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트리’ 나무가 한국 고유종이라고?[에코피디아]

이태형 2025. 12. 21.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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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지구상의 총생물종은 약 3000만종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인구 증가와 야생동식물의 남획, 각종 개발 및 환경오염 등으로 자연 서식지의 파괴에 따라 매년 2만5000종에서 5만종의 생물이 멸종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생물종의 감소는 이용할 수 있는 생물자원의 감소뿐만 아니라 먹이사슬을 단절시켜 생태계의 파괴를 가속합니다. 올해는 1995년 1월 1일 국내에서 생물다양성협약이 발효된 지 30년이 됩니다. 동식물을 아우르는 종 다양성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하지만 알지 못했던 신기한 생태 이야기를 ‘에코피디아(환경 eco+사전 encyclopedia)’란을 통해 국립생태원 연구원들로부터 들어봅니다. [편집자주]

국립생태원 한반도숲 구상나무 군락 입구[국립생태원 제공]

이제 곧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크리스마스입니다. 집집마다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며 연말을 기념하곤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크리스마스트리로 사용하는 나무가 사실은 우리나라의 고유종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이 나무는 1907년 프랑스 신부 에밀 타케와 위르뱅 포리가 제주도에서 처음 채집했고, 이후 1920년 어네스트 헨리 윌슨이 신종으로 명명하여 세상에 알린 구상나무(학명 Abies koreana)입니다.

미국과 유럽으로 건너간 구상나무는 곧 최고의 크리스마스트리로 각광받기 시작했습니다. 하늘 높이 솟는 일반 전나무와 달리 실내에 두기에 적당한 아담한 키와 원뿔 모양의 균형 잡힌 수형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특히 잎 뒤에 숨겨진 은백색 기공선은 조명을 받으면 마치 눈이 내린 듯 반짝이고, 잎이 부드러워 아이들이 만져도 안전하다는 점이 큰 매력이었습니다. 베어낸 뒤에도 오랫동안 푸르름과 향기를 유지하는 강인함 또한 서구권 사람들을 충분히 매료시킬 만했습니다.

구상나무는 한라산, 지리산, 덕유산 등 해발 1,000m 이상의 아고산지대에서만 자생합니다. 잎은 길이가 짧고 도톰하며 가지를 중심으로 둥글게 돌려나 있는데, 이 모습이 마치 가시를 곤두세운 성게와 흡사합니다. 그래서 제주 방언으로 성게를 뜻하는 ‘쿠살’과 나무를 뜻하는 ‘낭’을 합쳐 ‘쿠살낭’이라 불렀고, 여기서 구상나무라는 이름이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구상나무는 한반도의 자연사를 증명하는 살아있는 화석이자 소중한 유산입니다.

한라산 백록담의 구상나무[국립생태원 제공]

그러나 지금 구상나무 숲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그리 밝지 않습니다. 2024년 9월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라산의 구상나무 숲 면적은 지난 100년간 48%나 감소했습니다. 숲의 푸른 나무들이 하얗게 말라 죽어가고 있는데, 이는 단순한 자연의 순환을 넘어선 기후 위기의 명백한 신호입니다. 겨울철 적설량 감소로 인한 수분 부족, 그리고 여름철의 폭염과 잦은 태풍은 구상나무가 버티기에 너무나 가혹한 환경을 만들고 있습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구상나무를 절멸 가능성이 매우 높은 멸종위기종(EN)으로 지정한 것도 이러한 위급함을 경고하기 위함입니다.

이에 국립생태원은 구상나무를 보전하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고온 스트레스 반응 유전자를 규명하고 분비나무와 구상나무를 구분하는 분자 진단 기술을 개발하는 한편, 대표목 유전자 지도를 제작하고 배아줄기세포를 배양하는 등 유전자원 확보 및 육종 연구에 힘쓰고 있습니다. 또한 구상나무 종자를 대량 파종해 개체수를 늘리고, 이를 국립생태원 한반도숲 구상나무 군락에 심어 전시함으로써 자생지 외 보전과 대국민 기후위기 인식 제고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라산에서 죽어가고 있는 구상나무 군락[국립생태원 제공]

구상나무의 위기는 우리나라만의 국지적인 문제가 아니라 전 지구적 기후 시스템 붕괴의 전조입니다. 지금 구상나무의 죽음은 탄소 배출을 줄이고 기후 행동에 당장 나서라는 자연의 엄중한 경고와도 같습니다. 과학적인 모니터링과 복원 기술 개발이 현재 상황을 파악하고 대처하는 ‘진단’이라면, 우리의 생활 방식을 바꾸고 기후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근본적인 ‘예방책이자 치료제’가 될 것입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반짝이는 화려한 장식으로 둘러싸인 트리 앞에서 잠시 구상나무를 떠올려 보시기를 권합니다. 하얗게 죽어가는 구상나무는 우리에게 “지구는 인간만이 사는 행성이 아니야”라는 다잉 메시지를 남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구상나무가 사라진 크리스마스는 우리에게 축복이 아닌 슬픔이 될 것이기에 우리는 지금 행동해야 합니다. 겨울 숲의 매서운 바람과 눈을 견디며 꼿꼿이 서 있는 구상나무가 다음 세대에도 한반도의 푸른 숲으로 남을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국립생태원 한반도숲 구상나무 식재 행사[국립생태원 제공]

이수창 국립생태원 자생식물생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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