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하면 ‘핫이슈’가 된다…2025년 삼킨 ‘천의 얼굴’ [2025 올해의 연예 인물]

오유진 기자 2025. 12. 22.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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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캐릭터로 웃음 너머 세태를 건드린 코미디언
유튜브·OTT·지상파 넘나들며 ‘코미디언 출신 방송인’ 벽 깼다

(시사저널=오유진 기자)

올해의 인물에는 시대정신이 담겨있다. 2025년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판을 떠받치고 움직이는 인물들은 과연 누구이고, 무엇을 의미할까. 지금 한국을 움직인다는 말은 민심에 가장 빠르고 예민하게, 그리고 국민이 가장 크게 원하는 방식으로 반응한다는 뜻이다. 그 역동적인 에너지의 흐름을 면밀히 읽어낼 수 있다면 우리는 시대적 요구를 파악할 수 있다. 무엇보다 여기에는 대한민국의 희망과 과제들이 담겨있다. 

대한민국을 관통하는 도도한 민심의 흐름과 시대정신을 보여주는 인물들을 살펴보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그리고 그 과정은 시대상을 담아내는 일이다. 시사저널이 1989년 창간 이후 37년째 '올해의 인물'을 선정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시사저널은 독자들의 설문조사, 편집국 기자들의 투표 등을 토대로 심층적인 검증과 토론을 거쳐 올해의 인물을 선정했다. 

'핫이슈지'. 핫 이슈가 있는 곳에 이수지가 있고, 이수지가 있는 곳에는 또 다른 화제가 피어오른다. 이수지의 유튜브 채널명 '핫이슈지'는 올해 그녀를 설명하는 가장 직관적인 키워드다. 대치동에서 어린 자녀를 키우는 엄마 '제이미맘'부터 공동구매 인플루언서 '슈블리맘', 요가 강사 '재클린', 래퍼 '햄부기'까지. 올해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군 이슈의 한복판에는 늘 그 이면을 날카롭게 풍자하는 이수지가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사저널이 '올해의 연예 인물'로 이수지를 지목한 배경이다.

ⓒ씨피엔터테인먼트

이수지식 풍자, 한국 사회의 거울이 되다

이수지의 유튜브 채널 소개란에 적힌 문구는 'THE ALT WORLD OF LEE SUJI'. 이수지는 올해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부캐(부캐릭터)'를 쏟아내며 자신만의 독보적인 세계관을 구축했다. 지난해 12월 출발한 '핫이슈지' 채널은 각각의 캐릭터가 겹치지 않는 서사와 꼼꼼한 디테일로 주목받으면서 캐릭터별 팬덤을 형성했다. 핫이슈지는 유튜브 코리아가 12월3일 선정한 '올해 최고 인기 크리에이터' 2위에 오르며 대중성과 화제성을 동시에 입증했다.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킨 캐릭터는 '대치동 제이미맘'이다. 대치동 엄마의 일상을 패션부터 말투까지 '하이퍼 리얼리즘'으로 복제해,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제이미맘이 착용한 몽클레어 패딩, 고야드 가방, 헬렌카민스키 모자, 에르메스 슬리퍼 등 명품 아이템들이 영상 공개 이후 중고 거래 플랫폼에 줄줄이 등장한 건 이 캐릭터의 파급력을 설명하는 단적인 사례다. 학원가 인근에서 아이를 등하교시키는 모습,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 쓰며 자녀의 영어 실력을 키우려 애쓰는 장면, 경쟁하듯 과외교사를 채용하는 풍경 등은 네티즌들에게 폭발적인 공감을 끌어내며 조회 수 800만 회를 넘어섰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공동구매로 물건을 판매하는 인플루언서 '슈블리맘' 역시 인플루언서 시장의 정곡을 찔렀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시간 방송에서 효능이 검증되지 않은 고가의 제품을 그럴듯한 말로 포장해 판매하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익숙함과 불편함을 동시에 자아낸다. 최근에는 먹방(먹는 방송)과 랩을 결합한 캐릭터 '햄부기'로 변신해 디지털 음반을 직접 발매하는 등 콘텐츠 간 경계를 허물며 가수 영역까지 활동 반경을 넓혔다.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이수지는 독보적인 캐릭터 구현 능력으로 사회 현실을 반영한 세태 풍자까지 이어지는 영역을 개척한 코미디언"이라며 "웃음을 주는 차원을 넘어 세태를 꼬집는 메시지까지 담아내면서 코미디 영역에서 더욱 고차원적인 시도를 가능하게 했다"고 평가했다.

