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과 ‘헤어질 결심’··· 탈팡 한 달 체험기

김은지 2025. 12. 22.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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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쿠팡은 단순한 쇼핑 플랫폼을 넘어 ‘일상의 안전장치’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한 달간의 쿠팡 디톡스는 생각보다 불편함이 적었고, 어떤 면에선 자기효능감까지 느끼는 과정이었다.
12월11일 오전 수도권 한 아파트 현관 앞에 쿠팡 로켓 프레시 가방이 놓여 있다.ⓒ시사IN 조남진

새벽배송 논란이 극에 달했던 한 달 전, 차마 끊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던 쿠팡 와우 멤버십을 드디어 해지했다. 마치 사람의 눈을 피해 요리조리 숨겨놓은 것 같은 ‘탈퇴’ 버튼을 간신히 찾아 눌렀지만, 애플 케어 결제 시스템 때문에 해지 처리에 며칠이 걸린다는 안내를 받았다. 어쩐지 이상했다.

대안학교에서 오랜 시간 교사로 지냈다. 이후 소수자와 약자, 노동자를 대변하겠다는 진보정당 보좌진으로 근무했다. 지금은 차별 없는 안전한 관계망을 지향하고 대안적인 삶을 모색하려 노력하는 공동체인 우리동네 나무그늘 협동조합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이처럼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꾼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노동자들의 새벽잠 앞에서는 질끈 눈을 감았다. 쿠팡 와우 멤버십 회원이었던 나는 월 7890원만 내면 로켓배송, 새벽배송, 당일배송을 무료로 받을 수 있었다. 자정 전까지만 주문하면 다음 날 아침 필요한 물건이 문 앞에 놓였다. 새벽바람이 스민 눅눅한 택배 상자를 들고 집으로 들어올 때면, 누군가의 노동강도와 위험을 바탕으로 내 일상이 유지된다는 사실이 떠올랐지만 애써 모른 척했다. 쪼들리는 삶 속에서 그런 불편한 현실까지 정면으로 바라보기엔 여유가 너무 없었다.

주머니는 가볍고 시간은 빠듯한 내게 쿠팡은 단순한 쇼핑 플랫폼을 넘어 ‘일상의 안전장치’ 같은 존재였다. 바쁜 일상에 쫓겨 살림을 챙기지 못해 세면대가 막혀도 클릭 한 번이면 해결됐다. 내일 아침 눈을 뜨면 우리 집 현관문 앞에는 막힌 세면대를 뻥 뚫어줄 ‘트래펑’이 도착해 있을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이 있었다. 쿠팡을 쓴다는 건 집에서 20~30분은 족히 걸어야 하는 망원시장에 가서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데친 고사리를 찾아 헤맬 필요도 없고, 채소 가게 서너 곳을 들러 어디가 가장 저렴한지 비교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가벼운 주머니를 인식하지 않으면서도 시간은 저축하고 삶의 안도감은 얻을 수 있는 것. 대안적인 삶을 지향하고 진보 운동을 한다면서도 끝내 쿠팡을 끊을 수 없는 이유였다.

각종 배달 앱은 오래전에 삭제했고, 파리바게뜨나 배스킨라빈스도 몇 년째 가지 않지만 불편함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쿠팡은 달랐다. 마치 오래 사귀다 헤어진 연인처럼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 잊을 만하면 떠올랐다. 핸드폰 화면 정중앙에 있던 쿠팡 앱을 삭제하고 계정까지 탈퇴했는데도 쿠팡은 도처에서 자신을 잊었느냐 되물었다. 늦은 밤, 침대에 누워 만보기 앱 ‘캐시워크’을 열고 포인트를 받기 위해 화면을 누르다 보면 곧이어 쿠팡 광고창이 불쑥 떴다. 중고거래 앱 ‘당근마켓’을 이용하다 보면 ‘우리는 새 상품이 최저가’라며 속삭였다. 어디를 가든 쿠팡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건 안 쓰면서 쿠팡은 쓴다고?”

