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동지’가 뭐길래…“올해 동짓날엔 팥죽 대신 팥시루떡”
팥죽, 전통 풍속에서 ‘상갓집 음식’
'아이'에게 부정함 옮겨갈까 우려
시루떡으로 대체해 ‘무탈함’ 빌어


일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다는 동지(冬至)는 으레 붉은 팥죽을 쑤어 먹는 풍경을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올해 동짓날만큼은 팥죽을 먹지 않아도 좋다. ‘애동지’이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동지가 음력 11월 초순(1~10일)에 들면 ‘애동지(아동지)’, 중순(11~20일)에 들면 ‘중동지’, 하순(21~30일)에 들면 ‘노동지’라 불렀다. 음력 11월3일인 올해는 전형적인 ‘애동지’다.
민속학계 조사와 문헌에 따르면 우리 조상들은 애동지가 찾아오면 팥죽 대신 ‘팥시루떡’을 쪄 먹었다. 왜 조상들은 추운 겨울, 따뜻한 팥죽 한 그릇을 마다하고 시루떡을 쪄냈을까. 그 배경에는 아이들을 지키려는 부모의 간절한 뜻이 숨겨져 있다.

전남대학교 문화유산연구소 선임연구원인 김용갑 박사는 애동지의 ‘무(無) 팥죽’ 풍습이 일부 지역 미신이 아닌 한반도 전역의 보편적 현상이었다고 설명했다.
국립문화재연구소(현 국립문화유산연구소)가 1930년대~2000년대 초 국내 풍속을 조사한 ‘세시풍속’에 따르면, 전체 조사 지역 471곳 중 무려 286곳(약 61%)에서 애동지에 팥죽을 쑤지 않았다는 결과가 나온다. 지역적으로는 강원, 경기, 충청 등 중부와 서부 지역에서 이러한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그렇다면 왜 하필 ‘애기 동지’에 팥죽을 금기시했을까? 김용갑 박사는 이를 ‘어휘적 주술 연상’과 ‘죽음의 이미지’로 해석한다.
“전통 풍속에서 팥죽은 상갓집에서 문상객을 대접하거나, 상을 당한 유족을 위해 이웃이 쑤어가는 대표적인 음식이었습니다. 즉 팥죽은 ‘죽음’과 연관된 이미지가 강했죠. 그런데 ‘아이(兒)’가 들어가는 ‘애동지’에 죽음을 상징하는 팥죽을 쑤게 되면, 그 부정함이 아이들에게 옮겨가 아이가 죽거나 큰 우환이 생긴다고 믿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경기도 수원이나 경남 고성 등지에서는 “애동지에 팥죽을 쑤면 아이가 죽는다”며 금기시했고, 팥죽을 쑤더라도 아이들에게는 절대 먹이지 않는 풍습이 있었다. 결국 ‘애동지 팥시루떡’은 액운으로부터 자녀를 보호하고자 했던 부모들의 지극한 사랑이 만들어낸 대체재였던 셈이다.
김용갑 박사와 박혜경 전라남도교육청 교감이 공동 연구한 논문 ‘신(神)을 대접하는 방식과 동지를 쇠는 의례로서 팥죽 뿌리기’에 따르면 동지의 본질은 단순한 벽사(귀신 쫓기)가 아닌 ‘신을 대접하는 행위’에 가까웠다.
흔히 동지에 팥죽을 뿌리는 행위를 잡귀를 쫓아내는 주술로만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연구팀이 분석한 결과, 팥죽 뿌리기는 고수레처럼 신이나 조상에게 먼저 음식을 바치는 ‘공여(供與)’ 성격이 짙다. 가신(家神)들이 머무는 공간에 음식을 나눠 대접하는 따뜻한 ‘초대’였던 것이다.
따라서 애동지에 팥죽 대신 떡을 해서 올리는 것 또한 음식의 형태만 바뀌었을 뿐 ‘신을 대접하고 가정의 안녕을 비는’ 의례의 본질은 그대로 계승된 것이다.

붉은 팥은 예로부터 양(陽)의 기운을 상징해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힘이 있다고 믿어왔다. 팥죽이든 떡이든 그 붉은 빛깔에 담긴 염원은 같다. 가족 건강, 특히 아이들의 무탈함을 비는 마음이다.
다가오는 12월22일, 퇴근길에 떡집에 들러 팥시루떡을 사 들고 귀가해보자. “올해는 애동지라서 팥죽 대신 떡을 먹는 거래”라는 이야기와 함께 떡을 나눈다면 그것만으로도 잊혀 가는 우리 고유문화를 식탁 위에서 생생하게 되살리는 일이 될 것이다.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음식이 아니라 서로 안녕을 묻고 신(神)과 이웃을 대접하려 했던 ‘나눔과 배려’의 정신, 그것이 우리가 동지에 가져야 할 전통의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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