸티에리 조선소의 FREMM급 호위함 설계를 선정해 2024년까지 1번함 완성이 예정돼 있었으나, 잦은 설계 변경과 이에 따른 비용 상승·납기 지연으로 2025년 11월 25일, 공정률 12% 상태에서 사업이 축소·폐지됐다. 당초 예정된 20척 물량은 취소되고, 건조 공사가 진행 중인 2척 도입만 승인.

컨스털레이션급 고성능 전투함 만들려던 계획 돌연 취소

무장도 강력했다. Mk.41 수직발사기가 32셀 들어갔고, 이 발사기를 이용해 미군의 현용 주력 미사일들을 대부분 사용할 수 있었다. 차세대 함대함 미사일인 NSM도 무려 16발이나 탑재됐다. 미국이 보조 전력으로 운용될 호위함을 이렇게 고사양으로 만든 이유는 이 배가 유사시 중국과의 함대 결전에서 사용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수상전투함이 점점 더 대형화·고성능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어지간한 성능의 중·소형 전투함으로는 정면 승부가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컨스털레이션급의 고사양화를 부추겼다. 하지만 과도한 고사양화는 컨스털레이션급의 발목을 잡았고, 사업 지연과 비용 상승을 견디다 못한 미국은 결국 이 사업을 취소하고 말았다.

컨스털레이션급 호위함 사업 취소가 발표된 직후, 각국 조선소들은 분주하게 후속 사업 참여 가능성을 타진했다. 특히 관세 협상 과정에서 미국과 대규모 건함 협력에 합의한 한국과 일본 조선소들이 컨스털레이션급 후속 사업에서 수혜가 예상된다는 관측도 나왔다. 그런데 지난 19일, 미 해군은 대단히 충격적인 발표를 내놨다. 새로운 호위함 사업 공개경쟁입찰을 시작하는 대신, 미국 조선소가 이미 건조사업을 종료한 구형 경비함 설계를 가져다가 새 호위함을 건조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낡은 설계의 레전드급 경비함 도입하기로

미 해안경비대 레전드급 경비함인 '웨이슈함'. 해양안보 수호라는 임무가 주어진 레전드급 경비함은 해상탐색 레이더, 항해 레이더, 사격통제 레이더를 탑재하고 있다. 대해상 사격이 가능한 함포도 갖추고 있다. 샌프란시스코=문재연 기자

미국이 도입을 발표한 군함은 미 해안경비대가 10척을 건조해 운용 중인 ‘레전드’급이었다. 2008년에 1번함이 취역한 이 호위함은 설계 자체도 워낙 낡았고, 도입 초기부터 성능에 비해 가격이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을 받았던 배였다. 이 배는 길이 127m, 만재배수량 4,600톤의 비교적 큰 경비함이었지만, 해안경비대용 경비함이었기 때문에 레이더와 무장은 매우 빈약하다. 그런데도 1척 가격이 7억 달러, 우리 돈으로 1조 원이 넘는 비싼 배였다.

레전드급의 가장 큰 문제는 크기가 크고 값은 비쌌지만, 애초에 경비함으로 설계된 탓에 대형 레이더와 미사일 발사기를 실을 마땅한 공간이 없다는 점이다. 과거 이 경비함의 건조사인 헌팅턴 잉걸스 인더스트리(HII)는 수출용으로 ‘순찰호위함 4921’이라는 개조 모델을 내놓은 적이 있었다. 당시 개조안에서도 단거리 함대공 미사일인 ESSM 12발과 함대함 미사일인 하푼 8발 정도를 싣는 것이 확장할 수 있는 한계였다. 가격은 이지스함 수준이지만, 성능은 형편없는 이 설계안에 관심을 갖는 나라는 없었고, 결국 이 제안은 사장됐다. 그런데 이렇게 묻혔던 설계안이 채택돼 미 해군의 차세대 호위함이 된 것이다. 미사일 무장이 워낙 빈약하다 보니 미 해군은 이 신형 호위함 도입 사업 명칭도 ‘차세대 유도미사일 호위함 FFG(X)’에서 ‘차세대 호위함 (FFX)’로 슬그머니 바꿨다.

레전드급 경비함을 기반으로 한 차세대 호위함 개념도. 미 해군연구소

미 해군이 공개한 이 차세대 호위함은 말 그대로 볼품없기 그지없다. 함포는 위력과 사거리가 떨어지는 57㎜이고, 미사일은 컨테이너형 탈·부착식 발사기인 Mk.70 발사기를 가져다 붙일 예정이다. 레이더는 기존 경비함용 사양 그대로이고, 잠수함을 탐지하기 위한 음파탐지기(소나)는 없다. 이 사양이면 현재 각국이 내놓고 있는 거의 모든 유형의 호위함보다 성능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나온 지 30년이 되어가는 우리나라의 광개토대왕급 구축함보다도 전투 능력이 떨어진다.


비싸고 전투 능력 떨어지는 차세대 호위함...미국의 조선업 카르텔 때문

군용 규격을 적용해 개조하기 전 기본 설계가 1척에 1조 원이 넘었던 만큼, 이 설계에 각종 무장을 추가하면 1척에 1조 원대 중반이 넘어갈 가능성도 크다. 우리나라의 정조대왕급 이지스 구축함보다 비싼 호위함이 나올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호위함으로는 중국의 대형·고성능 전투함들에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 불가능하다. 심지어 이 호위함은 이미 기반 인프라가 다 갖춰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2028년에야 1번함 진수가 가능하다는 것이 미 해군장관의 설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몇 개월이면 만들 수 있는 배가 미국 조선소에서는 2년 넘는 건조 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국은 도대체 왜 이런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을 한 것일까? 사실 미국의 이러한 결정에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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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우 자주국방네트워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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