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소기업 임금격차가 부른 저출산 [라정주의 경제터치]
해법은 중소기업 근로자의 양육부담 경감
(시사저널=라정주 파이터치연구원장)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국제 비교 기준으로도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국가 간 출산율 비교가 가능한 가장 최근 연도는 2023년인데, 세계은행이 제공하는 세계개발지수(World Development Indicators)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23년 합계출산율은 0.721로 집계됐다. 이는 조사 대상 전 세계 국가 가운데 최저치다. 합계출산율이란 한 여성이 가임기간(15~49세) 동안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를 의미한다.
그런데 최근 들어 혼인과 출산 지표에서는 일시적인 반등이 관측되고 있다. 국가통계포털(KOSIS)의 인구동향조사에 따르면, 2024년 9월 혼인 건수는 1만8462건으로 전년 동월 대비 20.1% 증가했다. 이는 관련 통계가 집계되기 시작한 1981년 이후 9월 기준으로 가장 높은 증가율이다. 같은 달 출생아 수 역시 2만2369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8.6% 늘었으며, 이는 2020년 9월 이후 5년 만에 가장 큰 폭의 증가다.
다만 이러한 수치 개선을 구조적 반등으로 해석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미뤄졌던 혼인과 출산 수요가 한꺼번에 분출되며 나타난 '기저효과'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혼인과 출산이 장기적인 회복 국면에 진입했는지는 추가적인 관찰이 필요하다.
출산 증가 추세를 일시적 반등에 그치지 않고 지속 가능한 흐름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출산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요인을 점검하고 이에 대한 정책적 대응이 병행돼야 한다. 출산 결정에는 다양한 요인이 작용하지만, 최근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격차 확대가 출산율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실증 연구 결과가 제시됐다.
파이터치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인과관계 분석에 따르면, 대·중소기업 임금격차가 1% 확대될 경우 합계출산율은 평균 0.005명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6개국을 대상으로 2008년부터 2020년까지의 자료를 활용했으며, 계량경제학에서 인과성을 검증할 때 널리 사용되는 '도구변수 일반화 적률법(GMM)'을 적용했다.
이 같은 결과가 도출된 배경은 비교적 명확하다. OECD 국가들에서 대기업 근로자의 임금은 평균적으로 중소기업 근로자의 약 1.6배 수준이다. 임금 수준이 낮은 중소기업 근로자는 자녀 양육에 필요한 교육비, 주거비, 생활비 부담이 상대적으로 커 출산을 늦추거나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중소기업 근로자는 전체 근로자의 다수를 차지하는데, OECD 평균으로 약 60%에 이른다. 이 때문에 대·중소기업 임금격차가 확대될수록 사회 전체의 출산율은 구조적으로 하락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 연구 결과를 우리나라 상황에 적용해 보면 문제의 심각성이 더욱 분명해진다. 최근 10년간(2015~2024년) 우리나라의 대·중소기업 임금격차 증가율은 17.8%에 달한다. 이를 연구 결과에 대입하면, 임금격차 확대만으로도 출생아 수가 약 3만1467명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인과관계 분석의 신뢰성을 보완하기 위해 2011년부터 2024년까지 우리나라의 대·중소기업 임금격차와 합계출산율 간 상관관계를 살펴보면, 두 지표 사이에는 뚜렷한 반비례 관계가 확인된다. 대기업(종사자 300인 이상)과 중소기업(300인 미만) 간 월평균 임금격차와 출산율의 상관계수는 -0.8로, 임금격차가 확대될수록 출산율이 하락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게 나타난다. 이는 앞서 제시된 인과관계 분석 결과와도 일치한다.

이처럼 대·중소기업 임금격차 확대가 저출산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확인된 만큼, 이에 대한 정책적 대응이 요구된다. 그러나 임금격차를 정부가 직접 축소하는 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이에 따라 차선책으로 중소기업 근로자의 양육 부담을 직접 완화하는 정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첫째, 일정 금액의 대출을 급여에서 자동 상환하도록 고용주가 보증할 경우, 금융기관이 출산한 중소기업 근로자에게 저금리 대출을 제공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실제로 2020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arvard Business Review)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유사한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둘째, 중소기업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아동수당과 부모급여의 인상도 대안이 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만 7세 이하 아동에게 월 10만원의 아동수당을 지급하고 있으며, 부모급여로는 만 0세 아동에게 월 100만원, 만 1세 아동에게 월 5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저출산 문제는 단기 지표 개선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임금 구조와 노동시장 격차라는 근본적 요인을 직시하고, 출산과 양육의 부담을 실질적으로 낮추는 정책 설계가 병행될 때 비로소 출산율 반등의 토대가 마련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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