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이야기] 성직자가 심은 ‘감귤’ 나무…100년간 지역경제의 버팀목

관리자 2025. 12. 2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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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자 중엔 별도의 부캐(부캐릭터)를 갖고 타 분야에서 업적을 쌓은 이들이 있다.

제주에 '온주밀감'을 들여온 성직자면서 식물학자인 에밀 타케 신부(1873∼1952)도 이 사례 중 하나다.

구한말 서구에서 건너온 신부·목사가 복음 전파와 함께 매달린 일도 농업 같은 생존기술을 서민에게 보급하는 것이었다.

1911년 타케 신부는 일본에서 선교하는 위르뱅 포리 신부에게 왕벚나무를 보내고 '온주밀감' 묘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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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이야기] 에밀 타케 신부와 제주 감귤
과거 왕족이나 먹던 귀한 과일
기후 탓에 귤나무 재배 어려워
구한말 서구에서 온 타케 신부
‘온주밀감’ 들여와 제주에 보급
가계 보탬 돼 ‘대학나무’라 불려
비타민C 풍부…감기 예방 효과
한라봉·천혜향 등 개량 거듭
다양한 맛과 향 즐길 수 있어
오늘날 우리가 재배하는 귤은 에밀 타케 신부가 들여온 ‘온주밀감’이다. 클립아트코리아

성직자 중엔 별도의 부캐(부캐릭터)를 갖고 타 분야에서 업적을 쌓은 이들이 있다. 세속의 욕망을 절제하는 삶인 만큼 전문적인 기술이나 지식을 갈고닦는 일이 활력소가 되는 듯하다. 사찰음식 대가 정관 스님이나 가톨릭 사제였던 현대 유전학의 아버지 그레고어 멘델이 대표적이다. 제주에 ‘온주밀감’을 들여온 성직자면서 식물학자인 에밀 타케 신부(1873∼1952)도 이 사례 중 하나다.

식민 지배와 전쟁 등으로 피폐하던 한반도에서 신앙에 앞서 중요한 숙제는 먹고사는 일이었다. 구한말 서구에서 건너온 신부·목사가 복음 전파와 함께 매달린 일도 농업 같은 생존기술을 서민에게 보급하는 것이었다. 성직자들은 학교를 세워 신학문을 가르치고, 새로운 농작물과 가축을 도입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섰다.

타케 신부는 오늘날 제주도를 ‘감귤 왕국’으로 만드는 데 공헌한 프랑스인 신부다. ‘온주밀감’ 묘목을 일본에서 가져와 제주에 심은 최초의 인물이다.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으로 1898년 조선에 건너온 그는 복음 전파와 교육 등에 헌신하는 한편, 제주에 자생하는 다양한 식물을 채집해 기록으로 남겼다.

난대성 식물인 귤나무는 제주도와 남해안 외 지역에서는 잘 자라지 않아 귤은 왕족이나 먹을 수 있는 귀한 과일이었다. 탐라국으로 불리던 제주에선 본토에 귤을 진상했고, ‘조선왕조실록’에도 제사와 손님 접대에 귤을 올렸다는 언급이 몇차례 나온다. 세종대왕은 궁궐 내 온실에서 기른 귤을 총애하는 후궁에게 줬다고 하며, 성균관에서는 시험을 치르고 귤을 상으로 주는 ‘황감제’라는 행사가 매년 열렸다.

하지만 산지인 제주에서 귤나무는 백성들의 고통을 가중하는 수탈의 대상이었다. 정약용의 기록에 따르면 공물을 담당하는 관원이 감귤이 익기 전에 개수를 세어놓고 그 양만큼 귤을 바치도록 했다. 비바람으로 낙과가 생기는 등 수량이 모자라면 돈을 들여 다른 곳에서 사 와야 했다. 횡포에 지친 농민들은 멀쩡한 귤나무를 말려 죽이거나 태우기도 했다.

토종 귤은 점점 귀해졌고 오늘날 그 자리를 대신한 게 재일교포들이 종자를 보내온 ‘온주밀감’이다. 씨가 없는 ‘온주밀감’의 원산지는 중국 저장성으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 일본 규슈에서 주로 재배된다.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재배된 시기는 한국전쟁(6·25) 이후이나 그 시작은 타케 신부가 들인 묘목 14그루다. 1911년 타케 신부는 일본에서 선교하는 위르뱅 포리 신부에게 왕벚나무를 보내고 ‘온주밀감’ 묘목을 받았다. 그는 제주 서귀포시 서홍동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면형의 집’에 나무를 심었다. 후일 ‘온주밀감’은 공물로 바쳐야 했던 애물단지가 아니라 농민들의 주소득원이 된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귤은 쌀보다 비싼 ‘귀한 몸’이었다. 귤나무를 키워 번 돈으로 자녀를 대학에 보낼 수 있어 ‘대학 나무’라는 별명도 붙었다.

수분이 많고 새콤달콤한 귤은 겨울 제철 과일이다. 간단히 까먹을 수 있는 데다 가격도 비교적 저렴하다. 비타민C가 풍부해 감기 예방에도 좋다. 껍질도 채 썰어 차로 끓이거나 청을 만드는 등 말 그대로 버릴 것이 없다. 또 제주 농민의 노력으로 품종개량을 거듭해 한라봉·천혜향·레드향 등 다양한 맛과 향으로 즐길 수 있게 됐다. 100여년 전 한 성직자가 심은 나무 몇그루가 오늘날 한 지역의 경제를 지탱하는 귀중한 선물이 된 셈이다.

정세진 맛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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