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되살아나는 날’…붉은 기운 싹튼 ‘동지’

이휘빈 기자 2025. 12. 2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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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선 새해로 여겨 ‘작은 설’이라 불러
팥죽 뿐만 아니라 전약·귤·냉면 별식
“헌 것 보내고 새 것 맞이” 의미 담아
24절기 중 스물두 번째 절기인 동지(冬至)는 태양이 다시 길어지기에 중요한 기점으로 여겼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클립아트코리아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은 날, 동지(冬至)가 찾아왔다. 22일 동지는 24절기 중 스물두번째 절기로, ‘대설’과 ‘소한’ 사이에 들어있다. 민간에서는 이날을 ‘작은 설(아세·亞歲)’이라 부르며 태양의 부활을 알리는 중요한 기점으로 여겼다. 동지에 담긴 조상들의 흥미로운 풍습, 현대적 의미를 짚어본다.

◆태양 다시 길어져 ‘설날’로 여겨=동지는 태양의 황경이 270도에 이르는 때다. 북반구에서는 태양의 남중 고도가 1년 중 가장 낮아 밤이 가장 길고 낮은 가장 짧다. 옛 중국의 고서 ‘역경(易經)’에서는 새해의 첫달을 동지가 들어있는 음력 11월로 지정했는데, 이는 동지가 단순히 ‘밤이 긴 날’이 아니라 ‘태양이 죽음에서 부활해 다시 생명력을 얻는 날’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천문학적 배경 때문에 옛사람들은 동지를 사실상 새해 시작으로 봤다. “동지를 지나야 한 살 더 먹는다”는 옛말이나 동지팥죽에 자기 나이만큼 새알심을 넣어 먹는 풍습은 모두 동지를 ‘작은 설’로 여기던 인식에서 비롯됐다.

왕실에서 동지에 먹었던 ‘전약’과 서울로 진상되는 제주 감귤. 궁중병과연구원, 클립아트코리아

◆팥죽 말고도 다양하게 먹었어요=흔히들 동지에는 팥죽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팥을 활용한 팥떡과 팥시루떡, 팥밥을 먹거나 별식으로 대체하기도 했다. 

별식 가운데 하나로, 조선 왕가에서 의약을 담당하던 내의원은 ‘전약’이라 불리는 특별한 약식(藥食)을 만들었다. 음식이면서도 보양의 기운을 지닌다고 여겨져 ‘약’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전약은 소의 다리와 가죽, 소머리를 푹 고아낸 뒤 생강·정향·후추·청밀·대추 등 약재를 꿀과 함께 넣어 끓이고, 이를 기름에 굳혀 완성했다. 따뜻한 성질을 지닌 이 음식은 몸의 기운을 북돋고 보호하는 효능이 있는 것으로 믿었다.

조선시대 기록인 ‘동국세시기’와 ‘어제갱화첩’에 따르면 제주 목사는 동지 무렵에 특산물인 귤을 서울로 진상했다. 상감은 종묘에 귤을 올려 제사지내고, 제주사람을 향해 공로를 치하하고 위로하였다. 이후 기념으로 과거를 시행했는데 귤로 치르는 과거라 하여 황감제(黃柑製)라 불렀다.

현대에는 여름에 먹는 음식이지만 냉면 역시 동지에 자주 먹는 별식이었다. 이외에도 비빔국수를 먹기도 했는데 당시에는 ‘골동면’이라고 불렀다.

◆나쁜 기운 몰아내기 앞장서=동지의 상징인 팥죽은 액운을 막는 주술적 도구이기도 했다. 우리 조상들은 팥의 붉은색이 ‘양(陽)의 에너지’를 상징해 음(陰)의 기운인 귀신이나 질병을 쫓아낸다고 생각했다.

중국 ‘형초세시기’에 전해오는 설화에 따르면 공공씨의 망나니 같은 아들이 동짓날 죽어 역질(전염병) 귀신이 됐는데 그 아들이 생전에 팥을 가장 무서워했기에 동짓날 팥죽을 쑤어 귀신을 쫓았다고 한다. 조상들은 팥죽을 쑤면 먼저 사당에 올린(동지고사) 뒤 방, 마루, 장독대, 헛간 등 집안 곳곳에 뿌리며 가족의 건강과 평안을 빌었다.

또 부적으로 ‘뱀 사(蛇)’를 써서 벽이나 기둥에 거꾸로 붙이면 악귀가 들어오지 못한다고 믿었다. 계절적으로 추워야 하는 시기인데 혹여라도 동지에 일기가 온화하면 다음 해에 질병이 많이 번진다고 믿어 걱정하기도 했다. 인근에 있는 사찰을 찾아 제사를 올리기도 했는데 이를 ‘동지불공’이라고 불렀다.

조선시대에는 왕실에서 신하들에게 달력(책력)을, 민가에서는 며느리가 집안 어른들에게 버선을 선물했다. 사진 왼쪽은 ‘경진년 대통력’ . 우리역사넷, 클립아트코리아

◆달력 버선 나누며 새해 준비=동지는 조선시대 왕실과 민가에서 선물을 주고 받는 기념일이기도 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동지책력’이다. 왕은 관상감에서 만든 이듬해 달력(책력)을 신하들에게 하사했는데 이를 ‘동문지보’라는 옥새를 찍어 나눠줬다. 농경사회에서 24절기와 날씨 정보를 담은 달력은 농사 성패를 좌우하는 귀한 정보가 있는 만큼 다들 귀히 여겼다.

민가에서는 며느리가 시어머니나 시할머니 등 집안 어른들에게 버선(동지헌말)을 지어 바쳤다.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동지 기운을 받아 어른들이 무병장수하기를 기원하는 효심이 담겨 있다.

◆옛날에도 ‘갓생살기’는 동지부터=조상들에게 동지는 ‘헌 것을 버리고 새것을 맞이하는 의미’인 만큼 다들 각오를 품었다. 사람들은 이날 밀렸던 빚을 갚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으며 생활을 넉넉하게 하고자 힘썼다. 그래서 “동지에는 팥죽을 열두 그릇 먹고 나무도 열두 지게 해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

현대의 동지는 대체로 크리스마스 무렵이라 팥죽을 먹거나 종교시설에서 나눔을 준비하는 시기로 변화했다. 올해는 연말에 젊은 사람들이 연말부터 다이어리를 사거나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모습을 인증하는 등 ‘갓생살기’가 유행이다.

이번 동지는 가족과 팥죽을 먹으며 2026년에 무엇을 이룰지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태양이 다시 살아나는 오늘, 우리네 마음에도 항상 볕이 들기를 바라 본다.

◇도움말=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누리집, 24절기 이야기, 궁중병과연구원, 우리역사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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