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온라인 젠더폭력이 여성을 침묵시킬 때[디지털 성폭력, 맞서 싸우는 세계]

남지원 기자 2025. 12. 23.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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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플랫X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공동기획
디지털 성폭력은 ‘어느 한 나라의 문제’라고 부르기 어렵다. 피해 발생부터 성착취물의 제작과 유통, 확산, 삭제 대응까지 모든 단계가 국경을 넘나들며 이뤄진다. 가해자는 해외 플랫폼을 통해 익명으로 콘텐츠를 퍼뜨린다. 피해자의 사진과 영상, 정보는 순식간에 다국적 서버를 넘나들며 지우기 어려운 형태로 박제된다. 글로벌 소셜미디어 운영사들은 책임을 회피하고, 피해자들은 각국의 법과 제도적 한계 속에서 제대로 구제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디지털 성폭력에 대응하는 캠페인의 일환으로 온라인 플랫폼 ‘Safer Online, Stronger Together’를 17일 열었다. 디지털 성폭력의 구조적 문제를 이해하고 피해 경험자와 시민이 문제 상황을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목적이다. 이 페이지에서는 디지털 성폭력 대응 활동과 함께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기술 매개 젠더 기반 폭력을 막기 위해 싸우고 피해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싣는다. 활동가들의 시선으로 디지털 성폭력의 구조를 읽어내고 국경을 넘어 함께 문제를 해결해내기 위해서다.

경향신문 여성 서사 아카이브 플랫은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가 취합한 아시아권 활동가들의 서면 인터뷰를 기사로 모았다. 디지털 성폭력과 맞서 싸우며 ‘변화를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시리즈 순서>

(1)사라지지 않는 이미지들

(2)온라인 젠더폭력이 여성을 침묵시킬 때

(3)사건 그 뒤, 무엇을 해야 하나

2020년~2021년 태국에서 이어진 민주화운동의 최전선에는 젊은 여성들이 있었다. 이들은 군주제와 군부 뒤에 뿌리깊은 가부장제와 성차별주의가 있다고 지목했고, 정권 퇴진과 군주제 개혁뿐 아니라 성별임금격차 해소나 임신중지권 등 여성 권익과 관련된 요구도 쏟아냈다. 당시 온라인에서는 여성 활동가들을 비하하고 공격하는 글이 쏟아졌다. 여성 시위대의 신체를 찍은 사진이 온라인에서 돌아다니거나, 성소수자 활동가가 조롱 대상이 되곤 했다.

태국 시민단체 ‘스탑온라인함’ 홈페이지

태국 시민단체 ‘스탑온라인함(Stop online harm)’ 활동가 사이자이 리앙푼사쿨은 “공인으로 살아가는 여성들을 위협하고 침묵시키는 데 온라인 공격들이 이용됐다”고 말했다. 그는 “여성 인권옹호자와 학생 지도자, 성소수자 활동가들이 조직적인 괴롭힘과 신상 털기, 심각한 모욕, 입막음을 목표로 한 성적 위협에 시달렸다”며 “여성 정치인들에 대한 온라인 괴롭힘을 조사하면서 피해자들에 대한 학대적 댓글이 수백만 개에 달하는 것을 보고 충격받았다”고 말했다. 더욱 충격받은 것은 많은 여성들이 이런 일을 ‘당연한 공적 삶의 일부’라고 받아들인다는 것이었다. 이들이 겪는 일은 사회적으로도 단순히 ‘거친 댓글’ 정도로 인식됐다. 여성 활동가들을 위협해 공개적 발언과 행동을 막는 ‘기술을 이용한 젠더기반폭력’이라는 인식은 부족했다.

사이자이 리앙푼사쿨 스탑온라인함 활동가. 스탑온라인함 제공

리앙푼사쿨 활동가는 미얀마에서 여성 정치인과 언론인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다가 이들이 온라인 괴롭힘에 시달리는 것을 보고 스탑온라인함을 설립했다고 말했다. 이 단체는 온라인 괴롭힘을 당하는 여성 활동가들이 곧바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핫라인을 만들어 괴롭힘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거나 심리적 지지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여성 활동가를 대상으로 한 온라인 괴롭힘을 분석하는 조사와 연구를 수행하고, 온라인 피해를 겪은 여성 활동가들과 언론인들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일도 하고 있다. 최근 1년간 피해자 800여명이 이 단체의 도움을 받았고, 지금도 여성 지도자 100여명이 온라인 괴롭힘에 대응하는 공격을 받고 있다.

리앙푼사쿨 활동가는 여전히 태국의 여성 활동가들에 대한 온라인 공격이 주요 소셜미디어 플랫폼에 만연해 있다고 지적했다. 여성 활동가의 사적인 사진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한다든지, 공인 여성들을 ‘부도적하다’ ‘미쳤다’ ‘태국인이 아니다’라는 식으로 묘사하거나 젠더화된 허위 정보를 퍼뜨리는 일이 심각하다. 외모 조롱이나 성적인 루머, 동성애·트랜스젠더 혐오에 기반한 허위사실을 퍼뜨리는 일도 많다. 활동가들을 겨냥한 디지털 감시, 해킹 문제도 빈번하다.

이런 게시물들은 페이스북이나 틱톡, X(옛 트위터) 등 공개 소셜미디어를 통해 폭발적으로 퍼져나가기도 하고, 라인이나 페이스북 비공개 그룹을 통해 은밀하게 전파되기도 한다. 그는 여기에 소셜미디어를 운영하는 글로벌 기업들의 책임이 크다고 강조한다. “글로벌 기술기업들은 ‘기술을 활용한 젠더기반폭력’을 단순히 ‘사용자들의 나쁜 행동’이 아니라 예측과 예방이 가능한 인권 차원의 위험으로 다루고 피해자들을 보호하는 방법을 이행해야 한다”며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원칙(UN Guiding Principles on Business and Human Rights)에 따라 기업들은 자사 사업과 연관된 피해를 예방하고 보상할 책임이 있고 기술을 활용한 젠더기반폭력도 여기에 포함된다”고 말했다.

리앙푼사쿨 활동가는 “여성 활동가들은 종종 저희에게 ‘저만 그런 (일을 겪는) 줄 알았다’고 말하는데 자신의 경험이 더 큰 패턴의 일부임을 깨닫는 순간 수치심을 벗고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게 된다”며 “온라인 젠더기반폭력 문제를 다룬다는 것은 여성만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존엄성, 그리고 공적인 공간에서 안전하게 존재할 권리를 보호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 남지원 젠더데스크

▶국제앰네스티 디지털 성폭력 대응 캠페인 ‘Safer Online, Stronger Together’ 바로가기

남지원 젠더데스크 somni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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