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터) 심하전투를 아시나요

이용규 2025. 12. 21.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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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간의 임진왜란은 동아시아 3국인 조선과 명나라, 일본 3개국의 운명을 뒤바뀌었다.

친명 위주의 명분으로 조선의 위정자들은 명나라에 파병을 결정하고 전라도 2천500명을 포함해 전국에서 총 1만 7천646명을 동원했다.

명나라 지휘부는 조선 군사들의 이동 속도를 내도록 식량은 모두 버리게까지 했다.

쿠데타로 즉위한 인조는 조선 군사들의 심하전투를 외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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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규 신문디자인국장
조선·명나라 연합군과 후금과의 전투를 담은 지난 2015년 MBC에서 방송된 드라마 '화정'의 한장면. MBC제공

7년간의 임진왜란은 동아시아 3국인 조선과 명나라, 일본 3개국의 운명을 뒤바뀌었다. 조선은 다시 정묘, 병자호란의 치욕을 당한다. 명나라는 후금에 대륙의 지배권을 내놓게 된다. 일본은 에도막부의 문을 열었다. 만주에 흩어져 살던 부족을 통합한 여진의 추장 누르하치는 1616년(광해군 8년)에 후금을 세우고 명나라와 전쟁에 나섰다. 친명 위주의 명분으로 조선의 위정자들은 명나라에 파병을 결정하고 전라도 2천500명을 포함해 전국에서 총 1만 7천646명을 동원했다. 이들은 1619년 2월1일 허리춤까지 차는 물속을 뚫고 압록강을 건넸다. 출발 당시에는 10일분 군량, 조총, 침냥, 거마작, 대포 등 군장을 갖췄다. 명나라 지휘부는 조선 군사들의 이동 속도를 내도록 식량은 모두 버리게까지 했다. 굶주림 속에서 압록강을 건넨 군사들은 사르흐에서 후금과의 전투를 치른다. 한국에서는 심하전투 또는 부차전투로 칭한다. 살아남은 조선군은 1천400명에 불과했다. 도원수 강홍립은 후금에 투항하고, 명나라 신종 황제는 은괴 포상과 제문을 보내 전사자들을 추모했다.

심하전투는 약소국 민초의 아픔이 자리잡고 있다. 민초들은 광해군의 국제정세를 꿰뚫어본 실리 중심의 외교와 임란때 군대를 파병해준 명나라를 도와야 한다는 신의를 중시하는 성리학 대신들과의 헤게모니 싸움에 떠밀려, 결국 남의 나라 전쟁터에서 결초보은의 영령이 되었다. 전쟁의 대가를 치른 군사들은 그 이름마저도 기억되지 않고 역사속에서 희미하게 사라져 갔다. 쿠데타로 즉위한 인조는 조선 군사들의 심하전투를 외면한다. 명나라 신종 황제가 전사자 가족에게 보낸 포상 은덩이와 제문 등도 전달하지 않았다. 냉엄한 세계사의 한복판에서 약육강식의 국제질서는 약소국가들의 아픔을 실감한다.

최근 영광에서 열린 정묘·병자호란 시기 영광군민의 국난 극복 참여 세미나는 잊어버려선 안되나, 잊혀져가는 역사를 다시 되볼아보는 귀한 시간이었다. 아쉽게도 영광군수, 군의장, 군의원은 한 명도 참석치 않았다. 부군수도 군수를 대신해 축사만 하고 군 관계자들은 모두 빠져나갔다. 오히려 방청객석은 자리를 뜨지 않고 지역의 역사를 하나라도 배우고자 하는 열기가 높았다. 400년전 나라를 위한 민초들의 정충보국의 정신이 혹여 잊혀질까 두렵다. 영광출신 심하전투 참전 병사 명단 발굴과 추모비 건립 등을 제안한다.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된다.

이용규 신문디자인국장 hpcyglee@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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