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층 아파트 속 ‘대동비’… 마을 ‘애물단지’ 전락 [문화재에 가려진 주민의 삶②]
주민들, 마을 개발 막는 흉물 취급... 500m 옆동네 개발 한창 ‘대조’

“주변을 한 번 둘러보세요. 전부 아파트입니다. 하지만 이 동네는 집도 마음대로 짓지 못하고 있어요.”
22일 찾은 평택시 소사동 12·15통 마을에 있는 경기도유형문화유산 제40호 ‘대동법 시행 기념비(이하 대동비)’.
문화유산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인적이 드물어 을씨년스러운 이곳엔 2m 넘는 정자 안에 대동비 비석 하나가 세워져 있고, 이를 설명하는 안내문 뿐이었다. 안내문을 읽어보지 않으면 문화유산이라고 보기 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대동비는 조선시대 충청지방에 대동법(공물을 쌀로 통일해 바치게 한 납세제도)을 확대·실시한 문정공 김육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1659년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세운 비석이다. 조선시대 서울을 떠나 충청지방으로 가기 위해 현 대동비가 있는 소사동을 거쳐야 하는 삼남대로 원형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경기도는 대동비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인정해 같은 해 1973년 6월 경기도 유형문화유산 제40호로 지정했다.
그러나 120여가구가 위치한 대동비 인근 소사12·15통 마을은 현재 육지 속 섬마을처럼 덩그러니 남겨졌다. 대동비가 도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 받은 이후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으로 묶이면서 개발에 빗겨나간 탓이다.
현재 소사12·15통 마을 반경 500m~1㎞이내에서는 소사2·3도시개발사업이 진행, 대동비와 마을은 아파트에 둘러싸이게 됐으며 대동비를 찾아가는 길 역시 차량 1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구불구불한 외길을 따라 마을로 진입해야 한다.
이곳에서 만난 지역 주민들은 대동비가 문화재가 아닌, 마을 개발을 가로막는 흉물이라고 지목한다. 대동비의 문화유산 지정 후 마을 주민들의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이 떠안는 실정이다.
소사12통 주민 A씨(70)는 “대동비가 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오래된 집을 새로 지으려 해도 제대로 짓지도 못하고 있다”며 “우리 마을이 대동비 문화재만 아니었다면 소사2·3지구가 개발될 당시 함께 개발됐을 수 도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서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재산권에 상당히 침해받고 있다. 주민들 사이에서 오죽하면 비석을 뽑아버리자는 말이 나오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재산권 침해 문제가 불거지면서 실제 비지정문화유산이 훼손되는 일도 일어나기도 했다.
대동비 인근에 위치한 ‘소사동 미륵’(15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을 토지주가 임의로 평택 내 다른 사찰로 옮겨버린 사건이 발생했다. 미륵불이 문화재로 지정돼 재산권을 침해받는 상황을 피하려는 의도였다.
심혜란 소사15통장은 “우리 마을 주민들은 ‘언제쯤이면 아파트에 고립된 상황에서 벗어날까’라는 하소연을 수십 년째 하고 있다”며 “평택은 각종 개발이 이뤄지는 반면, 우리에겐 그저 ‘그림의 떡’”이라고 호소했다.

경기도유형문화유산 평택 대동법 시행 기념비(이하 대동비)를 놓고 인근 주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날로 커가고 있다. 수십 년간 문화재 규제로 재산권 피해를 보다 ‘단비’ 같은 개발 소식이 들렸지만, 사업 방식을 놓고 소유주와 관할 지자체의 의견이 엇갈려 답보 상태에 놓이면서다.
대동비가 1973년 경기도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후 50년 넘게 이 주변 마을은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받고 있다.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 범위가 반경 300m로 지정, 대동비 주변 소사동 소사12·15통 마을은 각종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문화재 현상변경허가를 받아야 하는 등 행위 제한을 받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주민들은 인근 소사2·3도시개발사업이 완료돼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으나, 소사12·15통 마을은 개발에서 번번이 빗 껴갔다는 주장이다. 실제 대동비 인근에는 총 5천386가구 규모의 아파트 단지 4곳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이런 이유로 주민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가지게 된 배경이 됐다고 토로한다.
평택시는 이러한 대동비 주변 주민들의 재산권 피해 목소리에 기념비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문화재 인접 토지 매입 등을 통해 역사공원·도시개발을 계획했다. 소사동 462-1번지 일원 17만9천19㎡에 ‘가칭 평택 소사4지구 도시개발사업(이하 소사4지구)’을 추진하기 위해 2020년 3월 기본구상 및 타당성 조사 용역에 착수하는 한편, 이 일대를 개발행위제한구역으로 설정했다.
용역을 마친 시는 단독주택이 밀집한 소사12·15통 일대 마을에 대한 개발 타당성을 따지기 위해 2023년 12월 한국지방행정연구원(LIMAC)에 심사를 의뢰했고, 올 2월 심사가 완료됐다.
시는 이 과정에서 공영개발을 통해 소사4지구를 ‘환지방식 도시개발’로 하기로 했다. 환지방식은 도시개발사업에서 종전 토지소유권을 변화시키지 않고 새로 조성된 대지로 권리를 이전하는 방식을 뜻한다.
이후 사전 개발 수요를 알아보기 위해 7~9월 토지 등 소유자 171명에게 설문을 진행했지만, 31명만 찬성하고 92명은 반대한 것으로 조사됐다.
시는 낮은 찬성률을 근거로 사업성이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 관련 사업 진행을 중단한 상태다. 또 대동비 일대에 묶인 개발행위제한구역을 해제하는 작업도 함께 진행 중이다. 도시개발사업이 사실상 중단되면서 개발행위제한을 유지할 근거가 없어졌다는 이유다.
그러나 이 같은 결과가 도출되면서 주민들은 시가 계획한 사업 방식 배경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주민들은 토지와 지상물의 권리를 전부 매수하는 ‘수용방식 도시개발’을 원했다. 환지방식으로 추진될 경우 향후 토지 권리를 받게 되더라도 지금보다 적은 지분을 받게 돼 주민들의 재산권을 보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전문가들 역시 환지방식 도시개발사업은 오히려 사업을 지연시키는 주민 갈등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범현 성결대 도시디자인정보공학과 교수는 “도시개발사업은 속도가 관건이다. 환지방식은 향후 사업 후 지분을 소유주들에 나눠줘야 하는 이 과정에서 50%의 지분을 주는 한편, 서로 용도가 좋은 땅을 받기 위해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며 “반면 수용방식은 빠른 토지 확보 및 공공기여 확보에 이점이 있다. 공공이 주도하는 사업으로 계획했다면 수용방식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시 관계자는 “소사4지구는 공영개발로 계획했기 때문에 토지 보상 등 부담이 클 수 있어 환지방식으로 수요 조사를 벌인 것”이라며 “현 단계에선 대동비 주변을 그대로 존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존치 상황에서 새로운 활용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 관련기사 : 10년째 개발 표류… 오산 독산성에 묶인 ‘재산권’ [문화재에 가려진 주민의 삶①]
https://kyeonggi.com/article/20251221580213
박용규 기자 pyk1208@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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