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만필] 예측은 어렵고 나라는 위태롭다

작년 말, 황당한 계엄 선포 사태로 윤 전 대통령이 수감되고 정권이 바뀌었다. 사전에 정보가 있었다고는 하나, 사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일이었다. 비단 정권의 운명만이 아니다. 예측에 대한 인류의 학문과 이론도 실패를 거듭했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세계 현실에 대한 인류의 학문과 이론의 철저한 실패다. 역사 종언론, 문명 충돌론, 투키디데스 함정론, 서구소멸론 등 모두 예측에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중산층이 성장하면 교육의 확대와 함께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안착한다는 이론도 틀렸다. 계급 없는 사회주의 사회의 도래를 위해 사유재산 철폐가 필연이라던 주장 역시 중국의 사례를 보면 빗나갔다.
저명한 천문학자 칼 세이건조차 1995년 "사람들은 실제로 인터넷에 큰 관심을 두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최고의 석학도 틀리는 것이 예측이다. 뉴턴과 케인스마저 주식 시장 예측 실패로 파산한 경험이 있다.
이러한 예측 실패의 원인은 다양하다. 혹자는 인간 행동의 비예측성과 기술 혁신에 따른 의외성을 꼽고, 혹자는 '복잡계 시스템(Complex System)'의 특성이라는 어려운 용어를 들이대기도 한다. 인공지능(AI)은 사회가 수많은 구성 요소의 복잡한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져 있어, 개별요소만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새로운 특성과 질서가 나타나기 때문에 예측이 어렵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어딘지 뭔가 마뜩잖다. 인간 전문가들도 틀리는데 AI라고 특별한 해답이 있겠는가. 나는 인간의 불완전함과 비합리성이야말로 예측을 어렵게 하는 핵심 요인이라는 데 한 표를 던지겠다. 생각과 취향, 살아 온 궤적이 다른 인간들이 내리는 의사결정이 항상 합리적일 것이라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비도덕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행동을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호리오해(好利惡害), 즉 이익을 좋아하고 손해를 싫어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이익을 좇고 손해를 피하려는 단견(短見)은 필연적으로 신뢰 상실을 부르고,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는 공동체를 훼손한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재임 기간(1998~2005) 동안 '유럽의 병자'라고 불리던 독일 경제를 부흥시킨 개혁가였다. 그는 과도한 사회복지 비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이고 복지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수술했다.
개혁은 성공했으나 정작 그의 지지 기반이었던 사민당으로부터 배척받아 총선 패배와 함께 정권을 넘겨주어야 했다. 정권을 물려받은 메르켈 총리는 15년 이상 장기 집권했으나 지금의 평가는 다르다. 슈뢰더가 훨씬 잘했다는 것이다. 재집권에만 골몰했다면 슈뢰더의 개혁은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하지만 미래를 내다보는 예측에서만큼은 슈뢰더가 한 수 위였다
나보다는 나라, 개인보다는 공동체를 우선하는 결단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미래 예측은 어렵지만,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파악하는 것은 의외로 쉽다. 법치주의와 삼권 분립 등 헌법정신을 지키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공고화하여 급변하는 세상에서 살아남는 것이다.
우선 헌법부터 지켜야 한다. 국가의 근본 틀조차 지키지 않고서야 무슨 포용과 화합을 외칠 수 있겠는가. 검찰과 법원행정처 폐지, 내란 전담 특별 재판부 구성, 사실상 4심제인 재판소원제(裁判訴願制)와 판사를 처벌하는 '법 왜곡죄' 도입 등은 모두 헌법위반이다.
지금 우리는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 증오와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다. 80년 남북 대치도 모자라 내부 갈등에 휩싸여 있다. 아니 갈등도 부족해 서로를 절멸(絶滅)시키기 위해 혈안이다. 국민이 상식과 합리의 편에 서고 싶어도 상대방은 적의에 찬 눈을 부라린다.
복잡한 세상일은 어느 한쪽의 선의나 악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진영 논리는 늘 세상을 흑백으로 단순화한다. 그 와중에 나라는 위태로워진다. 진영 간 차이를 인정하면서, 칼자루를 쥔 사람들이 관용과 제도적 자제를 베풀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헌법과 삼권분립의 붕괴뿐이다.
링컨이 늘 강조했던 성경 구절이 있다. "스스로 분열된 집은 일어설 수 없다." 앞으로 더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것이다. 절제력을 상실한 권력을 막을 존재는 국민뿐이다. 깨어 있지 않으면 민주공화국은 사라진다.
이인재 전 파주시장
Copyright © 저작권자 © 중부일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