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70만 명 정보 다 털린 뒤 드러난 쿠팡의 민낯 [안재광의 대기만성]

안재광 2025. 12. 21. 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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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 과정을 지켜보면서 많은 분들이 충격을 받으셨을 겁니다.

하지만 이번 3370만 명 개인정보 유출 사태는 쿠팡이 말하는 '기술'의 우선순위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이번 사태로 쿠팡에 대한 국민적 공분은 극에 달했습니다. 롯데와 신세계 같은 기존 유통 강자들이 쿠팡을 견제하지 못하고 시장을 내준 결과 우리 국민들은 이제 거대 독점 플랫폼의 인질이 되어버린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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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 / 한국경제신문



이번 쿠팡의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 과정을 지켜보면서 많은 분들이 충격을 받으셨을 겁니다. 단순히 내 정보가 털렸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지난 10여 년간 우리 생활 깊숙이 파고들며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렸던 쿠팡이란 기업이 그 화려한 성장 이면에 어떤 문제를 감추고 있었는지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국민적인 실망을 넘어 국민적인 분노로까지 확산되는 분위기인데요. 어떤 점이 특히 충격적이었는지 짚어봤습니다.

 ◆아마존·구글 지향한다더니…

무엇보다 스스로를 ‘테크 기업’이라 정의해 온 쿠팡의 허술한 기술 보안 실태입니다.

 쿠팡은 창업 초기부터 자신들은 단순한 유통사가 아니라고 강조해 왔습니다. 아마존이나 구글 같은 ‘테크 컴퍼니’라는 것이었죠. 실제로 쿠팡이 물류 인프라만큼이나 강조했던 것이 바로 AI(인공지능)와 데이터 기술이었습니다. 수천 명의 개발자를 채용했고 이들의 기술력이 로켓배송을 가능케 했다고 자부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번 3370만 명 개인정보 유출 사태는 쿠팡이 말하는 ‘기술’의 우선순위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 지금까지 드러난 것인데요. 중국인 전직 직원이 정보를 빼돌리는 데 사용된 ‘보안키’가 무려 3년 넘게 방치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IT업계나 금융권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일입니다. 통상적으로 고객 데이터를 다루는 기업, 특히 금융사는 망 분리는 물론이고 부서 간 엄격한 ‘파이어월(방화벽)’을 구축합니다. 개발자라 하더라도 접근 권한을 최소화하고 주기적으로 보안키를 갱신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쿠팡은 왜 이런 기본을 지키지 못했을까요. 쿠팡이 보안보다 개발 속도와 효율을 우선시했기 때문이란 게 대체적인 진단입니다. 엔지니어들이 데이터를 자유롭게 가져다 쓰고 새로운 기능을 빠르게 배포하기 위해 보안 절차를 간소화하거나 후순위로 미뤄 뒀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죠. 개발자가 일하기 좋은 테크 기업이라는 장점이 역설적으로 고객 정보 보호에는 소홀한 기업이란 단점도 된 겁니다. 겉으로는 최첨단 테크 기업을 표방했지만 내부 보안 절차는 스타트업 단계에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이 이번에 입증된 것입니다.

 철저히 김범석 의장 중심의 의사결정 구조란 점도 드러났어요. 이번 사태는 초기 대응이 늦어지면서 더 큰 피해를 키웠다는 게 대체적인 지적입니다. 그걸 여실하게 드러내는 발언이 있었습니다. 바로 박대준 전 쿠팡 대표가 12월 초 국회 과방위 전체회의에서 한 말입니다. “올 들어 김범석 의장을 직접 본 적이 없다”고 했어요. 

 매출이 40조원에 이르고 고용 인원만 10만 명에 달하는 대기업의 대표가 실질적인 오너를 1년 가까이 대면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충격적입니다. 이는 한국 쿠팡의 대표가 독자적인 의사결정 권한이 없는 ‘관리형 사장’에 불과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쿠팡의 지배구조를 보면 이 상황이 이해는 갑니다. 한국 쿠팡은 모기인인 미국 쿠팡Inc가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쿠팡Inc는 김범석 의장이 차등의결권 주식을 통해 전체 의결권의 약 73%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이사회 의장과 CEO를 겸직하며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하죠.

 결국 한국에서 3370만 명의 정보가 유출되는 대형 사고가 터졌음에도 한국 경영진은 즉각적인 사과나 보상안을 내놓을 권한이 없었던 것입니다. 미국에 있는 김 의장에게 보고서를 올리고 미국 본사 법무팀과 경영진의 검토를 거쳐 다시 김 의장의 재가가 떨어져야만 움직일 수 있는 구조입니다. 

 ◆작동하지 않은 CR 조직

막강했던 ‘대관(CR) 조직’의 실체와 대응 실패도 드러났어요. 쿠팡은 지난 몇 년간 공격적으로 대관 조직을 키웠습니다. 대관 조직은 정치인, 공무원, 교수 같은 힘 있는 의사결정권자를 상대로 자신들의 입장을 설명하고 주장을 관철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대관 조직도 비슷한 사람들로 꾸립니다. 대통령실 행정관 출신부터 국회의원 보좌관, 경찰, 검찰, 공정거래위원회, 그리고 주요 언론사 출신 인사들을 대거 영입했습니다. 강남에 별도 사무실을 운영하며 100명 이상의 전관들이 포진해 있었다는 보도도 나왔습니다.

