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어난 인재를 ‘동맹군’으로 만드는 리더십 [박찬희의 경영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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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서 이긴 유능한 장수가 부담스러워 숙청하는 이야기는 역사 드라마에 자주 등장한다. 전쟁에서 지면 목숨이 위태로운 절실한 상황에서는 무조건 유능한 장수가 필요하다. 전쟁이 없는 시절에 유능한 장수나 대신은 눈치껏 정치게임에 나서거나 숨어서 맘 편히 살 수밖에 없다. 유능한 경영자가 투자자를 업고 경영권을 뺏거나 경쟁자로 나설 수도 있고 만만해서 비밀을 맡겼다 약점 잡혀서 쩔쩔매는 일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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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서 이긴 유능한 장수가 부담스러워 숙청하는 이야기는 역사 드라마에 자주 등장한다. 못나고 속 좁은 국왕을 둘러싼 간신들의 질시와 모략이 더해져 비장미를 더한다. 그런데 국왕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군대를 믿고 맡겼다가 그 창 끝을 거꾸로 돌린 장수에게 나라를 뺏긴 사례는 무수히 많고 막강한 재상에게 허수아비 신세로 이용당하기도 한다. 무작정 공을 세워 세력을 키우려는 장수가 나라를 거덜내는 경우도 있다. 유능한 국왕은 다잡아 이끌 자신이 있지만 모자라는 자식을 보면서 후환을 걱정할 수도 있다. 드센 왕비, 탐욕스러운 왕족들을 보면 걱정은 더 깊어진다.
전쟁에서 지면 목숨이 위태로운 절실한 상황에서는 무조건 유능한 장수가 필요하다. 그 전쟁을 이끌고 받쳐줄 재상(宰相)도 절실하다. 질시와 의심의 궁정정치는 그다음 얘기다. 전쟁이 없는 시절에 유능한 장수나 대신은 눈치껏 정치게임에 나서거나 숨어서 맘 편히 살 수밖에 없다. 전장의 장수와 궁정의 대신을 모두 해낸 출장입상(出將入相)은 김유신처럼 막강한 세력과 정치력에 더해서 통치자와 영혼의 파트너십이 있어야 가능하다. 제갈량, 강태공은 모두 농장주로 조용히 살다 파트너를 만나 몸을 일으킨 사람들이고 조조는 궁정정치판에서 애쓰다 난세의 주인공으로 변신한 사례다.
기업경영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진다. 유능한 경영자가 투자자를 업고 경영권을 뺏거나 경쟁자로 나설 수도 있고 만만해서 비밀을 맡겼다 약점 잡혀서 쩔쩔매는 일도 많다. 더 잘하는 사람에게 경영을 맡기고 맘 편하게 놀거나 투자자로 남으면 되지만 잔뜩 얽혀 있는 이해관계 때문에 쉽지 않다. 그래서 만만한 가신들과 움켜쥐고 버티며 서서히 망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런 판이 좋은 사람들도 있지만 뭔가 배우고 키우려는 사람들은 넋 놓고 월급 받으며 바보 가신들에게 부림을 받다 바보가 된다. 한때의 성과를 자리로 보상했더니 권력게임으로 회사를 망치는 일도 벌어진다.
◆쌀집 주인과 배달소년
일제강점기 을지로 일본인 동네 쌀집에 젊고 유능한 이북 출신 배달소년이 있었다. 눈치 바르고 싹싹해서 고객들 심부름도 간간이 해주어 영업실적도 올리는데 누가 봐도 남의 밑에 오래 있을 재목이 아니다. 이 소년이 성장해서 경쟁업체로 나서면 그 또한 심란한 일인데 일본인 쌀집 주인은 그의 창업을 돕기로 했다. 조선인 주민과 상인이 많은 종로에 새로 쌀집을 열어주고 빌려준 돈은 벌어서 갚으라 했다. 일종의 출자전환형 사내벤처인데 일본인 주인은 손이 안 닿는 곳에 사업영역을 넓히고 유능한 장수를 동맹군으로 키운 셈이다. 모 대기업 창업자의 실화다.
배달소년의 종로 쌀집이 자리 잡은 후에도 을지로 쌀집 주인은 일정 지분을 남겨 이익을 나누고 쌀을 공급하는 안정적 동맹관계를 유지한다. 배달소년이 새로 미곡 공급선을 개척하거나 새 사업을 키우면 주도권이 바뀐 새로운 동맹관계가 형성된다. 이런 방식은 중세 봉건제에서 영주와 기사의 관계 그대로인데 계속 성공하면 국왕과 영주, 황제와 국왕의 관계로 발전한다. 시종이나 경호병도 전쟁에서 공을 세워 기사-영주가 되려 하고, 측근에만 남으려 들면 오히려 반역의 의도로 의심받는다. 이렇게 해서 작은 집단이 제국으로 성장한다. 다른 나라의 왕자와 귀족들이 천민 출신의 유능한 장군에게 복속하는 일도 벌어진다.
