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안엔 오직 금동대향로뿐…1400년 전 '백제인의 우주'를 느끼다

성수영 2025. 12. 22.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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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부여박물관 '백제대향로관' 개관
전용관 건설에 211억 투입
향로 모양 본뜬 3층 구조 구성
벽면 따라 일체형 의자 배치
전용 음악·향기도 체험 가능
솟구치는 용·사냥하는 사람 등
백제인의 우주질서 세밀히 조각
표면의 금박이 청동 부식 막아
1400년 흘러도 보존 상태 최상
국립부여박물관이 국보 ‘백제금동대향로’(왼쪽) 한 점을 위해 지은 전용 전시관 백제대향로관이 23일 문을 연다. 지상 3층 규모인 이 건물에는 백제금동대향로를 사방에서 감상할 수 있는 전시실(오른쪽), 백제를 주제로 한 향과 음악을 체험할 수 있는 체험관 등이 마련됐다. /연합뉴스


7세기 중반 백제 수도 사비(부여). 신라·당나라 연합군의 공격으로 도시가 불길에 휩싸일 때 왕실 사찰을 지키던 누군가는 급히 땅을 파고 있었다. 국가적 보물인 금동대향로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는 향로를 나무 상자에 담아 진흙 구덩이에 넣고 기와를 위에 덮었다. 곧 돌아와 다시 향로를 찾겠다고 다짐하면서.

하지만 백제 멸망과 함께 그 약속은 잊혔다. 향로의 존재를 아는 사람도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향로는 1993년 부여 주차장 공사장에서 발견되기 전까지 1400년에 이르는 세월을 진흙에 묻혀 있었다.

한국사 최고 금속공예품이자 가장 드라마틱한 사연이 담긴 유물 중 하나로 꼽히는 국보 ‘백제금동대향로’. 23일 충남 부여 국립부여박물관에서 이 유물 한 점만을 전시하기 위해 지어진 백제대향로관이 문을 연다. 반가사유상 두 점과 공간만으로 국내외 관람객을 끌어모으는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의 ‘사유의 방’처럼 한국을 대표하는 유물과 전시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62㎝에 담은 우주

백제대향로관 건립에는 5년간 예산 211억원이 투입됐다. 유물 한 점을 위한 파격이지만 반대 목소리는 거의 없었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유물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높이 약 62㎝의 향로에는 백제인이 꿈꾼 우주의 질서가 층층이 쌓여 있다. 맨 아래 받침에는 물결을 헤치며 솟구치는 용, 그 위 몸체에는 활짝 핀 연꽃 모양이 조각돼 있다. 위쪽 부분인 뚜껑에는 겹겹이 쌓인 산봉우리가 펼쳐진다. 그 속에 사냥하는 사람, 휴식하는 동물, 악귀를 쫓는 괴수 등이 뒤섞여 있다. 그리고 맨 꼭대기엔 턱 밑에 작은 구슬을 괴고 세상을 굽어보는 봉황이 앉아 있다.

19명의 사람, 55마리의 실제 동물, 12마리의 상상 속 동물은 놀랍도록 세밀하게 조각돼 있다. 눈 코 입은 물론 악기와 이를 연주하는 손가락까지 보인다. 제작 후 140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음에도 정교한 디테일이 보존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표면에 얇게 입힌 금이 청동 부식을 막는 보호막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둘째는 산소가 거의 닿지 않는 축축한 진흙에 파묻혀 ‘천연 진공 포장’ 상태였다는 점이다.

이 향로는 백제 왕실 절이 있던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나왔다. 왕족의 명복을 빌기 위해서 정성을 다해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위덕왕(재위 554~598)이 전사한 아버지 성왕(재위 523~554)의 명복을 빌기 위해 제작했다는 의견도 있다. 백제 문화를 대표하는 이 작품의 보험가액은 500억원에 달하지만 숫자로 가치를 매기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귀중한 보물이다.

◇오감으로 느끼는 향로

전시관은 향로 구조를 본떠 3층으로 지어졌다. 향로 아랫부분에 있는 솟구치는 용처럼 관람객은 1층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가게 된다. 향로에 조각된 산의 곡선을 닮은 입구를 지나 255㎡ 규모 전시관에 들어서면 음악이 울려 퍼진다. 대향로에 조각된 다섯 악기를 사용해 제작한 음악이다. 대향로와 백제를 주제로 특별히 만든 향이 코를 간지럽힌다.

어두운 전시실 중앙에서 금빛을 뿜어내는 향로가 눈에 들어오는 건 그다음이다. 관람객은 사방에서 향로를 찬찬히 뜯어보며 감상할 수 있다. 벽체를 따라 자연스러운 곡선으로 내려오는 일체형 의자에 앉아 향로와 전시 공간을 함께 감상해도 좋다.

전시관 옆에 마련된 체험관도 알차게 꾸몄다. 향로에서 피웠을 법한 향을 맡아보거나 향로에 표현된 다섯 연주자의 악기 소리를 들어볼 수 있다. 향로 복제품을 만져보는 촉각 체험도 가능하다. 한쪽에는 부여 전망을 내려다볼 수 있는 큰 창문이 있다. 전시관 개관을 기념해 향로의 고화질 확대 사진과 함께 문답식으로 유물을 설명하는 해설서도 발간됐다. 박경은 부여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관람객이 향로가 품은 백제의 세계관을 오감으로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부여=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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