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로 수출된 ‘K범죄자’…화성연쇄살인 이춘재 표지로 쓴 한국 소설책

홍성윤 기자(sobnet@mk.co.kr) 2025. 12. 21.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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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살인자의 기억법’ 우크라서 출간
실제 살인범 이춘재 얼굴 표지로 써 논란
책내용과 상관없이 ‘선넘은 디자인’ 비판
우크라이나에서 번역 출간된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 표지 디자인. 연쇄살인범 이춘재의 얼굴을 썼다. [아네타 안토넨코]
화성 연쇄살인사건 진범 이춘재가 책 표지 모델로 데뷔했다. 베스트셀러 작가 김영하의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이 올해 우크라이나에서 번역 출간된 가운데, 현지 판본의 표지 디자인을 둘러싸고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작품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한국의 실존 연쇄살인범 이춘재의 얼굴 사진이 책 표지에 사용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18일 우크라이나 출판계에 따르면 살인자의 기억법은 지난 10월 현지에서 ‘살인자의 회고록’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장정판 종이책과 전자책 형태로 판매되고 있으며, 한국문학번역원도 해당 번역 출간 사실을 공식 소개했다.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의 국내 표지. [문학동네·복복서가]
문제의 표지다. 국내 판본이 추상적 이미지와 상징 위주의 디자인을 채택한 것과 달리, 우크라이나판 장정판에는 이춘재의 얼굴 사진과 해골 이미지를 나란히 배치한 표지가 사용됐다. 해당 소설은 특정 실존 사건이나 인물을 모티프로 삼은 작품이 아니며, 이춘재나 화성 연쇄살인 사건과 서사적·사실적 연결고리도 전혀 없다. 그럼에도 실제 범죄자를 연상시키는 얼굴을 전면에 내세운 디자인이 독자에게 오해를 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2013년 출간된 장편소설로, 은퇴한 연쇄살인범 김병수가 알츠하이머병을 앓으며 기억을 잃어가는 상황 속에서 딸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다룬다. 독특한 설정과 반전으로 국내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2017년 설경구·김남길·설현 주연의 영화로 제작돼 약 265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원작과 영화 모두 허구의 인물을 중심으로 한 심리 스릴러다.

반면 이춘재는 1980~1990년대 발생한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이다. 1994년 처제 살인 사건으로 수감 중이었던 그는, 2019년 DNA 감식을 통해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으로 밝혀졌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만으로 10명, 다른 살인 사건까지 합치면 총 15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 이춘재는 현재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봉준호 감독의 2003년 영화 ‘살인의 추억’은 이춘재의 존재가 드러나기 전, 대표적인 장기미제사건이었던 화성 연쇄살인 사건을 모티프로 한 작품이다.

화성 연쇄살인범의 진범인 이춘재.
소설 속 김병수와 이춘재는 ‘연쇄살인범’이라는 것 외에는 공통점이 없다. 특히 소설이 출간된 시점에 이춘재의 정체가 아직 드러나지 않았음을 고려하면, 소설 집필 과정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추정하기도 어렵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온라인 서점의 작품 소개 글에서도 이춘재나 화성 연쇄살인 사건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그럼에도 표지 이미지로 인해 독자들이 작품을 실화 기반 범죄 서사로 오인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문학 표지에 실제 살인자의 얼굴? 이래도 되나” “이제는 K-범죄자까지 수출하나”라는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소설 ‘살인자의 기억법’과 영화 ‘살인의 추억’의 제목과 소재가 유사하다 보니 이춘재 사진이 표지에 등장한 것 같다”라는 추정도 나온다.

해당 작품을 출간한 우크라이나 출판사 아네타 안토넨코는 김영하 작가 외에도 정유정의 ‘종의 기원’ ‘7년의 밤’,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 등 다수의 한국 문학 작품을 현지에 번역·출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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