 그동안 쿠팡은 택배 노동자 과로사 문제나 납품업체 갑질 논란 같은 리스크가 불거질 때마다 이 막강한 대관 네트워크를 동원해 돌파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 대관 조직이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않았어요. 사태의 위중함이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엄정 대응을 지시했고 김민석 국무총리도 이례적으로 특정 기업을 겨냥해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언급하며 질타했습니다. 경찰은 고강도 압수수색을 단행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비싼 인건비를 들여 구축한 대관 방어막이 이번 사태에서는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정무적 해법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순간 김범석 의장이 내린 결론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법적 대응으로의 태세 전환입니다. 이번에 새로 선임된 해럴드 로저스 신임 임시 대표는 하버드대 로스쿨 출신의 미국 변호사입니다. 그는 기업 위기관리와 컴플라이언스 전문가입니다. 개인정보 유출로 불안해하는 한국 소비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진정성 있는 소통과 사과죠. 그런데 쿠팡은 ‘법률 전문가’를 CEO로 보냈습니다. 이건 앞으로 이어질 집단소송과 수사 당국의 조사에 대해 철저하게 법리로 다투겠다는 의지, 즉 ‘전투 모드’로의 전환을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정무적 기능이 마비되자 곧바로 법 기술자를 투입해 리스크를 차단하려는 모습인 겁니다.

 쿠팡이 미국 기업이란 사실도 다시 한번 각인됐습니다. 다들 알고는 있지만 그냥 한국 기업으로 치부한 면이 있었죠. 하지만 쿠팡은 명백한 미국 기업입니다. 본사는 미국 델라웨어주에 있고 뉴욕증시에 상장되어 있습니다. 김범석 의장 역시 한국계 미국인입니다. 한국 쿠팡의 주요 의사결정 라인인 이사회와 C레벨 임원진 대부분 외국인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한국 시장에서 큰 돈을 벌고 한국인들의 데이터를 대량으로 수집하지만 본질적으로 국적과 정체성은 철저히 미국에 두고 있는 것입니다.

 ◆“욕하면서도 쿠팡 쓸 수밖에”

마지막으로 대체 불가능한 독점이란 겁니다. 어쩌면 이것이 가장 불편한 진실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사태로 쿠팡에 대한 국민적 공분은 극에 달했습니다. 쿠팡 탈퇴가 과거 ‘노 재팬 캠페인’처럼 확산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현실은 어떻습니까. 쿠팡을 못 끊고 계속 쓰는 소비자도 많습니다. 이 정도로 사태가 확산하면 쿠팡의 이용자 수나 결제액이 반토막은 돼야 할 텐데 큰 타격이 아직까진 없어요.

 지난 10년간 롯데, 신세계 같은 유통 대기업들이 머뭇거릴 때 쿠팡은 수조원의 적자를 감수하며 물류망을 깔았습니다. 그 결과 경쟁사들이 따라올 수 없는 압도적인 배송 속도와 편의성을 구축했습니다. 컬리나 오아시스처럼 새벽배송을 하는 곳도 있지만요. 여긴 신선식품에 특화되어 있어 공산품 구색이 부족합니다. 구색이 많은 네이버쇼핑이나 G마켓은 쿠팡의 로켓배송만큼 빠르고 확실한 배송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더 무서운 것은 쿠팡 생태계입니다. 와우 멤버십 하나면 배송뿐 아니라 ‘쿠팡이츠’ 무료 배달, ‘쿠팡플레이’를 통한 콘텐츠까지 이용할 수 있습니다. 쿠팡을 끊는다는 건 단순히 쇼핑몰을 바꾸는 게 아니라 프리미어리그 중계를 포기해야 하고 ‘왕좌의 게임’ 같은 HBO 시리즈를 못 보게 되며 매일 먹는 배달음식 배달비를 다시 내야 한다는 뜻입니다. 

 김범석 의장은 과거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라고 생각하게 만들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은 현실이 된 것이죠. 소비자들은 쿠팡을 욕하면서도 당장 내일 아침에 필요한 기저귀와 생수를 받기 위해 다시 쿠팡 앱을 켭니다. 롯데와 신세계 같은 기존 유통 강자들이 쿠팡을 견제하지 못하고 시장을 내준 결과 우리 국민들은 이제 거대 독점 플랫폼의 인질이 되어버린 셈입니다.

 쿠팡의 민낯은 우리에게 큰 화두를 제시합니다. 과연 편리함이 무책임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김범석 의장은 한국의 온라인쇼핑 시장을 장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고객의 정보를 지키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데 필요한 신뢰의 자본은 쌓지 못한 것 같습니다. 미국인 변호사를 앞세운 법적인 방어막이 당장의 과징금을 줄여줄지 모릅니다. 하지만 3370만 명의 개인정보와 함께 무너져내린 신뢰는 그 어떤 유능한 변호사도 다시 세울 수 없습니다. 독점적인 지위에 취해 마지막 경고마저 무시한다면 로켓처럼 빠르게 솟아올랐던 쿠팡의 신화도 한순간에 추락할 수 있습니다.

안재광 한국경제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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