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천만관객 블록버스터 12년 만에 '0'…위기의 한국영화
'외화 쏠림'에 한국 영화 존재감↓
2012년 이후 매년 배출하던 천만영화도 '제로(0)'
23년 만에 실사영화 신기록 세운 일본과 대비
중예산 영화 기획·해외판로 개척 나설 시점
"천만 영화 환상 버려야 할 때"

긴 보릿고개를 겪는 한국 영화가 ‘흉작’으로 한 해를 마감하게 됐다. 외화 강세 흐름에 기대 연간 누적 관객 수 1억 명은 가까스로 넘겼지만, 매년 이어지던 ‘국산영화 천만계보’가 12년 만에 끊어졌다.
5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조차 단 한 편 밖에 내놓지 못하면서 투자·제작·배급 등 한국 영화산업의 밸류체인이 붕괴에 다다랐다는 우려가 커진다. 위축된 시장규모에 맞춰 영화 체급을 줄이고, 해외판로를 넓히는 등 체질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억명 마지노선’ 사수…“외화에 기댄 착시”
23일 영화진흥위원회 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22일까지 극장을 찾은 총관객 수는 1억 81만 명으로 집계됐다. 1억2310만 명을 동원한 지난해와 비교해 약 18% 가량 감소했다.
‘1억 관객’은 영화산업의 생존 마지노선으로 꼽힌다. 안정적인 관객 수요는 제작비 100억 원을 넘긴 대형 상업영화가 잇따라 등장하는 등 시장의 양적·질적 성장을 이끄는 토대란 점에서다. 실제로 멀티플렉스 체제가 자리 잡은 2005년부터 국내 극장가는 매년 1억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한국영화 최고 전성기로 꼽히는 2013년부터는 7년 연속 연간 관객 2억 명을 넘겼고, 2019년 1인당 평균 관람 횟수(4.37회)가 전 세계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거리두기 정책으로 극장 정상영업이 어려웠던 팬데믹 시기(2020~2021)를 빼고 약 20년 만에 ‘연간 1억 관객’이 무너질 수 있다는 공포가 올해 영화시장을 지배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다만 간신히 사수한 1억 관객을 바라보는 영화계의 속내는 복잡하다. 관객을 극장으로 이끈 동력이 한국 영화가 아닌 외화란 점에서다.

올해 극장가는 외화 쏠림 현상이 두드러졌다. 영진위에 따르면 이날 기준 올해 누적 관객 수 상위 5편은 ‘주토피아2(640만)’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568만) ‘좀비딸’(563만) ‘F1:더 무비’(521만) ‘체인소 맨:레제편’(341만)으로, 한국 영화는 ‘좀비딸’ 한 편뿐이다. 지난해 상위 1~5위(‘파묘’ ‘범죄도시4’ ‘인사이드 아웃2’ ‘베테랑2’ ‘파일럿’)에 외화가 단 한 편이었던 것과 대비된다.
일본은 23년 만에 ‘천만영화’, 한국은 계보 끊겨
낮아진 한국 영화의 경쟁력은 ‘천만영화 실종’ 사태로 요약된다. 올해 극장가에서 1000만 명을 동원한 영화는 한 편도 없다. ‘도둑들’(1298만) ‘광해, 왕이 된 남자’(1232만)가 개봉한 2012년부터 한국 영화는 팬데믹 시기를 제외하고 지난해까지 매년 천만 영화를 배출했다. 이 시기 천만 영화 27편 중 한국 영화가 19편에 달할 만큼 국내 작품이 흥행의 중심축에 있었다. 시장 침체가 본격화된 2023년과 지난해에도 ‘서울의 봄’(1312만) ‘범죄도시3’(1068만·이상 2023년) ‘파묘(1191만)’ ‘범죄도시4’(1150만) 등이 극장에 걸렸다.
올해 한국 영화는 적잖은 제작비를 쏟아부은 기대작들이 모두 부진을 면치 못했다. 박찬욱 감독의 ‘어쩔수가없다’가 해외 호평과는 별개로 국내에선 292만 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312억 원의 제작비를 쏟아부으며 여름철 ‘텐트폴’로 꼽혔던 ‘전지적 독자 시점’의 관객 수는 추산 손익분기점의 6분의 1 수준인 106만 명에 불과했다. 한 극장 관계자는 “연상호 감독의 ‘얼굴’이나 윤가은 감독의 ‘세계의 주인’ 등 저예산 수작들이 주목받은 것도 국내 상업영화 부진의 반사이익”이라며 “올해는 한국 영화의 존재감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고 말했다.
꾸준히 회복 곡선을 그리고 있는 해외 영화시장과 비교하면 위기는 더 선명해진다. 한국 영화에 밀려 한 수 아래라는 평가를 받은 일본의 경우 영화 ‘국보’가 1200만 명을 동원하며 23년 만에 실사 영화 1위 기록을 갈아치웠다. PwC가 지난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극장 박스오피스 매출은 전년 대비 6% 감소한 반면, 일본은 5.8% 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내년 라인업 ‘제로(0)’…‘500만 뉴노멀’ 준비해야”
국내 영화산업 침체는 내년에도 지속될 전망이다. 장기 불황에 따른 투자 경색으로 제작 편수가 급감한 데다 창고 영화도 모두 소진됐기 때문이다. 흥행 부진으로 수익률이 급락하며 커진 리스크로 투자가 끊기면서 제작 활동이 멈췄다. 매년 연말 떠들썩하게 내년 라인업을 발표하던 대형 투자배급사들이 조용한 것도 이런 영향이 크다. 영진위 ‘한국영화 수익성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순제작비 30억 원 이상으로 제작된 상업영화의 평균 수익률(45편)이 10.93%였던 반면, 2023년에는 35편의 상업영화가 평균 30.98%의 손실률을 기록했다.
일각에선 위축된 시장환경에 맞춰 천만영화의 환상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한다. 검증된 감독과 스타 배우를 앞세워 대형 상업영화를 만드는 대신 극장 관람 수요를 유지하면서 손익분기점 부담을 낮추는 ‘중박’ 영화 제작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 문화체육관광부와 영진위가 올해 100억 원 규모로 신설한 ‘중예산 한국영화 제작지원 사업’ 규모를 내년에 200억원으로 두 배 키우기로 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내수에 초점을 맞췄던 한국 영화가 해외판로 확대에 나설 시기가 됐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영화 ‘어쩔수가없다’가 국내 개봉 전 해외 선판매로 170억 원의 제작비를 회수한 게 대표적이다. 지난 1월 개봉한 ‘검은 수녀들’도 인도네시아에서 관객 100만 명을 동원하는 등 해외 판매로 당초 250만명 수준이었던 손익분기점을 160만 명으로 낮췄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전체적인 극장 관객 볼륨이 줄어든 것을 인정하고 500만~600만 사이즈의 중예산 영화 기획·투자를 키워야 한다”며 “최근 한국 영화가 글로벌 시장에서 유리한 조건으로 세일즈가 이뤄지는 만큼 내수용을 넘어 글로벌 상품으로 만들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유승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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