이 외에도 벼락을 맞은 무속인 '백두장군', 국내 펜션 업계의 추가 요금 관행을 꼬집는 펜션 사장, MZ세대 교포를 흉내 낸 '제니', 감성적이고 여성적인 면모를 강조한 '에겐녀 뚜지', 랑데뷰 미용실 원장 등 나열하기조차 벅찰 만큼 다양한 캐릭터가 이수지의 손에서 탄생하고 있다.

쿠팡플레이 예능 《자매다방》 스틸컷 ⓒ쿠팡플레이

무대 위 조연에서 콘텐츠의 중심으로

유튜브를 넘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와 지상파 프로그램에서도 이수지의 존재감은 뚜렷하다. SBS 《마이턴》에서는 특유의 부캐 창작 능력을 앞세워 페이크 리얼리티쇼의 중심축 역할을 맡았다. 가상의 트로트 아이돌 데뷔를 꿈꾸는 탁재훈, 추성훈, 박지현, 김원훈, 남윤수 등 남성 출연자들 사이에서도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며 연이어 웃음을 터트린다. 탁재훈은 제작발표회에서 "우리와 섞이면 진짜 이수지를 잊어버릴 정도"라며 완벽한 호흡을 인정하기도 했다. 쿠팡플레이 시리즈 《직장인들》에서는 당당한 '돌싱(돌아온 싱글) 과장'으로 변신해 직장인들의 현실 공감과 웃음을 동시에 끌어냈다.

그녀의 노력은 시상식에서도 찬란하게 빛났다. 백상예술대상과 청룡시리즈어워즈 예능상을 잇따라 휩쓸며 명실상부한 '예능 퀸' 입지를 굳혔다. 2025 브랜드 대상에서도 '올해의 여자 핫아이콘' '올해의 여자 연예인 유튜버' 2관왕을 차지하며 '이수지'라는 이름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 잡았음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이수지의 성공은 단기간에 이뤄진 게 아니다. 이수지는 2008년 SBS 공채 10기 개그맨으로 데뷔했지만, 본격적으로 대중의 주목을 받은 것은 2013년 KBS 《개그콘서트》의 인기 코너 '황해'를 통해서였다. 독보적인 아줌마 연기와 보이스피싱 조직원을 풍자한 연기는 당시 전 국민이 이수지의 어투를 따라 할 정도로 강한 인상을 남겼고, 오늘날 이수지표 '풍자 코미디'의 토대가 됐다.

쿠팡플레이 예능 《자매다방》 스틸컷 ⓒ쿠팡플레이

2020년 《개그콘서트》가 잠정 폐지된 이후에는 쿠팡플레이 코미디 쇼 《SNL 코리아》에서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았다. 정신과 전문의 오은영 박사를 패러디한 '오흔영 박사', 친절한 말투로 고객을 대하는 듯하면서도 고객에게 고가의 시술을 유도하는 성형외과 상담실장 캐릭터를 비롯해 배우 김고은, 송혜교 등 마치 실존 인물을 옮겨놓은 듯한 연기로 화제를 모았다.

그녀의 성공이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지상파 공채 출신 코미디언이 일반 방송인으로 자리 잡은 희귀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공채 코미디언이 일반 방송인으로 성공한 인물은 자타 공인 국민MC인 유재석 정도가 유일하다. 코미디언이 유행어와 특정 캐릭터로 한순간 소비되는 것과 달리, 이수지는 코미디언의 탈을 벗고 어느 무대에서든 콘텐츠를 능수능란하게 이끄는 방송인이자 크리에이터로 성장했다.

남성 위주의 코미디 생태계에서 '조연'에 머무르지 않고 자력으로 '주연'을 꿰찼다는 점도 의미가 깊다. 남성 분장도 불사하며 팔색조 매력을 드러낸 이수지가 '코미디언 출신 방송인'의 독보적 위치를 지켜온 유재석의 계보를 잇는 인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업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하재근 국제사이버대 특임교수는 "개그 무대에서 주목받던 코미디언이 전 국민이 아는 스타 방송인으로 성장하는 사례는 굉장히 드문데, 이수지가 촌철살인의 풍자 개그로 화제를 모으면서 모두가 아는 스타 방송인으로의 성장을 이뤄냈다"며 "올해 그 인기가 정점에 오른 만큼, 향후 이 위치를 언제까지 유지하게 될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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