못난 영주가 눈치만 빠른 측근들과 만만한 신하를 부리고 잘난 장군은 이들에게 트집 잡히다 못난이가 되는 일은 흔하다. 영명했던 영주도 용기를 잃고 의심만 많은 못난이가 되는가 하면 충성스럽던 대신이 권세를 탐하다 못해 나라 훔칠 궁리만 하는 일도 벌어진다. 출세에 눈이 멀어 무모한 전쟁으로 나라를 거덜내는 무책임한 장군도 나온다. 전쟁이 이런 한심한 집단을 도태시킨다면 기업 현장에서는 시장의 냉혹한 질서가 작동한다. 회사제도와 금융기법을 활용해서 다양한 답을 만들 수 있다.
기술은 있어도 경영능력이 없는 창업자는 기업공개로 지분을 팔고 다른 사업을 하면 된다. 용기를 잃은 경영자는 회사 움켜쥐고 버티는 대신 회사 팔아서 편히 살고 유능한 임직원에게 자리로 보상해서 권력게임으로 몰아넣는 대신에 성과보상으로 부자를 만들어준다. 자기 사업을 하게 밀어주고 투자에 참여해도 된다.
◆마이클 밀켄과 정크본드
유능한 경영자의 적극적 도전이 회사의 이익과 엇갈릴 때가 있다. 경영자는 실패해도 사임하면 그만이지만 손실은 물론 무리한 일들의 후폭풍도 회사에 돌아간다. 회사의 손실은 주주의 몫이고 다른 임직원들도 피해를 본다. 찬란한 승리를 위해 무리한 작전을 펼쳐서 군대를 몰살시키는 일장공성만골고(一將攻城萬骨枯)인 셈. 그러나 손실과 후폭풍이 무섭다고 웅크리기만 하는 것도 답이 아니다.
1980년대 정크본드(Junk Bond) 시장을 개척한 마이클 밀켄은 한때 소속된 회사 이익의 60% 이상을 벌어들였다. 1987년에 받은 5.5억 달러의 보너스는 1986년도 회사(드렉슬-번햄-램버트)의 전체 이익에 맞먹는 금액이다. 등급이 낮은 채권을 모아 일부 묶어서 투자상품으로 만든 방식은 시장의 호황에 힘입어 크게 성공했고 이를 기업 인수합병에 투입해서 막대한 이득을 얻었다. 그러나 인수합병 붐이 가라앉고 정크본드 시장도 탄력을 잃어가는 상황에서 대형 불공정거래 스캔들이 터졌다. 시세조종과 내부자거래에 연루된 밀켄은 징역형을 선고받고 그가 속한 회사도 파산했다.
당시 월스트리트에서도 회사가 밀켄과 그의 팀에 좌우되는 구조, 특히 정크본드 거래수익의 35%를 수수료로 주는 보상체계가 타당한지 논란이 있었다. 회사가 밀켄을 독립시키고 지분 출자를 해서 동맹으로 삼았다면 밀켄은 위험을 스스로 감당해야 하니 더 신중했겠고 회사는 불공정거래 스캔들에 연루되지 않았을 것이다.
순진한 경영학 책에선 스톡옵션이나 주식으로 이해관계를 일치시킨다고 하지만 1% 지분보다 모험적 도전에서 얻는 몸값과 기회는 압도적으로 크다. 모험의 대가는 누리고 손실은 주주와 회사, 나아가 구성원의 몫이 된다.
◆경영자 보상과 회사 제도
인사관리 책에는 보수체계, 성과급 같은 고색창연한 단어들이 나온다. 월급과 보너스도 중요한 일이지만 관리통제, 나아가 전략의 눈높이에선 작은 수단일 뿐이다. 승진은 물론 배치, 해고 등이 더 절박하다. 경영자에 대한 보상은 회사의 지배체제에 관련된 일이고 쌀집 배달소년이나 마이클 밀켄 사례에서 보듯이 더 넓은 틀에서 헤아릴 일이다.
직원에 대한 보상도 몸값에 따라 결정된다. A란 직원이 빠지면 생산라인이 멈추고 B란 직원은 마음만 먹으면 아무도 모르게 치명적 타격을 줄 수 있다면 성과 이전에 그들의 가치를 인정하고 보상해야 한다. 경영자는 그 영향력과 재량권이 훨씬 더 크고 감독-통제하기도 더 어렵다.
회사 제도는 다양한 이해관계를 모아 일을 만드는 방법이다. 한 뼘의 땅도 권력자와 창칼 든 자의 계약으로 목숨 걸고 싸워서 얻는 중세의 틀이 진화한 면도 있다. 전쟁과 같은 외부 위협도 없고 사회변동도 제약된 체제에서 외길 충성게임에 익숙한 나머지 자유로운 계약, 경쟁과 협력의 관계를 생각하지 못할 뿐이다.
인생을 걸고 모인 회사에서 워크숍 몇 번 하면 동지애가 꽃피고 보너스 얼마 얹어주면 의욕이 충만해서 최선을 다한다는 아둔한 생각, 경영자의 비전과 리더십에 감동해서 운명공동체가 된다는 동화책 같은 상상을 외워서 믿는 경영학은 쓸모없는 정훈 교재에 불과하다. 이런 짓들이 진정한 헌신과 열정을 바보꼴로 만든다.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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