그렇게 쿠팡을 끊은 지 꼬박 한 달이 지난 지금, 막상 끊고 나니 생각보다 별것 아니었다는 사실이 멋쩍다. 오히려 괜찮기까지 하다. 가장 크게 달라진 건 소비가 눈에 띄게 줄었다는 점이다. 일상적으로 구입하던 식재료와 생필품부터, 큼직하게는 휴대폰·노트북·냉장고와 같은(이런 것까지 쿠팡에서 사다니!) 큰 가전까지. 이제껏 쿠팡에서 살 수 있는 것은 죄다 쿠팡으로 샀다. 오랜 시간 고민해 계획한 소비도 있었지만, ‘네 개 사면 3400원 절약’ 같은 문구에 현혹되어 언젠가 쓰게 될 예비 소비 물품을 저렴하게 구입하는 거라며 합리화하는 소비가 나날이 늘었다. 그 덕에 다용도실 창고엔 뜯지도 않은 커피 필터 100개짜리 4세트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원두 그라인더, 유통기한을 훌쩍 넘긴 샴푸, 바싹 말라버린 대체육 등이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쿠팡을 끊은 뒤 필요한 만큼만 사게 되는 습관이 생긴 것도 큰 변화 중 하나다. 이전에는 ‘어차피 다 쓸 텐데 저렴하게 사면 좋지’라는 핑계를 앞세워 청소용 롤러 테이프는 10개들이로 사고, 세탁세제는 2.3L 대용량으로 샀다. 요거트는 1.8L, 달걀은 30구가 기본이었다. 무거워도 가벼워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내일 아침이면 문 앞에 도착해 있을 테니까. 그 택배를 누가 언제 가져다 두는지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젠 현관문 너머 도착한 물건 뒤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모른 척하지 않는다. 스스로 들 수 있을 만큼만 장을 보고, 로켓 프레시(신선식품을 빠르게 배송하는 로켓 와우 서비스) 최소 비용 1만5000원을 채우기 위해 억지로 끼워서 사지 않는다. 필요한 게 무엇인지, 가지고 있는 것 중 대체할 수 있는 건 없는지, 내가 정말 원하는지 감각적으로 느끼고 그에 맞게 계획하는 소비로 바뀌어가는 중이다.

평소 외식보다 직접 만들어 먹기를 선호하는 편으로, 식사 약속이 있을 때는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요리를 대접하는 일이 잦다. 예전 같았으면 약속 하루 전날 쿠팡에서 각종 채소와 메인 재료를 샀을 테지만 ‘탈팡’ 이후엔 냉장고에 어떤 재료가 있는지부터 살핀다. 최대한 있는 식재료를 중심으로 메뉴 구성을 하게 되는데, 냉장고에 가장 크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김치를 털어 먹는 재미가 있다. 누구에게, 언제 받았는지 아득한 잘 익은 묵은지를 이용해 김치찜을 한 솥 끓이고, 깨끗하게 씻어낸 묵은지를 들기름에 볶아 만든 주먹밥도 맛이 좋다. 친구 어머니께 받은 열무김치로 10분 만에 김치말이국수를 만들어 내거나, 삶은 당면에 김치를 넣어 국간장 한 스푼 둘러 내니 그럴싸한 요리가 된다. 이렇게 김치로 할 수 있는 요리란 요리를 죄 하다 보니 커다란 통에 가득 차 있던 김치가 어느새 반쪽만 남아 작은 통으로 옮겼다. 이중 삼중으로 쌓여 있던 김치통을 정리하니 어둑하던 냉장고가 훤해졌다. 냉장고를 바꾼 지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남는 공간이 생겼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쿠팡에서 클릭 한 번으로 나의 필요를 채우며 살았다. 대신 빠른 배송에 익숙해지면서 삶의 리듬도 그 속도에 길들여졌다. 뭔가 필요하면 즉시 사고, 그 즉시성이 일상의 기본 속도가 됐다. 주문한 물건이 예정일보다 하루만 늦게 와도 짜증이 치밀었다. 어릴 적 펜팔이나 소포를 기다리면서 설렘을 느끼던 때도 있었던 것 같은데, 언제부턴가 기다림이라는 것 자체를 견디기 힘들어하고, 일처리가 제대로 안 되고 있는 증거라는 식의 부정적 시선으로만 보고 있었던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클릭하는 대로 소비하지 않고, 도착하는 대로 사용하지 않게 되면서 내게 맞는 리듬과 속도를 찾고, 기다린다는 것을 감각할 수 있음이 꽤 즐거운 요즘이다.

사실 쿠팡을 끊고서 가장 만족하는 것은 늘 마음 한편에 품고 살던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노동자의 생존권 보장을 위해 SPC 빵은 불매하거나, 전쟁무기 지원을 하는 기업들의 제품은 가급적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나의 편리함을 위해 저임금 노동을 아무렇지 않게 소비한다는 사실과, 그 죄책감을 애써 무력하게 덮고 살아온 시간에서 벗어났다는 해방감은 생각보다 훨씬 컸다. 지인으로부터 “엥? 다른 건 안 쓰면서 쿠팡은 쓴다고?” 하는 의아함 가득한 한마디에 얼굴에 파스를 뿌린 것처럼 화끈거렸던 부끄러움 역시 닦아낼 수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쿠팡만은 절대 끊을 수 없다는 염려와 달리, 한 달간의 쿠팡 디톡스는 일상의 소소한 변화를 가져다주었을 뿐 삶이 크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계획된 소비를 하게 됐고, 빠른 리듬의 일상에서 한걸음 멀어졌다. 생각보다 불편함은 적었고, 어떤 면에선 자기효능감까지 느끼기도 했다. ‘탈팡’ 한 달째, 공교롭게도 국내 최대 규모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했다. 난 이미 쿠팡을 해지했음에도 불구하고 3370만명의 유출 해당자 중 한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탈팡’까지의 과정을 회고하며 손해배상 소송 참여 신청을 마쳤다. 여러모로 헤어지기에 딱 좋은 날이다.

김은지 (우리동네 나무그늘 협동조합 이사장)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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